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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디 연출, 송민순은 비중 있는 조연?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 미국 주도 프로세스… 정상회담 등 깜짝 이벤트 만들기 ‘산 넘어 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콘디 연출, 송민순은 비중 있는 조연?

콘디 연출, 송민순은 비중 있는 조연?

3월2일 미국 국무부에서 만난 송민순 외교부 장관(왼쪽)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안희정 씨가 남북간 비선(秘線)라인을 뚫고자 북한의 리호남 참사와 접선한 때는 북한 핵실험(10월9일) 직후인 지난해 10월20일.

“당시엔 북한과 어떤 라인도 연결되는 게 없었다. 국정원 쪽도 꽉 막혀 있었다. 다른 라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로드맵은 북한의 핵실험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서울은 당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북한 핵실험이 안씨를 베이징으로 부른 셈이었다.

그러나 안희정-리호남 만남에서 비롯한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국정원의 견제 △공식라인의 부활 △북미간에 불어온 순풍 등에 의해 일단락된다(‘주간동아’ 579호 커버스토리 참조).

청와대가 ‘위기 때’ 잠시 샛길을 기웃거리다 ‘훈풍이 불자’ 대로(大路)로 돌아온 셈이다. 이 대로에는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드라이버(driver)는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그의 드라이브는 한동안 ‘거침없이 하이킥’이었다. 한반도에 뚫린 ‘큰길’은 4월 초순까지만 해도 탄탄해 보였다.

‘송민순 드라이브’는 2·13합의라는 요로(要路)를 지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2·13합의가 이뤄진 다음 날 노 대통령은 마드리드에서 송 장관을 한껏 추어올린다.

“2005년 9·19 공동성명 당시 남북간 평화체제 문제, 다자안보 문제를 공동성명에 끼워넣은 사람이 있다. 이마도 툭 튀어나오고 별로 잘생기지 않았는데도 장관으로 발탁한 것은 그 점에 대한 평가 때문이다. 이번 합의에서 중요한 것은 북핵문제 해결 자체는 물론이지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하기 위한 협의·협상을 해나간다는 조항이 들어 있고, 나아가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협력체제를 만들기 위한 협의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외교·안보 라인은 사실상 송 장관의 독주체제다. 쌀·비료 지원, 남북간 철도연결 등 남북한 문제에도 외교부의 입김이 거세다. 일찍이 외교부가 남북한 문제에서 조타수 구실을 한 적은 없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盧 신뢰, 외교부가 대북 정책 주도

“대북정책과 관련한 조직은 크게 청와대(대통령),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통일부, 국정원, 외교부로 나뉜다. 예전엔 대통령과 통일부 중심에 국정원이 깊숙이 개입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뒤로는 NSC-통일부-국정원의 협력구도가 생겼다. 그런데 지금은 외교통상부가 헤게모니를 쥐고 통일부와 국정원이 지원하는 모양새다. 외교부에 힘이 실린 건 노 대통령이 그만큼 송 장관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콘디 연출, 송민순은 비중 있는 조연?

남북장관급회담 3일째인 3월1일 평양 옥류관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맨 왼쪽)이 대동강변을 바라보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골수 햇볕론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부의장 시절엔 “(북한이 핵실험을 했더라도)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끊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으며, 장관 취임 초기엔 “남북정상회담은 살아 있는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턴가 표변(豹變)했다. 정상회담은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잘라 말하는가 하면, 6자회담이 진전돼야 쌀을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왜 표범처럼 털가죽을 갈았을까?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소속 L 의원(열린우리당)의 분석이다.

“이 장관의 통일부가 송 장관의 외교부에 제대로 밀린 것이다. 이 장관은 3월 남북장관급회담에서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을 북측과 합의하고 돌아왔다. 이 장관은 치적 격인 시험운행을 최대한 당기려 했으나 외교부가 가로막은 것으로 안다. 북한이 4월14일까지 2·13합의의 초기조치 이행을 완료하는지 지켜본 뒤 시작하라는 거였다. 서훈 국정원 3차장도 지금은 별게 없다. 송 장관 주도다.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이 실현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송 장관과 이 장관이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고 한다. “남북관계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이 장관의 주장에 송 장관이 “6자회담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고 맞받았다는 것. 당시 노 대통령은 외교부가 잘하고 있다면서 송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이 장관이 두 발짝 물러선 때는 이즈음인 것으로 보인다.

자주파인 이 장관이 물러선 데서 미뤄볼 수 있듯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하위변수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송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북대화는 (6자회담의) 보조적·지원적 구실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정부 방침이 있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한 노 대통령의 언급은 송 장관의 그것과 단어 선택까지도 엇비슷하다.

남북대화 채널은 크게 세 종류다. 우선 통일부가 주연 격인 공식-공개 채널. 이 채널은 남북이 협상장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언론에도 보도된다. 공식-비공개 채널의 주역은 정보기관(국정원 대북전략국과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가 파트너)이다. 이 채널은 공식-공개 채널에서 이뤄지는 회담의 정지작업도 한다. 끝으로 비공식-비공개 채널, 즉 ‘비선라인’이 있다.

