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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BBK 이후 대선 3대 변수

속 모를 2030 표심 후보들은 “속 타요”

부동층 가장 많아 최후까지 집중공략 대상 … 이념보다 도덕성·경제 중시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속 모를 2030 표심 후보들은 “속 타요”

속 모를 2030 표심 후보들은 “속 타요”
쿨(cool)은 ‘지금’의 3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그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학을 다니면서 다양하고 풍족한 문화를 누렸다. “그들이 만든 영화는 2시간짜리 CF처럼 현란하고 그들의 문학은 ‘가벼움’과 ‘자본주의’를 사랑한다.”(‘신동아’ 2004년 7월호 ‘문화판 新주류’ 중)

그들은 386세대를 사로잡았던 ‘조국’ ‘민중’에 마음껏 무관심해도 좋았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자유분방과 참신성 대신 조로와 무기력증을 앓고 있다. 실업 때문이다.”(‘동아일보’ 12월10일자 ‘광화문에서’ 중)

2002년 대선 때도 젊은 유권자 결집이 판세에 큰 영향

‘비정규직’은 30대를 가리키는 또 다른 열쇳말이다. “386들은 민중 민주 개혁을 외치면서도 취직도 잘했건만 ‘포스트 386’은 ‘민중은 고사하고 시민으로도 진화되지 못하는 사회낙오자’”(문학평론가 함돈균)가 되기도 했다.

‘국가’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이 ‘뒤안’으로 흐트러지고 소비주의와 대중문화의 힘이 커진 시기에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굿바이 386!”을 외치면서 ‘쿨’한 세상을 지향했지만, 신자유주의의 파고에 부딪혀 좌절도 경험했다.



그들은 노무현 정권을 만드는 데도 기여했다. 운명의 시각은 2002년 12월19일 오후 1시. 방송사의 출구조사는 이때까지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노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오후 1시 이후 집중되면서 초반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2002년 대선 때는 세대간 대결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오전-이회창, 오후-노무현’으로 투표 경향이 나뉘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졌다. ‘조선일보’가 지난 대선 직후 젊은 유권자들이 왜 노무현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심층취재를 벌였는데, 결론은 이랬다.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 반(反)이회창 정서가 두껍게 형성돼 있었다. 이 후보가 3자구도에서 선두를 달리면서도 마의 40% 벽을 넘어서지 못한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반창(反昌) 정서가 있었기에 정몽준 지지자 대부분이 노무현 후보 쪽으로 건너가면서 승패가 갈렸다.”

2002년 대선 때 젊은 유권자의 결집이 없었다면 ‘역사의 물길’은 달라졌을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부동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젊은 세대의 선택이 주목받는 이유다. 젊은 유권자는 총유권자 수(3767만1149명) 가운데 42.3%(20대 730만9689명, 30대 863만2462명)를 차지한다.

“30대는 도덕성 이슈에 민감하다. BBK 사건 여파로 판 자체가 요동칠 것이다. 30대발(發)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질 것이다.”

검찰이 BBK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11월24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지지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다고 밝힌 유권자는 ‘20대 이하’(44.8%)와 ‘30대’(37.4%)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12월5일 검찰이 이명박 후보에게 무혐의라는 ‘면죄부’를 주기 전까지 정동영 후보 측은 30대 유권자의 지지율 변화에 크게 고무됐다. 이명박 후보가 전통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여온 30대에서 실용주의 ‘경제 담론’으로 우위를 보이던 흐름이 무너지는 기류가 감지된 것.

속 모를 2030 표심 후보들은 “속 타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서울 동작구 사당동 참사랑어린이집에서 맞벌이 여성들과 육아문제에 대한 타운미팅`을 가졌다.

11월 말 대통합민주신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일주일 전과 비교해 6.6%포인트 오른 24.6%, 이명박 후보는 7.7%포인트 하락한 28.9%를 기록했으며, ‘BBK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선 30대 유권자의 경우 정 후보(28.9%)가 이 후보(19.7%)를 역전했다.

BBK 사건이 폭로전으로 치달으면서 이명박 후보 지지층 가운데 이탈 조짐이 가장 컸던 그룹은 수도권 30대 유권자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부동층으로 이동한 데는 BBK 사건, 자녀 위장취업, 위장전입 등 이 후보의 도덕성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12월1일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30대 부동층은 38%, 20대 이하는 47.9%에 달했다. 정동영 후보 측이 11월 말, 12월 초 젊은 유권자를 상대로 한 유세에 화력을 집중한 것도 이들 부동층을 흡수해야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명박 후보의 위장취업 문제 등으로 그를 지지하던 젊은 층이 급속히 이탈하고 있다. 30대 표심이 전체 판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다. ‘이명박을 어떻게 찍느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정동영 의원 측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

정동영 후보는 ‘좋은 성장’ ‘좋은 경제’를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 “30만 청년 해외 파견 등으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내가 젊은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후보” “정동영은 여러분과 함께 호흡하는 미래”라고도 했다.

