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3

2007.05.01

황만근과 엄 행수, 강아지똥을 싸다

  • 노만수 학림논술연구소 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문창과 교수

    입력2007-04-27 17:41: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황만근과 엄 행수, 강아지똥을 싸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실제 주인공 엄기봉(43) 씨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80)의 어깨를 주무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 왼쪽). 영화 ‘맨발의 기봉이’.

    ‘바보 자석’ 황만근이 없어졌다. 농가부채 탕감촉구 전국농민대회에 양복 입고 자가용 타고 간 사람은 돌아왔지만, 이장님 방침대로 ‘혼자만’ 경운기 끌고 간 것이 화근이었다. 있으나 마나 한 인물이었지만 소중한 존재였던 황만근.

    백분(번), 찝원(십원), 여끈(열근), 두바리(마리) 등 그와 얽힌 전설은 많았다. 백번은 어릴 적 유난히 자주 넘어지던 그가 넘어진 횟수다. 동네 홍시라도 떨어지면 어김없이 황만근이 넘어지는 소리라며 웃었다. 찝원은 열서너 살 먹도록 “국수 찝원어찌만 쪼요”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전쟁 중에 포탄 구경 나간 애비가 유탄을 맞고 세상을 뜰 때, 여덟 달째 배 속에 머물고 있던 황만근을 어미가 아래로 빠뜨리는 바람에 팔푼이가 되었다.

    혀 짧은 팔삭둥이인 그는 마을 공동 분뇨를 퍼가 충분히 익힌 뒤 공평하게 나눠주는 ‘잇속 없는 놈’이었다. 남들처럼 제가 펐다고 제 밭에만 뿌리지 않았다. 여씨 노인처럼 남편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는 더 자주 거름을 가져다주었다. 저수지에 빠져 죽으려는 처녀를 우연히 구해 용케 장가는 들었지만, 아이 낳고 일곱 달 만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처는 상피 붙다 자살하려던 농기계상 집 딸내미였다.

    아내는 시집올 적 폐물로 가져온 경운기만 남긴 채 사라졌지만, 황만근은 이 경운기로 동네 사람이 먼저 옷깃을 잡아당기려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나 여자처럼 장정의 반밖에 안 되는 품이었음에도, 경운기와 함께 제값을 쳐주기 시작했다. 동네의 유일한 경운기였으니까.

    그는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않았고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축의 숨을 끊는 일에서부터 내장을 손질하고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포정의 업(業), 책에서 나오는 예(禮)는 몰라도 염습과 산역(山役)처럼 남이 꺼리는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섰으며, 동네 사람들은 서슴없이 그에게 그런 일을 맡겼다. 홀어미에겐 비린 고기반찬 거른 적이 없는 ‘맨발의 기봉이’ 같은 효자 바보였다.



    그런 그가 궐기대회에 나간 지 일주일 만에 뼛가루로 돌아왔다. 혼자 경운기를 타고 읍내까지 비 쫄딱 맞고 갔지만 이미 대회는 끝났고, 홀어미에게 드릴 생선을 산 뒤 경운기를 몰며 돌아오다 논두렁에 처박혀 삶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귀농한 동네주민 민씨는 황만근에게 이런 묘비명을 바쳤다.

    “아아, 선생이 좀더 살았더라면… 남의 비웃음을 받으며 살면서도 비루하지 아니하고 홀로 할 바를 이루어 초지를 일관하니, 이 어찌 하늘이 낸 사람이라 아니할 수 있겠는가.”

    황만근과 엄 행수, 강아지똥을 싸다

    성석제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왼쪽). 권정생의 ‘강아지똥’.

    해학(諧謔)의 극치를 보여주는 성석제의 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연암 박지원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과 닮았다. 연암의 제자인 이덕무에게 예덕선생, 즉 ‘똥 푸는 선생님’이라 부르는 벗이 있었다. 하루는 이덕무의 제자가 스승이 비천한 하류 막일꾼의 덕을 칭송하고 선생이라 부르며 우정을 쌓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문하를 떠나려고 했다. 그러자 이덕무는 ‘민씨처럼’ 말했다.

    “엄 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주는 일로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 알 만하다네.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엄 행수와 비교해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거의 드물 걸세. 그래서 나는 엄 행수를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네.” -박지원 ‘예덕선생전’ 서강대 07 수시1

    황만근이나 엄 행수는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못 미치는 인간이다. 이용당하기만 하고,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혼절한 듯 잠자고, 껄껄 웃고, 가만히 있을 때는 어리석어 보여 천상 양반네는 아니다. 하지만 오이 수박 호박 고추 마늘 부추 미나리 토란 등은 그들의 똥으로 실해진다.

    따라서 황만근이나 엄 행수는 이타적이고 공평무사하며 분수를 아는 삶, 성실과 진정의 정신을 하류인생으로 농익게 했으니 그들이야말로 ‘하늘이 내고 땅이 일으켜 세운 사람(선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이른바 더러움 속에 자기의 덕행을 파묻고 세상 속에 크게 은둔한 ‘진흙 속 연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물질적 곤란’을 당해 견딜 수 없을 때 또는 마음속에 속물근성, 아첨, 도둑질, 거들먹거림의 기운이 설 때 그들을 모델로 삶으면 삶이 정화될 것이라는 게 연암과 성석제의 메시지다.

