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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친 속옷도 제가 골라줘요”

‘女心 박사’ 된 여성 관련 업종 종사男들 “육아·요리·화장·쇼핑 여자만큼 도통”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여친 속옷도 제가 골라줘요”

“여친 속옷도 제가 골라줘요”

로레알 코리아의 공대원(왼쪽) 씨와 이기헌 씨.

“회사 들어오기 전까진 여성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죠.”

지난해 4월 다국적 화장품그룹 로레알 코리아에 입사한 신입사원 공대원(26·라로쉬포제 마케팅팀) 씨는 요즘은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 여성 세계의 진면목을 접하려 노력 중이다. 여자 형제가 두 명이나 있는 만큼 여성 대상 마케팅에 어느 정도 자신 있던 그였지만, 입사 후 ‘여성을 안다’는 것이 “스킨케어 종류와 그 쓰임새를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여성용 제품) 향의 미세한 차이에서부터 촉감까지 여성 고객의 취향이 얼마나 다양한지 새롭게 배우는 게 많다”는 공씨는 직접 제품을 사용해보거나 주위 평가를 듣기도 하고, 주변 여성의 피부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이젠 “화장 대신 비비크림으로 때운 사실을 알아차릴 정도”가 됐으며 “젊고 예뻐지고 싶다는 꿈의 간절함에 공감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자 동료·친구들이 화장법 물어봐요”

“요즘은 술자리에 가면 여자친구들이 저에게 자신의 피부에 대해 조언을 구해요. 하지만 피부 상태에 대해 대놓고 지적하는 건 금물이죠. 예를 들면, 피지 분비가 심한 친구에게는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구나’ 같은 식으로 돌려 말해야 해요.”



하지만 여성 마케팅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전문 분야에 그치지 않고 여성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씨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입사 3년차 이기헌(30·케라스타즈 마케팅팀) 대리는 빠른 속도로 변하는 여성 트렌드를 따라잡는 데 주력한다.

“입사 이후 주기적으로 백화점에 가서 윈도쇼핑을 합니다. 여성잡지와 여성 전용 사이트를 검색하는 건 물론이고요.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바로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감각을 키우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친 속옷도 제가 골라줘요”

여성 포털 이지데이 직원들의 책상엔 여성 관련 용품이 가득하다. 비비안의 홍성범 대리는 ‘프로의식’ 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는다(오른쪽).

실제로 여성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남성들은 여성문화의 ‘체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여성 포털사이트 ‘이지데이(www.ezday.co.kr)’의 사무실 책상에는 여성지와 여성용품이 가득하다. 가계부와 웹 다이어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시작한 이지데이는 여성 사용자 수가 크게 늘면서 여성 포털사이트로 발전한 경우로, 직원의 70% 이상이 30대 초중반 남성이다. 이들은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왓 위민 원트(What Women Want)’를 보면서 멜 깁슨처럼 드라이어에 감전돼 여성의 속마음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최현걸(37) 개발실장은 “여성잡지 구독은 물론 TV 드라마, 토크쇼, 요리 및 맛집 프로그램을 섭렵하고 마트나 인테리어숍에 가서 여성들이 어떤 브랜드와 제품을 구입하는지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고 말한다. 이곳의 남성 직원들 중엔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육아, 인테리어, 요리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하는 버릇이 생기고, 예전과 달리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과 관련됐을 경우, 이들은 난감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 30, 40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케이블 채널 스토리온에서 ‘토크·시티’를 맡고 있는 김기강(29) PD는 “3045 여성의 경우, 20대 여성과는 또 다른 면이 있어서 한참을 헤매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젊은 남성이 여성의 성생활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미혼인 그는 ‘토크·시티’를 맡기 전에 기혼여성들의 솔직한 섹스 토크로 유명했던 ‘박철쇼’와 ‘이 사람을 고발합니다’의 제작에도 참여한 바 있다.

