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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단독입수 - 경찰 이첩 총리실 내사보고서

‘거대 공룡’ 농협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농협 측은 “문제 될 것 없어 … 근거자료 있다”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거대 공룡’ 농협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거대 공룡’ 농협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농협 본사 사옥 전경.

- 농협, 매년 수십억원대 비자금 조성, 정대근 전 회장 변호사 비용도 비자금으로 충당

- 단가 부풀리기, 매입가격 인상 등 편법 동원 … 납품업체와 짜고 비자금 관리

- 조성된 비자금으로 해외 골프, 정·관계 로비 의혹

- 국무총리실 내사자료 이첩받아 경찰청 수사 시작

- 농협 내부직원 폭로 … “현대차 부지 매각, 휴켐스 매각 등의 과정에서 내부 감사시스템 붕괴됐다”



- 올해 초 농협 감사실에 접수된 비자금 의혹 투서 ‘문제없다’며 감사 종결

농협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대근 전 회장의 대법원 실형 확정판결 이후 농협 내부에서조차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수년간 제기돼온, 그러나 유야무야됐던 각종 의혹들도 새롭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정기관까지 농협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수사에 나서 관심을 끈다.

‘주간동아’는 농협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을 재조명했다. 또한 최근 경찰청이 전달받아 수사에 착수한 농협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한 국무총리실의 ‘내사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공개한다. 이는 대법원이 정 전 회장 판결 과정에서 밝힌 바와 같이, 농협이 사기업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재’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공론화와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각종 의혹과 관련된 농협의 입장은 기사에 충분히 반영했다. 240조원의 자산을 가진 ‘거대 공룡’ 농협이 새 회장 선출과 함께 거듭날 계기를 맞게 될지 그 결과가 궁금하다.

‘거대 공룡’ 농협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양재동 하나로마트.

[1부] 줄줄이 구속된 전임 회장들그 영욕의 세월

11월30일 대법원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 땅을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3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기소된 정대근(63) 전 농협중앙회(이하 농협) 회장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1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이날 상고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4조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정부 관리 기업체의 임원을 공무원으로 간주해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면서 “정씨에게 뇌물죄를 적용해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판결문의 주요 요지.

“농협중앙회는 국민경제 및 산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업무의 공공성이 현저하다. 농협법에 따라 농림부 장관과 금융감독위원회가 농협 운영 전반에 대해 광범위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독, 지도해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등 정부관리기업체에 해당한다고 보기 충분하다.”

이로써 1999년 3월 회장에 취임한 이후 8년 9개월간 농협을 대표해온 정 전 회장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농협은 농협법에 따라 올해 안에 신임 회장을 선출할 예정이다.

2006년 12월31일 현재 농협의 총자산은 229조678억여 원. 농협 측은 2007년 말엔 자산 규모가 약 240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199개 지역조합과 240만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농협은 전국 사무소만 1069개를 거느리고 있는, 그야말로 매머드급 금융·경제기관이다. 국내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국민은행의 자산이 211조원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농협의 ‘덩치’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농협의 힘은 규모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 금고의 70%를 유치할 만큼 지방의 자금을 빨아들이다 보니, 지역 내 ‘정치 파워’도 상당하다. 이러한 농협의 힘은 대통령의 말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올 자산규모 240조원 매머드급 금융·경제 기관

2003년 2월4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전국 순회 토론회 도중 춘천 한림정보대학에서 열린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전국 각지에 조직이 있는 농협이 힘이 센지,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지난 10여 년간 농협이 걸어온 길은 순탄치 않았다. 문민정부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중앙회장은 횡령과 공금 유용 등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불명예를 이어갔다. 문민정부 초반인 1994년엔 한호선 전 회장이 농협 예산을 전용, 4억8000만원의 비자금을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국민의 정부 초반인 99년 5월엔 원철희 전 회장(전직 국회의원)이 6억원의 업무추진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참여정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2002년 대선 직후 불거진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농협은 썬앤문 불법대출 사건에 휘말려 핵심 수사대상에 이름을 올리는 불명예를 안았다.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참여정부 내내 농협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했다.

6월 국가청렴위원회가 발표한 공직기관 비위 면직자 통계도 농협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협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66개 공공기관 가운데 비위 면직자가 가장 많은 공직 유관기관에 꼽혔다. 총정원 대비 비위 면직자 수는 전체 기관 가운데 2위(100명당 0.428명)였다.

