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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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찌꺼기 내게 말을 해봐!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4-25 1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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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의 찌꺼기 내게 말을 해봐!
    정강은 사진과 비디오 작업을 병행하는 작가다. 사진과 비디오 모두 같은 대상을 찍은 ‘Say, 2006’이라는 작업은 대상에게 ‘말하지 않고, 본인을 이야기해보라’는 촬영자(작가)의 주문에 따라 각각의 대상이 무언으로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 또는 감정을 전달한다.

    사진작업 속의 대상들은 줄곧 관객을 응시한다. 또한 비디오 속 주인공들은 약간씩 움직이는데, 사운드는 예를 들면 병 깨지는 소리, 구둣발 소리 같은 것들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인물들을 가만히 지켜보다 문득 촬영된 대상이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How are you, 2006’이라는 비디오 작업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인물들은 미국에서 매우 일상적인 질문-그러나 이것이 버지니아공대 총기살해 사건의 한국인 피의자가 피해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임이 알려지면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 듯하다-에, 즉 ‘요즘 어때요?’라는 물음에 대답을 한다.

    대답에는 거의 특별한 것이 없다. 그들은 깊은 의미를 이야기하지 않고 어떤 과거지사를 토로하는 것도 아니며, 희망찬 미래의 꿈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그러한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우리에게 제안을 한다.

    “차 마실래? 말 좀 해봐. 이거 가질래?”



    사실 우리 일상에는 어떤 절박함이나 욕망의 분출, 판타지도 없다. TV 드라마에 나오는 대단한 불륜도 끈적함도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차 한잔 할래요?” “이거 가질래요?” 심지어 “요즘 어때요?”라는 제안을 툭(!) 한다면, 그것은 어떤 파장이 될지도 모른다. 정강은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 셈이다. 조금 가볍게, 그리고 약간은 경쾌하게, 굳이 어떤 대답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반향을 기대하면서.

    욕망의 찌꺼기 내게 말을 해봐!
    무언으로 관객에게 감정 전달

    정강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언(speechless)으로 혹은 우물우물 웅얼거리면서, 때로 응시 속에서, 어떤 일상의 이야기와 제스처 속에서, 어떤 욕망의 차원을 드러낸다. 그들이 던지는 제안과 그 파장은 우리 내부에서 일어난다. 그들의 불완전하고 불안한 응시 속에 응축돼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찌꺼기는 고스란히 우리 몫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이제 그들(타자)과 우리(주체) 사이의 소통은 그 찌꺼기, 잉여를 통한 교환 속에서 일어날 것이다.

    5월19일까지, 갤러리 정미소, 02- 743-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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