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8

2008.01.08

남을 위한 삶 알고 보면 신나는 일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8-01-07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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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위한 삶 알고 보면 신나는 일

    <b>행복한 기부</b><br>토마스 람게 지음/ 이구호 옮김/ 풀빛 펴냄/ 240쪽/ 1만2000원

    17대 대통령선거를 위한 마지막 TV토론을 지켜보면서 답답함을 느낀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그날 핵심 의제는 일자리 창출이었다. 경제지수가 좋아지고 있다 해도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빈곤감은 커졌기에 대선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경제를 살리는 데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보자들이 내놓은 정책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저 서로를 공격하기에 바빴을 뿐이다. 짧은 시간에 의견을 내고 토론하는 방식이라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 “정치는 이제 여러 자기도취적 하위문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의 최고 정치인들은 록가수처럼 대접받기를 원하지만, 아무런 히트곡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앵무새와 같이 자기 말을 되풀이하며 라스베이거스의 무대에 오르려 한다”는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일요신문’ 문예 편집장 닐스 밍크마의 지적이 옳았음을 절감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실현할 능력을 찾아보기는 더 어려웠다. 내가 학교도서관 운동을 벌이던 시절 만난 관료나 정치인들도 그런 식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아무런 기대도 할 수 없는가? 아니다. 시민세력의 성숙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일 것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토마스 람게의 ‘행복한 기부-성공을 부르는 1%의 나눔’은 나눔이야말로 새로운 성공전략이라고 역설한다. 자본주의의 추진력은 이기주의다. 그런데 현명한 이기주의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자들이다.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조건 없는 기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나눔과 온정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생리현상으로 본다. 따라서 이타주의의 가치를 깨닫고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더 만족스럽게,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고 말한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아자일의 연구에 따르면 댄스를 제외하고는 테니스, 쇼핑, 골프, 텔레비전 보기 등 어떤 여가활동도 자원봉사 이상의 재미를 불러오지 못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 말은 부유층이 사회를 위해 시간과 돈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물질적 부를 크게 축적한 기업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인간의 속성을 말한다. 하지만 신용 없이 기능할 수 없는 시장에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합리적 게임’은 끝났다.

    기업들이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하려면 기부의 진정한 가치에 눈떠야만 한다. 자신의 경영능력을 기업뿐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도 발휘하는 ‘사회기업가’의 존재감이 커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따라서 ‘한 기업의 회사 내부와 외부에 대한 사회적 또는 친환경적 참여’야말로 ‘지속 가능 경영’이기에 법적 규제를 훨씬 넘어서는 수준으로 경영이념, 기업문화, 기업구조를 개혁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기부는 이제 시민의 일상이 되고 있다. 최근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이후 수많은 사람이 바다를 살리고자 자원봉사에 나섰다. 저자는 시민의 자원봉사 참여를 늘리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이 공익 업무를 스스로 형성하고 싶어하며, 공익단체의 상근직과 대등한 관계에서 의사소통하기를 원하고, 프로젝트에 따라 일하되 일정 기간만 구속받기를 원하며, 참여에 대한 적절한 인정을 받으려 한다는 것을 주목하라고 충고한다.

    기부가 활성화된 나라일수록 시민재단 수가 빠르게 늘어난다. 시민재단은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기관으로 다양한 공익·자선사업의 추진을 목표로 하며, 활동범위를 특정 지역으로 제한한다. 또한 장기적인 자산 형성을 추구하고 조직구조와 지출을 투명하게 한다. 새로운 시민성의 표현이라 할 수 있는 시민재단은 재정적 독립을 유지하되 카리스마적 인물이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돼야 진정한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복지정책의 필요성은 증대된다. 그러나 복지국가는 단지 결핍을 관리할 뿐이며 기회균등조차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제 우리에게 기댈 곳을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관료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도울 줄 아는 공동체다. 그런 공동체에는 ‘활동적 현실주의자’가 넘친다. 그들은 “독립성, 근면, 야망, 창조성 같은 자기실현적 가치들을 사회에 참여하려는 강한 열망”으로 여기고 무엇에,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책임에, 어떤 가치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비전은 가까이 있고 구체적이다. 암에 걸린 러시아 소녀를 15년 이상 도와온 한 부부에게 아주 ‘진중한’ 사람이 “그래봐야 당신들, 한 소녀만 도와줄 수 있잖아요?”라고 묻자 바로 “당신도 한 사람 도우세요. 그럼 벌써 둘이잖아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예로 들면서 이 책의 마지막을 “모두가 나누면, 모두가 이길 것이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가 가슴을 열고 되새겨볼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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