‘내부감사 시스템 붕괴’로 회장 견제 불가능

농협 측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눈치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 당시 농협이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에게 보낸 서면 답변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농협 내의) 금융사고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신분 불안에서 오는 임직원의 애사심 저하 및 윤리의식 약화, 그리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춰놓고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준법의식 미흡 등이 원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도덕적 해이를 꾸짖는 언론의 질타도 끊이지 않는다. 다음은 12월3일자 ‘중앙일보’ 기사 중 일부.

“농협중앙회는 최근 4년간 급여를 평균 45% 올렸고, 자회사 임원의 91.7%를 ‘낙하산’ 인사로 내려보냈다. 농협 신용부문은 농림부의 위탁으로 금융감독원이 감독하고 있으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이런 얘기도 나왔다. 김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의 발언.

“집행간부의 아들, 친동생, 친인척이 비정규직으로 이렇게 채용돼서 어느 정도 급여를 받고 있느냐, 서기관급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 이거예요. 제가 확인해봤습니다. 모 상무의 아들이 어떻게 됐느냐, 자회사, 또 가락공판장에 파트타임으로 근무를 했는데 그렇게 했고, 친동생은 성남유통센터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데 지난해 연봉을 보니까 4589만원이었습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평균연봉보다 1000만원이 높은 겁니다.”

농협이 이처럼 많은 구설수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많은 농협 관계자들은 ‘내부감사 시스템의 붕괴’를 첫손에 꼽는다. “감사가 독립적이지 않고 회장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보니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취재 중에 만난 농협 고위간부 A씨는 “거대 조직의 감사시스템이 회장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돼온 것이 농협의 현실이다. 감사위원들이 호선을 통해 선출하도록 돼 있는 감사위원장 자리가 사실상 회장이 임명하는 자리로 변질되면서 내부 견제가 불가능한 구조가 됐다”고 주장했다.

“농협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는 A씨는 농협의 감사시스템과 관련된 각종 의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기자에게 e메일로 보내왔다. 그가 보낸 e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감사기능이 마비된 사례는 많다. 먼저 중앙회 자산 처분에 대한 감독 및 감사직무 회피로 인한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태광실업에 매각한 휴켐스의 경우 매각절차가 불공정했고, 문제를 은폐하려고 한 책임도 있다. 양재동 하나로마트 부지를 현대차에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이사들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됐는데, 이 과정에서 감사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중요한 자산의 취득 및 처분에 관한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받도록 하고 있는 농협정관 49조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2부] 정대근 前 회장 체제 끊이지 않는 의혹들

지난 수년간 농협을 둘러싼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고 새로운 의혹이 불거졌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규명된 것은 없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의혹은 지난해 농협이 매각한 정밀화학기업 휴켐스와 관련한 논란이다. 알짜배기 회사임에도 서둘러 매각을 추진한 이유가 의혹의 핵심. 매수자가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기업으로 알려진 태광실업(회장 박연차)이라는 점이 의혹을 더욱 부추겼다.

시계를 돌려 매각 직후 열린 국회 국정감사장으로 가보자. 다음은 2006년 농협중앙회 국정감사 당시 조경태(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농협 농업경제 대표이사(이연창)의 대화 내용.

조 의원 : 정밀화학이나 친환경농업, 바이오산업 등은 미래지향적이고, 이러한 사업이야말로 모기업인 남해화학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알맹이 있는 자회사 휴켐스를 매각한 이유가 뭡니까?

이 대표 : 남해화학에 아시다시피 크게 비료기능, 그 다음에 정밀화학 분야 기능의 2개 기능이 있다고 보는데, 정밀화학 분야는 직접 농민하고 관계가 없고, 전문가들에 의하면 앞으로 전망도 그렇게 … 이 휴켐스가 가지고 있는 전망을 따지면 그렇게 밝지가 못하다, 그래서 적기에 매각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 그런 판단을 했습니다.

조 의원 : 휴켐스의 연간 당기순이익이 얼마 정도입니까.

이 대표 : 100억원 이상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태광실업이 인수한 휴켐스는 원래 국내 최대 비료생산업체인 남해화학에서 독립한 회사로, 연간 3000억원 매출에 150억여원의 당기순이익(2006년 기준)을 내던 알짜기업이었다. 하지만 농협은 농협 사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고 미래 시장상황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29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이 회사를 시장에 내놨으며, 같은 해 6월30일 태광실업㈜ 컨소시엄에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46%(979만3921주)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알짜기업 휴켐스 서둘러 매각 … 헐값 처분 의혹도

‘헐값 매각 의혹’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매각 작업 당시 농협은 태광실업 측과 1777억원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매각 절차에 들어갔지만, 본계약 과정에서 전체 매각대금의 18%에 해당하는 322억원이 깎였다. 1차 매각 대상자 협상과정에서 태광실업 측이 “휴켐스 노조의 방해로 실사를 하지 못해 매각 대금이 너무 높게 책정됐다”며 농협 측에 MOU 해지를 통보하자, 농협은 아무런 문제제기 없이 127억원을 깎아줬다. 본실사가 진행된 뒤에도 농협은 태광실업의 감액 요청을 받아들여 최대 조정한도(MOU 체결 당시 금액의 10%, 177억원)까지 추가로 가격을 할인해줬다. 그 결과 인수가격은 1455억원으로 낮아졌다.