    또 어찌 ‘쓸모없음의 쓸모’가 오직 사람에게만 국한될 것인가. 혹투성이 가죽나무의 쓸모없음을 개탄하는 혜자에게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왜 그것을 광막한 들에다 심어놓고 그 곁을 방황하면서 무위(無爲)로 날을 보내고 소요하다가 그 밑에 드러눕지를 않는가?” -서강대 07 수시1

    큰 나무가 구불구불하면 재목으로 쓸 수 없지만, 그 때문에 도끼에 찍히지 않고 그림자를 드리워 뭇 생명이 더위를 식힐 수 있다는 ‘쓸모없음의 쓸모’론이다. 다시 말해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이지만,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놓고 그 둘레를 모두 황천에 이르기까지 파 없애면 쓸모 있는 땅이 과연 쓸모 있겠는가[장자, ‘외물(外物)’ 편]”라는 물음인데, 쓸모 있는 성리학만 남겨두고 쓸모없는 엄 행수의 똥지게를 버리면 누가 반찬거리를 기르겠느냐는 뜻이다.

    어느 날 공자(孔子)의 말이 농부의 밭을 망가뜨렸다. 화가 난 농부는 말을 끌고 가버렸다. 공자가 제자 자공을 먼저 보냈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부를 보내자 밭주인은 말을 되돌려보냈다.

    공자는 왜 처음부터 마부를 보내지 않고 자공을 보냈을까. 공자가 마부를 먼저 보내면 자공은 속으로 서운한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자공 스스로 실패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세상만사 책 속 지식만 통하는 게 아니라, 하류인생들의 지혜도 쓸모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줄 의도였다. 연암과 성석제도 공자처럼 우리에게 고담준론보다 마부를 보낸 것이다. 그런 마부가 죽으면 무덤이야 보잘것없지만 이미 ‘무덤 하나에 작품 한 편’쯤은 남기는 법이다.

    “국가의 대사를 헤아려보면 무척이나 많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 마음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고 있지 않다. 단지, 하나의 작은 사건만이….”

    -루쉰 ‘작은 사건’ 01 서울대 정시

    소설 ‘작은 사건’은 자전적 일화다. 주인공 ‘나’는 1917년 북경에서 인력거를 타고 가는데, 자신이 탄 인력거에 남루한 노파가 부딪힌다. ‘나’는 그 노파가 크게 다치지 않고 목격자도 없으니 ‘그냥 가자고’ 인력거꾼을 재촉한다. 그러나 인력거꾼은 남루한 노파를 부축해 파출소로 데려가 일을 처리한다. 이 ‘작은 사건’은 이후 ‘나’에게 국가대사나 학술쟁점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고 나를 격려하며, 나아가 나의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주는 것”이 된다.

    상수도를 위해 하수도의 몫을 담당하는 측은 역시 하류들이라는 점은 어제오늘의 세도(世道)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노자는 “물은 온갖 것을 위해 섬길 뿐 그것들과 겨루는 일이 없고,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을 향해 흐를 뿐”이라고, 말인즉슨 황만근이나 엄 행수처럼 ‘물봉’처럼 살다 가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아니던가. 한마디로, ‘물봉바보’인 엄 행수(18세기)와 황만근(21세기)은 200살도 더 차이가 나지만 똑같이 ‘강아지똥’을 싸지르다 간 것이다.

    “내가 거름이 될 수 있다니! 강아지똥은 얼마나 기뻤던지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았습니다. 봄비가 내렸습니다. 온몸에 비를 맞은 강아지똥은 잘게 부서져서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민들레의 거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민들레는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강아지똥의 고운 마음이 민들레 꽃송이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권정생 ‘강아지똥’

    - 추천도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성석제, 창작과비평사), ‘나는 껄껄선생이라오’(연암 박지원, 보리)

    생각 & 토론거리



    1. 예덕선생의 가치관이 인류 역사와 문화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가?

    -서강대 07 수시1

    2. 박지원의 ‘광문자전’에서, 거지 광문의 시민적 가치 덕목은?

    -중앙대 98 정시

    3. 소설 ‘작은 사건’과 ‘슈바이처 생애’에서 공통된 삶의 자세는?

    그것이 주는 오늘날의 의미는? -서울대 01 정시

    4. ‘양반전’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속 인물들의 삶을 비교해보자.

    -고등 ‘문학’

    5.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것이 위험하지 않은데도 구조하지 않을 경우 3개월~5년의 징역이나 360~1만5000프랑의 벌금에 처한다”(프랑스 형법)라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정당한가?

    6. 고대 그리스, 칼네아데스는 나무판자를 잡고 표류 중이었다. 다른 사람이 같은 판자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는 무시했고,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긴급피난’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정당한가?

    7. 착하다는 것은 똑똑하다는 뜻인가? 착함은 곧 행복인가? 예로부터 ‘착해도 똑똑하지 않은 사람들’이 ‘왕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요순시대가 좋다고 한다. 착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왕을 서로 양보하는 좋은(?) 세상은 올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