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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특파원의 중국 차세대 지도자 열전|⑫링지화(令計劃)

친화력 뛰어난 胡 막료 중 큰형

공청단에서 실력 키우고 후 주석 12년 보좌 … 언론 노출 꺼리는 그림자 실세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친화력 뛰어난 胡 막료 중 큰형

친화력 뛰어난 胡 막료 중 큰형
중국 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마지막 날인 지난해 10월21일 중앙서기처 서기로 선출된 링지화(令計劃·52·사진) 중앙판공청 주임 겸 중앙기구편제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그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수석 막료(首席幕僚)’로 불린다. 후 주석의 막료 중 으뜸이라는 뜻이다.

후 주석이 이끄는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계열의 핵심 인사로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서열 6위의 리커창(李克强) 상무위원과 리위안차오(李源潮) 중앙정치국 위원 겸 중앙조직부장, 류옌둥(劉延東) 중앙정치국 위원 등이 있지만 이들은 막료가 아닌 측근이다.

반면 17차 당 대회를 앞둔 9월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에 임명된 그는 후 주석을 12년 넘게 보필해온 정치 참모다. 그는 후 주석을 21년간 보좌하고 있는 ‘후 주석의 수행비서’ 천스쥐(陳世炬) 국가주석 판공실 주임과 함께 ‘후 주석의 그림자’로 불린다.

공산당 일상 업무 모두 보좌하는 중책

중앙판공청은 중국 공산당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위원회 직속기관으로 중추기관 중 하나다. 중국 공산당 고위 지도자의 연설문 작성과 회의 보좌 업무, 중앙정치국이 하달하는 각종 문건과 원고의 기초 및 개고(改稿)·교열 작업, 고위 지도자들의 안전과 의료 등을 책임진다.



한마디로 중앙판공청 주임은 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와 중앙정치국의 일상 업무를 모두 보좌한다고 할 수 있다. 5년마다 열리는 당 대회 역시 중앙판공청의 손길이 닿는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의 총서기와 국가주석을 맡았다 해도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핵심 측근을 중앙조직부장과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에 앉히지 못하면 최고 실권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중앙조직부장은 지난해 6월 말 7336만명으로 집계된 공산당원 중 각 성의 당서기와 성장 등 적게는 4100여, 많게는 640만 간부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당내 핵심 요직으로 꼽힌다. 또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은 중국 인민해방군을 통솔하는 군의 최고 권력자다.

후 주석은 2004년 9월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에게서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물려받았으나 집권 5년 만인 지난해 당 대회 즈음해서야 링지화를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임명하고, 핵심 측근인 리위안차오 중앙정치국 위원을 중앙조직부장에 임명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중앙조직부장은 태자당(太子黨) 영수인 쩡칭훙(曾慶紅) 국가부주석의 측근이자 범상하이방(上海幇)으로 불리는 허궈창(賀國强) 상무위원이 맡았다. 중앙판공청 주임은 장 전 주석의 측근인 왕강(王剛) 정치국 위원 몫이었는데, 그에겐 장 전 주석을 대신해 후 주석을 감시하는 ‘대리 감시인’이라는 별명이 따라붙었다.

링 주임은 공청단에서만 20년 넘게 일했다. 1975년 고향인 산시(山西)성 핑루(平陸)현 공청단 위원회 간부와 부서기로 시작해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처 부처장, 공청단 중앙서기처 판공실 주임을 거쳐 95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부장을 끝으로 21년을 공청단에서 지냈다.

하지만 링 주임은 후 주석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와 제1서기로 재직한 1982~85년 후 주석과 얼굴을 맞대고 일하지는 않았다. 그는 1983~85년 공청단 소속 학교인 중국청년정치학원에서 정치교육을 전공으로 연수를 마치고 졸업식에서야 당시 공청단 교장이던 후 주석을 볼 수 있었다.