이 문제와 관련해 농협 이사 B씨는 “회장 지시사항으로 추진된 사업인 만큼 다들 문제를 알고도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매각 작업이 완료된 뒤에야 이사회가 열렸다. 많은 이사들이 매각 진행 과정을 알지도 못했다”고 밝혀 당시 농협 내에서도 상당한 문제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증권계와 재계에서도 말이 많았다. 만일 매각을 진행할 생각이었다면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남해화학과 함께 매각했어야 했다”는 의견이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분위기를 “농협 측은 미래 시장상황이 어두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매각 전후 시기에 많은 증권사들의 입장은 달랐다. 오히려 미래가치를 높게 봤고, 목표 가격을 당시 주가(약 7000원)의 2배에 가까운 1만2000원 정도로 제시했다. 공개매각 당시 태광실업을 제외한 나머지 3개 회사가 입찰에 들러리를 섰다는 루머도 돌았다”고 전했다.

2005년 12월 농협이 인수한 NH투자증권(구 세종증권)에 대한 소문과 의혹도 무성하다. 특히 소형 증권사임에도 매각 작업에만 1년 넘게 걸렸다는 점, 이 과정에서 주가가 10배 이상 폭등했다는 점 등이 눈총을 받고 있다.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세종증권 관련 의혹에 대해 검찰과 금융감독원이 한때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조사의 핵심은 주가조작,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당한 시세차익, 정·관계 로비 의혹 등이었다. 다음은 한 사정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주가 폭등 과정에서 현 정부의 실세 정치인들과 주변 인사들이 거액의 시세차익을 얻었다는 소문이 많았다. 금융감독원도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했지만 수사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이 많다.”

농협과 정치권의 유착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농협을 걱정하는 많은 관계자들이 꼽는 농협의 제1 개혁과제가 ‘탈(脫)정치화’일 정도로 ‘농협의 정치화’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정 전 회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농협을 좌지우지하고 전횡을 휘둘렀다는 지적에는 많은 농업계 관계자들이 의견을 같이한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협동조합개혁위원회 기원주 부위원장은 “농협이 정치화하면서 많은 문제가 시작됐다고 본다. 특히 정 전 회장의 경우 농협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골몰했다. 전농은 오랫동안 이 점을 지적하면서 농협이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으로 바로 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유착 ‘농협의 정치화’ 공공연한 비밀

농협의 정치권 유착 의혹과 관련된 몇 가지 단서도 취재 과정에서 포착됐다. ‘주간동아’는 최근 몇몇 사정기관의 내부 정보 보고자료를 입수함으로써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특정 정치인과 농협의 유착 의혹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중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농협은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여권 한 의원의 아들이 경영하는 H산업에 하나로마트 등 농협 자회사의 주차관리와 리모델링 공사 등을 몰아줘 연간 수십억원의 이익을 얻는 데 도움을 줬다. 확인 결과 H산업의 매출 대부분은 농협과 관련된 것이었다.”

농협 내부에서는 정 전 회장의 전횡에 가까운 경영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민주적인 논의 절차를 무시한 채 독단적으로 사업을 벌임으로써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에 비판이 집중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 전 회장의 고향인 경남 밀양에 추진 중인 국내 최대 규모(연간 2만4000t 생산)의 김치공장이다. 농협의 관계자 C씨는 “밀양 김치공장이 완공되면 지역조합들이 운영하고 있는 김치공장은 모두 문을 닫아야 한다. 중앙회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어렵게 사업을 이어온 일선 조합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배추 집산지도 아닌 곳에 굳이 국내 최대 규모의 김치공장을 세울 이유가 없다. 정 전 회장 개인의 정치활동이라고밖에는 해석할 방법이 없다”는 것. 밀양 삼량진 지역은 정 전 회장의 고향인 동시에 그가 24년간 조합장(8선)을 지낸 지역이다.

