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3

2017.01.25

특집 | 청탁금지법 그 후

강화 VS 완화 정치권 · 부처 간 힘겨루기

시행령 변경으로 ‘3  ·  5  ·  10’ 제한 풀릴까에 관심 집중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1-23 18: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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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집을 한 지 20년쯤 됐는데 지금보다 힘들었던 적이 없어요. 공직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까지 꽃 선물을 안 해 업계 전체가 흔들리고 있죠.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법 개정 관련 공청회에 화훼 관계자만 600명 가까이 모였어요. 한목소리로 ‘법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는데, 실은 ‘살려달라’는 호소였습니다.”(문상섭 사단법인 한국화원협회장)

    “정치권이 시행 100여 일 만에 청탁금지법 개정을 얘기하는 건 부정부패 근절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계부채, 경기침체 등 서민경제를 옥죄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청탁금지법 기준만 완화하면 곧 경제가 살아날 것처럼 호도하는 행태에 참담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김상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치사법팀장) 



    국회에서 잠자는 각양각색 개정안들

    설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이에 대한 각계 반응은 엇갈린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동법 개정안의 내용도 상반되긴 마찬가지다. 일부는 청탁금지법 기준 완화 또는 적용 대상 제한을 주장하는 반면, 다른 일부는 기준 강화와 적용 대상 확대를 요구한다.

    지난해 12월 30일 새누리당 심재철, 나경원 의원 등 10명이 낸 개정안은 후자에 속한다. 가장 최근 국회에 제출된 이 개정안의 골자는 청탁금지법을 강화해 공직자가 각종 청탁을 ‘받는’ 행위뿐 아니라 민간기업 등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행위까지 금하자는 것이다. 최근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의 여파다.



    검찰은 지난해 미르  ·  K스포츠재단 등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기업들이 해당 재단에 자금을 출연하는 과정에 일부 공직자가 개입했다고 밝혔다. 심재철 의원 등은 이 행위를 ‘공직자가 기부금품 출연을 ‘부정청탁’한 것’이라고 봤다. 이런 ‘준조세 요구’를 근절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기업활동 환경을 조성’하려면 청탁방지법에 관련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 개정안에는 구체적으로 ‘법령을 위반하여 기부금품 출연을 청탁하는 행위’와 ‘법령을 위반하여 채용·승진·전보 등 인사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청탁금지법을 현행보다 강화하자는 내용의 개정안을 낸 의원은 이외에도 더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박선숙 의원 등 15명은 지난해 12월 21일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를 골자로 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공공기관으로부터 자본금의 100분의 30 이상을 출자받은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과 그 임원’ 까지 동법 적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 등 16명 역시 지난해 9월 29일 네이버, 카카오 등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와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대표자 및 그 임직원’ 등도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청탁금지법 대상이 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냈다. 현재 포털사이트가 뉴스 유통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대법원 판례 또한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의 인터넷뉴스서비스 행위를 언론행위로 인정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8월 1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 등 17명이 낸 개정안 내용은 더욱 강력하다. 안 의원 등은 현행 청탁금지법 제1조 ‘금품 등의 수수(收受) 금지’ 조항을 ‘금품 등의 수수 및 직무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 추구 금지’로 고치고, 공직자 등이 4촌 이내 친족과 관련한 직무를 맡지 못하게 하는 등 법 내용을 더욱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슈퍼 김영란법’으로까지 불린다.  



    시행령 개정 논의 힘 실릴까

    반면 청탁금지법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지난해 6월 28일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 등 13명이 낸 개정안은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을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의례 목적으로 선물’할 경우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 농수축산물의 40∼50%가 명절 선물용으로 소비되고 과일 선물세트의 50%, 한우·굴비 선물세트의 99%가 가격이 5만 원 이상인 현실’을 감안할 때 농어민 보호를 위해 청탁금지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강석호 의원 등 10명도 지난해 6월 30일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추석이나 설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간’에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 축산물과 그 가공품’을 ‘사교 · 의례 목적으로 선물’할 경우 제한적으로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7월 6일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 등 25명이 발의한 개정안은 좀 더 심플하다. 김종태 의원, 강석호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개정안의 제한사항을 다 없애고 ‘농수산물과 농수산가공품’이기만 하면 청탁금지법의 예외로 삼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한참 전부터 국회에 제출됐던 이들 ‘완화 목적’ 개정안은 그동안 별다른 논의 없이 사실상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최근 외국산 농수축산물을 사용한 설 선물세트의 매출이 급증하면서 농어민 보호를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법 개정 절차가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법 개정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청탁금지법을 완화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농어민과 외식업자 등이 완화를 요구하는 ‘3·5·10’ 조항은 청탁금지법 시행령에 규정돼 있다. 총리실, 기획재정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련 부처는 이 가액 한도 상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청탁금지법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 3개월에 불과한 시점에 (개정을 논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법적 안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우려가 있는 만큼 경제 부처의 꼼꼼한 검토가 전제돼야 한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청탁금지법을 둘러싼 부처 간 힘겨루기가 어떻게 마무리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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