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8

2008.01.08

수염으로 멋내기 … 난 털털한 남자

밋밋한 인상에 포인트 색다른 세련미… 동호회 모임도 등장 ‘인기 실감’

  •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입력2008-01-02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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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염으로 멋내기 … 난 털털한 남자

    3월24일 열린 독일국제수염챔피언대회 참가자들의 모습.

    질문 : 체 게바라와 빈 라덴, 조니 뎁과 데이비드 베컴의 공통점은?

    답 : 수염

    입 주변의 꺼뭇한 털은 수염으로 통칭되지만, 그 느낌과 상징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 수염은 저항을 뜻하지만 어떤 사람에겐 권위의 상징이고, 또 다른 사람에겐 남성성을 부각하는 더없는 액세서리다.

    “저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남성적인 멋도 있고요.”

    회사원 박은규(29) 씨는 ‘주말 수염족’이다. 직장에 다니는 터라 평일에는 면도를 하지만,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짧게 기른 수염으로 턱 라인을 살린다. 주말 스타일링을 위해 금요일에는 면도를 하지 않고 다소 까칠한 모습으로 출근한다. 5년 전 유난히 동안인 얼굴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시작한 수염 기르기가 이제는 주말의 자유를 배가하는 의식이자 스타일의 중심이 됐다.



    포토그래퍼인 김성현(38) 씨 역시 4년 전부터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턱 끝에 손가락 한두 마디 길이로 짧게 기른 수염은 다소 밋밋해 보이는 그의 인상에 포인트를 준다. “수염 덕에 한두 번 보고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김씨는 “처음엔 재미로 기르기 시작했는데, 1년 정도 기르다 보니 신체의 일부 같아서 못 자르겠다”고 말한다.

    인터넷 카페서 풍성한 털 기르는 노하우 공유

    최근 우리 주변에서 박씨와 김씨처럼 수염 기르는 남성을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다. 한편으로는 영구제모 수술을 하고 ‘뽀샤시한(잡티 없는 뽀얀 피부)’ 꽃미남들이 출현하는 상황에서 남성미의 상징인 수염이 부각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구한말까지만 해도 ‘위엄과 체면의 상징’이던 수염이 근대화를 거치면서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되다, 최근 들어 다시 ‘스타일리시한 표현’ ‘세련된 남성성’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염을 기르는 사람들의 온라인 모임인 다음카페 ‘콧사모’(http://cafe.daum.net/mustache)의 경우 2002년까지 1000명 남짓하던 회원 수가 현재 1만5000명을 넘는다. ‘콧사모’ 외에도 Shave Men’s Romance(http://cafe.naver.com/shave), 수염매니아(http://cafe.daum.net/suyom), 디지-털(디지게 멋진 털을 사랑하는 사람들·http://digi-tal.cyworld.com) 등 수염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수염 스타일링 정보를 문의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글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중에는 더욱 풍성한(?) 털을 위해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아 무모증 환자용 발모제를 바르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두발용) 탈모치료제를 얼굴에 바르는 남성들의 사연도 적지 않다. 수염에 대한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해 전기면도기 업체 필립스에서는 최근 스타일링 기능을 강조한 신제품 ‘아키텍’을 출시했다. 솜털 하나 남기지 않는 면도를 추구하던 예전과 구별되는 점이다.

    남성지 ‘GQ’의 피처 디렉터인 장진택 씨는 이와 같은 한국 남성들의 수염 유행을 “면도가 상식으로 여겨지는 ‘군대 문화’와 남자가 멋을 내면 안 된다는 ‘유교 문화’에 반(反)하는 현상”이라고 봤다.