정 전 회장의 정치지향적 기업 운영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정권과 가깝게 지내온 것으로 알려진 정 전 회장은 지난해 8월 구속수감 중 보석으로 풀려난 이후 차기 집권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과 비교적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이 과정에서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대학 동문들을 대거 임원으로 등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확인 결과 농협은 정 전 회장이 회장으로 활동 중이던 올해 6월, 농협 전직 임원 두 명을 자회사인 NHCA자산운용(구 농협CA투자신탁운용)에 각각 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위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사람은 모두 고려대 출신으로 이명박 후보와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진 인물들이다. 이를 두고 농협 내에서는 “정 전 회장의 한나라당 줄서기”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차기 농협 회장을 노리는 사람들

12월 말 선거 … 자타천 4~5명 출마 준비


12월 말 치러질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후보는 총 4~5명이다. 대부분 지역 농협 대표인 이들은 정 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이후 발 빠르게 움직이면서 다가올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인사로는 먼저 전남 나주 남평농협 조합장이자 농협중앙회 이사를 맡고 있는 김병원(54) 조합장을 들 수 있다. 남평농협 전무를 거쳐 1999년부터 남평농협 조합장(3선)으로 재직 중인 그는 2006년엔 남평농협을 농협이 평가하는 종합 업적평가 1위 조합으로 만들어 주목받은 인물이다.

서울 관악농협의 박준식 조합장은 거론되는 후보 가운데 유일하게 수도권 농협 조합장이라는 이점을 안고 있다. 조합 차원에서 ‘우리 쌀 20만 포 팔아주기 운동’을 전개해 화제가 됐으며, 현재 서울 금천구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이봉주 현 농협 감사위원장도 출마를 위한 선거캠프를 꾸렸다. 현직 감사위원장이라는 프리미엄에 자신의 감사선거 경험을 살려 필승을 거두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최근엔 불출마설도 나돌고 있는 상황.경북 경주 안강농협 최원병(60) 조합장도 출사표를 던질 예정이다. 6선 조합장 출신으로 경북도의회 의장을 지낸 그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포항 동지상고 동문이라는 점을 은근히 부각하고 있다.경남 합천군 가야농협 조합장이자 농협 이사를 맡고 있는 최덕규(57) 조합장도 출마를 준비 중이며, 이 밖에 참여정부하에서 농림부 장관을 지낸 박홍수 전 장관, 충남 송악농협의 이주선 조합장 등도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3부] 마침내 드러난 꼬리, 매년 수십억대 비자금 물 쓰듯 사용?

농협 자회사가 수년간 100억원대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다. ‘주간동아’는 최근 국무총리실이 작성한, 농협 자회사의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내사보고서(이하 보고서)를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 이러한 사실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비자금이 정 전 회장의 지시 또는 묵인하에 조성됐으며, 조성된 자금 중 일부는 정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으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수년간 각종 구설에 올랐던 농협이지만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무총리실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내사보고서를 최근 경찰청 특수수사과로 이첩했다.

농협 고위간부 “내사보고서 90% 이상 사실 추정”

국무총리실은 올해 초 농협 내부자로부터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각종 의혹을 제보받은 뒤 내사에 착수했으며, 약 6개월간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와 관련해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확인된 비자금은 농협중앙회 계열사 가운데 한 곳에서 조성된 것이다. 확인된 비자금 규모는 최소 수십억원에서 최대 1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모든 내용은 11월 중순 경찰청에 통보됐고, 이미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보고서에는 농협이 비자금을 조성한 방법과 규모, 사용처 등이 비교적 자세히 나와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해 ‘주간동아’는 먼저 보고서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고, 특히 실명으로 언급된 기업과 개인 등에 대한 사실관계를 검증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농협의 고위간부 D씨는 이 보고서와 관련해 “90% 이상 사실일 것으로 추정된다. 부분적으로는 사실관계가 다른 것도 눈에 띄지만, 비자금 조성방법과 용처 등은 비교적 정확히 기술돼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D씨는 “이 정도 의혹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가 된 농협 자회사는 농협사료. 농협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연매출이 5747억여 원(2006년 12월31일 기준)에 달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농협사료 대표이사를 지낸 남경우(현 농협 축산경제 대표) 씨는 대표이사 재임 기간에 사료용 약품과 첨가제를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과정에서 4개의 납품업체로부터 연간 최소 수십억원에 달하는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으로 조성, 관리해왔다. 보고서는 4개 업체가 얻은 부당이익은 연간 250억원이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언급된 4개의 납품업체는 W흥업, B어드, S바이오, S상사다.