“여성 상위 체위라든지 여성 자위라든지, 여성의 성생활과 관련된 디테일한 이야기가 회의 주제가 되니 처음엔 난감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실제로 기혼여성들이 찜질방에서 하는 이야기들이고, 그만큼 관심사이다 보니 꼭 다뤄야 했죠. 이젠 그때만큼 당황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덕분에 개인적으론 많이 배웠다고 봐야죠.”

브래지어·거들 직접 입어보는 것은 필수

한편 여성 언더웨어로 유명한 비비안의 홍성범(36·상품기획팀 MD) 대리는 투철한 ‘프로의식’ 때문에 종종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여자친구와 쇼핑을 하다가도 여성 언더웨어 가운데 특이한 게 보이면 어김없이 매장에 들러요. 그리고 한동안 특정 속옷을 유심히 보거나 만지작거리는데, 그럼 여자친구는 창피해서 다른 곳에 숨곤 해요.”

7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도색잡지 수준의 여성 속옷 카탈로그”만 봐도 얼굴이 빨개졌던 그가 지금은 야한 동영상을 봐도 “가슴 사이즈에 맞지 않는 컵을 착용했다거나 싸구려 브랜드라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수준”이 됐다.

“물론 브래지어, 올인원, 거들을 직접 입어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신체구조가 달라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을 모르니까 아쉬울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브래지어 컵 사이드로 살이 삐져나와 불편하다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저는 알 수 없어요. 피팅 모델을 보면서 짐작하는 수밖에 없죠.”

물론 남성이라서 좋은 점도 있다. 비비안의 경우 디자이너 90% 이상이 여성인 반면, 상품기획 MD는 70% 이상이 남성이다. 여성 속옷인 만큼 아무래도 여성이 디자인에 능하겠지만, 소비자 조사와 제품 개발 같은 부분에서는 상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남성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에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상품 또는 서비스 판매 분야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여성가족부 조용수(39) 사무관 역시 여성을 잘 알아야 하는 직업인 가운데 한 명이다. 1999년부터 여성가족부 전신인 여성특별위원회에 몸담았던 그는 우리 사회의 남녀 불평등 상황을 가늠하는 잣대에서는 부인보다 더 엄격할 정도로 ‘친여성주의적’인 남성이다.

“여성가족부에서 일하기 전만 해도 남녀평등 같은 말을 막연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성 정책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녀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죠. 양성 평등 채용정책이나 여성 인력 창출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도울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사회적 책임을 분담하는 시스템이니까요.”

여성가족부 사무관 “일 통해 여성의 세계 알게 된 것은 행운”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노력하다 보니 “다른 존재에 대한 차이와 그 어려움을 헤아리게 됐다”고 말하는 조 사무관은 앞으로 다른 분야에 몸담게 되더라도 여성 정책에 참여한 경험이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본다.

“과거엔 모든 국민을 그저 한 무리로만 봤다면, 이 업무를 하면서부터는 이 사회에 남성과 여성의 차이처럼 다양한 무리와 각기 다른 요구가 존재하며, 그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결과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공공서비스를 다루는 사람에겐 큰 깨달음인 셈이죠.”

조 사무관 외에도 취재에 응한 많은 남성들은 “여성을 아는 것은 어렵지만, 일을 통해 여성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배우자나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향상됐을 뿐 아니라, 여성을 알게 됨으로써 ‘미래의 성공’을 보장받을 수도 있게 됐기 때문이다. 여성 마케팅 전문 컨설팅 업체 더블유 인사이츠의 김미경 대표는 “비단 여성 관련 제품이 아니더라도 전체 시장에서 여심을 잡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친 속옷도 제가 골라줘요”
“시장에서 여성의 실질적 구매권은 80%에 이릅니다. 여기에 그들의 입소문 마케팅까지 더해진다면 엄청나죠. 자본주의가 생겨난 이래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이 여성 고객 시장입니다. 이러니 여성을 알아야 성공한다는 게 당연한 이치 아니겠어요?”

이제 성공을 원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이런 슬로건이 떠돌지도 모르겠다. “비록 여성이 될 순 없지만 여성화되기 위해 노력하라.”



주간동아 2008.02.26 624호 (p26~28)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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