이회창 후보 가장 높은 지지 세대는 20대 ‘이채’

전통적인 범여권 지지층이었지만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화한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 것은 정동영 후보 측의 필수불가결한 숙제다. 일자리 창출과 부동산 문제 해법 등을 내놓으면서 30대 유권자를 유혹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듯하다.

12월1일 ‘동아일보’ 조사에 따르면, 30대에서 정동영 후보(13.4%)는 이명박 후보(32.0%)는 물론 이회창 후보(15.9%)에게도 뒤졌다. 5년 전 두꺼웠던 이들 세대(당시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반(反)보수 또는 반(反)이회창 정서가 무너졌다는 얘기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세가 가장 높은 세대가 20대라는 점도 흥미롭다. 앞서의 ‘동아일보’ 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는 17.6%. 그런데 20대 이하에서는 21.7%로 평균 지지율을 상회했다(30대 15.9%, 40대 17.8%, 50대 16.7%, 60대 15.1%).

“20대는 보수화했다. 그들은 ‘변질된 보수’ 대신 ‘바른 보수’를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30대인데 그들은 ‘차떼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회창 후보의 개인 비리가 아니었다. 이명박 후보는 부도덕하다. 30대 표심을 ‘바른 보수’인 우리가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이회창 후보 측 유석춘 정무특보)

검찰 조사로 이명박 후보가 ‘공식적’인 면죄부를 받으면서 이 후보의 도덕성에 실망한 30대 유권자를 흡수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계획은 차질을 빚게 됐다. BBK 사건 등으로 인해 부동층으로 옮겨갔던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이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BBK 면죄부로 정동영·이회창 역전계획 차질

속 모를 2030 표심 후보들은 “속 타요”

이회창 무소속 후보(맨 오른쪽)가 한 분식점에서 청년들과 점심으로 국수를 먹고 있다.

“검찰의 BBK 수사결과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다가 부동층으로 이동한 그룹에게 이 후보 쪽으로 되돌아갈 ‘명분’을 줬다. ‘네거티브’로 판세를 뒤집으려던 정동영 후보 측의 전략이 실패했다. BBK 특검 등을 이슈로 내세우면서 위장취업, 위장전입 등을 가지고 이 후보를 공격하겠지만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네거티브가 아닌 정공법으로도 전선을 만들어 나갔어야 했는데, 정 후보 측이 실기했다.”(윤경주 폴컴 대표)

현재로선 30대 표심이 ‘변수 아닌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 발표 직후인 12월5일 오후 CBS-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후보는 전주 대비 6.1%포인트 올라 이회창 후보 출마선언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20대와 30대에서 각각 7.4%포인트, 6.1%포인트가 오르면서 상승세를 이끌었다.

“이명박 후보는 기업에서 큰 사람이다. 때가 묻을 수밖에 없었다. 유권자가 우리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그가 깨끗해서가 아니다. 도덕성 문제는 이번 대선의 이슈가 되지 못한다. 국민은 일하는 경제대통령을 바란다.”(홍준표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장)

정동영 후보와 이회창 후보는 먼저 2위 다툼에서 앞서야 대역전을 노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부동층이 많은 30대 표심은 여전히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대선이 끝난 뒤 곧바로 총선 국면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도 30대의 선택은 중요하다. 유석춘 특보는 “한나라당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봤다. 범보수 단일화보다 내년 총선에 더 관심을 두는 모습이다.

“우리는 대선을 보수 대 보수 대결로 견인할 것이다. 대선에서 지더라도 총선에서 우리가 ‘제1야당’이 될 수 있다고 본다.”(유석춘 특보)

이명박 후보는 대선을 ‘이념’이 아닌 ‘경제’로 몰아가고 있다. 이회창 후보는 ‘바른 보수’, 즉 이념을 강조한다. 검찰 발표로 3자구도 필승론에 타격을 입은 정동영 후보는 ‘부패 대 반부패’ 구도로 대역전을 노린다.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검찰 수사에 분노한 유권자들이 결국 응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쿨~한 정이현(35)의 소설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는 30대에겐 ‘고급 가방’이라는 표현보다 ‘루이비통 가방’이 더 친근하고, ‘쥐색 코트’보다 ‘마크제이콥스 코트’가 더 와닿는다. 그들은 ‘맥주’가 아닌 ‘기네스’ ‘하이네켄’을 마신다. 소비자본주의에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면서도 경쟁에서의 낙오를 두려워하는 그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주간동아 615호 (p16~20)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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