농협사료의 해외 납품 권한을 가지고 있는 농업무역에 따르면, W흥업의 경우 해외에 설립한 자회사를 통해 농협사료 측과 연간 1400만~1800만 달러의 거래를 하고 있다.

농협사료는 수입 과정에서 농협무역이 가져가는 수수료율을 조정하는 방법, 납품되는 약품의 수입단가를 부풀리는 식의 분식회계 방법, 그리고 납품업체로부터 약품을 납품받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장부상 매입가격을 올리는 방법 등을 이용했다고 보고서는 밝히고 있다. 비자금 관리에는 4개 납품업체 대표 또는 임원들의 친인척과 남 대표가 보유한 복수의 차명계좌가 이용됐다.

보고서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 중 일부 또는 상당 부분이 정대근 전 회장에게 전해졌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해부터 재판을 받아온 정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으로 상당액(3억원 이상 추정)의 자금이 동원됐다고 밝히고 있다. 정 전 회장이 비자금을 정·관계 로비에 이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힌 부분도 관심을 끈다.

이뿐만이 아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4개의 납품업체 측과 농협사료 간부들은 국내외 골프장을 다니며 내기 골프 등으로 비자금을 탕진해왔고 간부들에게 하사금 형식으로 나눠주는 등 선심용으로 사용했다. 또한 보고서에는 인사이동 때마다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뇌물이 오가기도 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고서가 밝힌 이들 관계자의 출입국 기록에 따르면, 2003년 2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중국 인도네시아 괌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으로 총 38회 이상 해외 골프여행을 다녀온 바 있고, 해외로 나가지 않은 경우에는 충북 전남 경기 지역 골프장에서 수시로 접대골프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농협 측 반론

前 농협사료 대표 남경우 씨 “내부감사 통해 모든 의혹 해소… 정 전 회장 변호사 비용 댄 일도 없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남경우 농협 축산경제 대표는 12월5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올해 초 자신과 관련한 의혹이 농협중앙회(이하 농협)에 투서 형태로 들어와 이미 조사를 받았고,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항변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사정기관에서 조사받은 사실이 있나.

“그런 일은 없다. 대부분 와전된 내용이다.”

- 납품업체들이 연간 250억원 가량의 폭리를 취하도록 도와주는 대가로 최소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있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농협사료가 납품업체들로부터 받는 납품금액이 연간 1400억원 정도인데 250억원 이상의 폭리를 취하게 하고 수십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 4개 납품업체들을 알고 있나.

“그들(납품업체 관계자)과 해외에서 골프도 많이 치고, 국내에서도 자주 만나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도 S상사 사장 아들의 결혼식에서 내가 주례를 섰다. 친한 사이다. 그러나 폭리를 취하도록 도운 적도, 비자금(리베이트)을 받은 일도 없다. 이 회사들이 다른 기업에도 납품하는데 가격을 속일 수 있었겠나. 여행을 할 때나 골프를 칠 때도 내 몫은 내가 모두 결제했다. 모든 증거를 다 가지고 있다.”

- 의혹에 대해 알고 있었나.

“올해 초 축산경제 대표 선거 직전 악의적인 루머가 농협 감사실에 투서 형태로 들어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감사실 관계자로부터 ‘투서가 들어와 조사를 했다지만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말만 전해들었다. 투서가 들어왔을 당시 나는 회사(농협사료)를 떠난 상태였다.”

- 정 전 회장의 변호사 비용을 댄 일이 있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일을 했겠나. 내가 바보도 아니고…. 전혀 그런 일이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한편 농협 측은 ‘주간동아’가 제기한 각종 의혹에 대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며 각종 근거자료를 제시했다. 정 전 회장의 구속으로 이어진 양재동 부지 매각건과 관련, ‘이사회 의결이 없었으며 이사들이 내용을 알지도 못했다’는 의혹에 대해 농협 측은 “이사회 의결사항이 아니었다”면서 이를 증명할 수 있는 농협이사회 규정을 팩스로 보내왔다.

다음은 규정의 일부. “이사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의결한다. - 8. 건별 300억원 이상의 업무용 부동산의 취득 및 임차.”

이 대목과 관련해 농협의 이사 B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사회 의결기준을 300억원으로 책정한 것 자체가 문제고, 설사 의결사항이 아니라 해도 이사들에게는 (추진 방향을) 알려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완전히 생략됐다”고 지적했다.

NH투자증권 인수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농협 측은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전해왔으며,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서는 “투서 내용이나 감사 경과를 알려줄 수는 없다”고 했다.




주간동아 615호 (p44~51)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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