이후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처 부처장으로 일하면서 그는 공청단 핵심 멤버들의 주목을 받는다. 시키는 일마다 야무지게 처리했으며, 특히 그가 써낸 연구보고서는 상급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공청단 서기로 있던 리커창, 리위안차오, 류옌둥 등 후 주석 측근들에게서 재능과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가 후 주석의 지근거리에서 일하기 시작한 때는 1995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3조 책임자로 발탁되면서부터다. 그는 이후 조사연구실 조장과 부주임, 주임을 거쳐 중앙판공청의 부주임에 이어 지난해 1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꿈꿔오던’ 중앙판공청 주임 자리를 거머쥐었다.

야무진 일처리 마이크까지 철저 점검

그의 조상은 소수민족의 후예로 당초 성은 두 글자인 ‘링후(令狐)’였는데, 조상들이 나중에 한족(漢族)화하면서 한 글자인 ‘링’으로 바꿨다. 중국어로 ‘지화’는 ‘계획(計劃)’이라는 뜻이다. 그는 셋째 아들로 맏형 이름은 루셴(路線)이고, 둘째 형은 ‘정처(政策)’다. 바로 위 누나의 이름은 ‘팡전(方針)’이고, 남동생은 ‘완청(完成)’. 산시성의 처장급 간부였던 그의 부친은 신문 보기를 즐겼는데, ‘중화인민공화국’건국 당시 신문에 가장 많이 나오던 단어를 활용해 자식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노선과 정책, 방침과 계획이 나왔고, 막내는 ‘다 이뤘다’는 뜻의 완성이 됐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의 바르고 친화력이 뛰어나다고 전한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무척 꺼린다. 내외신 기자들은 그가 중앙판공청 주임으로 임명됐을 때 그의 얼굴사진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17차 당 대회 이후 인터넷에 올라온 것도 겨우 명함사진 한 장이다. 그는 후 주석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이면 멀찌감치 자리를 뜬다. 어떤 질문을 해도 그는 “기자 여러분, 고생 많습니다”로 답변한다. 이따금 하는 색다른 대답이라곤 “저는 선전하지 마세요”가 전부다.

1999년 중앙판공청 부주임을 맡은 이후 그는 후 주석의 국내외 행사장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그가 나타난 장소엔 20~30분 후면 어김없이 후 주석이 등장한다. 그는 행사장의 안전부터 마이크 높이가 후 주석 키에 맞는지까지 철저히 점검한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중앙판공청 주임’을 자신의 감시인인 ‘왕강’에서 측근인 ‘링지화’로 바꾼 후 주석이 앞으로 그를 활용해 집권 2기(2007년 말~2012년 말)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 주목된다.

링지화 프로필



·한족(漢族)

·1956년 10월생

·산시(山西)성 핑루(平陸)현 출신

1976년 6월 공산당 입당

1973~1975년 산시성 핑루현 지식청년, 현 인쇄공장 노동자

1975~1978년 산시성 핑루현 공청단위원회 간부, 부서기

1978~1979년 산시성 윈청(運城)시 당위 간부

1979~1983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간부

1982~1983년 허베이(河北)성 당위 판공청 근무

1983~1985년 중국청년정치학원 정치교육 수료

1985~1988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이론처 부처장

1988~1990년 공청단 중앙서기처 판공실 주임

1990~1994년 공청단 중앙판공청 부주임, ‘중국공청단’ 편집장

1994~1995년 공청단 중앙선전부 부장

1994~1996년 후난(湖南)대 공상관리과 재직연구생 수료, 석사학위 취득

1995~1996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3조 책임자

1996~1997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3조 조장

1997~1998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부주임

1998~1999년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주임

1999~2000년 중앙판공청 부주임, 조사연구실 주임

2000~2003년 중앙판공청 부주임, 조사연구실 주임, 중앙기구편제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2003~2007년 중앙판공청 부주임(장관급·상무 업무 주관)

웅장기구편제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2007~현재 중앙서기처 서기, 중앙판공청 주임, 중앙기구편제위원회 판공실 부주임

제16기 중앙후보위원

제17기 중앙위원, 중앙서기처 서기




주간동아 2008.01.29 621호 (p32~34)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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