    “고정관념에 개의치 않고 꾸미기 시작하는 남성이 늘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자신의 스타일을 찾다가 수염을 기르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자신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 거죠. 마치 렌즈만 끼다가 어느 날 뿔테 안경을 써보고 자기 스타일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장씨는 또 “20대뿐 아니라 40대 중년 남성 중에서도 젊었을 때는 일반 회사원의 차림을 고수하다가 중년에 들어서면서 수염을 기르는 등 스타일의 변화를 꾀하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한 예로 광고나 디자인 같은 크리에이티브한 업종에 종사하는 팀장급 남성 열 명 가운데 두서너 명은 수염을 기르는 듯합니다. 수염을 기르는 일은 나이 때문에 자칫 굳어질 수 있는 사고나 태도에 대한 견제라고 할 수 있죠. ‘나 아직 안 죽었어’식의 표현일 수도 있고요.”

    사실 문화사적으로 수염은 다양한 함의를 지녀왔다. 체모와 관련한 방대한 문화사를 소개한 책 ‘털’(다니엘라 마이어·클라우스 마이어)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등에서 지혜와 생명력, 또는 권력의 상징(고대 이집트 여왕들은 턱에 염소 수염을 붙이기도 했다)으로 여겨지던 남성의 수염은 “중세에는 군인이나 귀족, 농부들의 출세 지향적 성향의 표현인 동시에 섹시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또 19세기 전반에는 수염이 말끔한 보수진영과 구분되는 좌파 이념 및 저항의 상징이자, 1960년대에는 급진적 반문화의 상징이기도 했다(지금도 일부 급진적 생태주의자들은 상징처럼 수염을 기른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이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수염 기르기가 규율로 강제되기도 한다.

    인상학자 주선희 교수(원광디지털대 얼굴경영학과)는 “남성의 수염은 기혈, 기상과 관계가 있다”고 말하면서 “턱이 약하거나 빈약해 보이는 얼굴에 수염을 기르는 것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부터 장수의 수염은 덥수룩했던 반면, 무신은 장수보다 수염의 양이 적고 단정합니다. 또 간신은 수염이 가늘고, 내시는 수염이 아예 없습니다. 수염은 남성성, 정력 등을 상징하지만 그렇다고 넘치는 것이 좋지만은 않습니다. 산에 나무가 많으면 산적이 많고 호랑이도 드나들 듯, 수염과 털이 많은 사람은 정이 너무 많아서 아내에게만 정열을 다 쏟지 못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수염에 맞춰 패션 스타일 받쳐주는 센스는 필수

    흔히 수염을 기르는 것은 면도를 피하기 위한 귀차니스트들의 해방구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제대로 수염을 스타일링하기 위해선 면도 이상의 공력이 든다. 미용가위로 섬세하게 다듬는 것은 물론, 아이브로 펜슬로 메우는 작업도 필요하다. 수염의 스타일링 방법도 여러 가지. 한 수염 스타일링 사이트에 올라온 남성 수염 스타일 종류는 30가지가 넘는다.

    스타일리스트 신우식 씨는 수염을 기른 남성은 “정장의 경우 수염이 자칫 무거운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솔리드톤에 최대한 심플하고 가볍게 입어야 하는 반면, 캐주얼 의상의 경우에는 여러 겹을 입는 레이어드룩으로 연출해야 캐주얼한 느낌과 수염의 스타일을 함께 살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수염 기르는 남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몇 년 전 미국의 한 여성단체에서는 면도하지 않는 남성들로 인해 따가운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며, 남성들이 면도를 하지 않으면 여성도 자라나는 체모를 깎지 않겠다는 ‘노 스크러프(No Scruff)’ 운동을 벌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여성 중에는 “남성의 수염과 대패는 밀어야 맛이다”식으로 극단적 수염 혐오증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수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여성들은 수염 관련 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하며(콧사모의 경우 1만5000명 회원 가운데 여성 회원이 3000명에 이른다), “머리카락의 샴푸향만큼 수염의 스킨 냄새가 좋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수염족 남성이 반길 만한 프랑스 속담을 소개한다.

    “콧수염 없는 남성과 키스하는 것은 치즈 없는 식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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