공식-공개 채널의 숨은 조력자이자 공식-비공개 채널의 핵심은 서훈 국정원 3차장이다. 그가 누구던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국정원 대북 채널이던 ‘KSS 라인’(김보현 당시 국정원 3차장, 서영교 대북전략국장, 서훈 대북전략조정단장)의 일원이던 그는 2005년 6월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김정일 위원장 면담과 9월 장관급회담에 동행해 막후조율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현재 공식-비공개 채널의 영역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재정의 통일부’뿐 아니라 재가동에 성공한 ‘서훈의 국정원’도 ‘송민순 드라이브’에 견인되는 모습이다. 한 북한전문가는 “외교부의 6자회담이 잘되면 국정원의 정상회담이 들어가는 절차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아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용순 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임동옥 전 통일전선부장의 사망 이후 공식-비공개 채널의 북한 쪽 카운터파트인 통전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언론사 외교·안보분야 논설위원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국정원도 잘 알지 못한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송 장관의 파워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외교부는 최근 재외공관 운영 방침을 놓고 구설에 올랐다. 국정원 해외공관 파견관도 공관장의 보고체계 속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는데, 국정원 IO(Information Officer) 를 편입시키려는 외교부의 의도에 일부 국정원 관계자들은 발끈했다. 과거엔 IO들이 외교 전문(電文)을 중간에 가로채거나 대사를 흠집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통일부에선 송 장관이 독선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가 통일부의 영역을 치고 들어오는 게 못마땅하다는 시선도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정동영-이종석 장관을 거치면서 ‘힘을 갖고’ 남북관계 전반을 이끌어온 통일부 관료의 상당수가 남북한 문제에 개입한 외교부, 특히 송 장관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통령이 어떤 기관에 곁점을 찍었느냐에 따라 권력지도는 확 바뀐다. 지금 방점은 외교부에 찍혀 있다. 국정원이 지난해 12월 비선라인을 제압한 뒤 추진하던 대북 프로젝트도 ‘송민순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은 뒤로는 한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병렬변수 혹은 종속변수가 된 모습이다. 6자회담의 결과물이 없는 상황에서 ‘쌀과 비료를 주고 그 대가를 받는 공식라인의 해묵은 방식’은 국민 동의를 받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를 북핵문제와 철저히 연계한 ‘송민순 드라이브’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북한이 2·13합의의 초기단계와 중간단계의 이행조치를 완료한다는 전제 아래 평화체제 논의는 탄력을 받았다. 종전선언→북미간 연락사무소 설치→잠정평화협정→평화협정 및 북미수교로 이어지는 쪽빛 시나리오도 나왔다.

요컨대 외교부 주도의 로드맵은 핵문제 해결조치 진행→평화체제 구축 협의 진행→미북간 대타협 구도 확정→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구도를 기본으로 해서 그 가운데 남북한 양자의 대화와 협력구도를 끼워맞추는 식이다. 북핵을 해결하려면 △관련국 관계정상화 △영속적 평화체제 구성 △경제·에너지 지원 등 관련 사안을 한몫에 엮어서 풀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북한이 평북 영변의 원자로를 폐쇄하고 2·13합의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완료하면 6자 외무장관회담이 이어진다. 이 회담에선 평화포럼의 운영 방식과 로드맵 등이 협의될 것으로 보인다. 평화포럼엔 남-북-미-중 4개국이 참여하게 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6·25전쟁의 당사자 격인 4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종전선언에 서명하는 ‘압록강도 놀랄’ 이벤트가 벌어질 수 있다.

북·미 빅딜 로드맵 젤리코가 기획

언뜻 보면 괜찮은 그림 같다. 집권 측은 이런 청사진이 노 대통령 임기 내에 일부 실현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이해찬 전 총리는 “남북한과 미·중이 모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결단할 시점이 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7개월 동안 남북관계가 엄청나게 좋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벤트는 대선 국면에도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친다. 덧붙여 국정원 채널을 통해 ‘통 큰 대북 지원’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따라들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송민순 드라이브’에 매료된 집권 측의 바람은 과연 이뤄질 것인가.

송 장관이 누구던가. ‘커늘(colonel·대령) 송’이라는 별명의 용장(勇將)이다. 그가 수석대표로 참가한 대미(對美)협상에서 책상을 치며 미국 측에 언성을 높인 일화는 유명하다. ‘자주’를 강조하는 노 대통령과 ‘386실세’에게 지나치게 코드를 맞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관 취임을 앞두고는 ‘반미(反美) DNA’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반미 논란’은 언론의 ‘오버’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 장관이 외교·안보 라인을 견인하면서 노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주’ 혹은 ‘주도적 위치’는 실종되고, 북미관계에 남북관계가 종속돼 돌아가는 모습이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자주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해온 현 정부가 미국의 반 발짝 뒤에서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이는 건 역설적이다.

외교부는 전통적으로 친미적이다. 이 말은 외교부가 가진 정보의 상당수가 미국발(發)임을 의미한다. 미국한테서 받은 정보에 의거해 평양을 분석하다 보면 정보 종속이 나타날 수도 있다. 송 장관도 ‘외교 관료’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예컨대 송 장관이 이끄는 평화체제 논의도 ‘미국에 의해’ 착안됐으며, ‘미국의 주도로’ 실행되는 프로세스다.

노 대통령의 추어올림대로 송 장관이 2005년 9·19 공동성명 때 중국이 만든 초안엔 없던 남북간 평화체제 문제, 다자안보 문제를 공동성명에 끼워넣은 것은 사실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는 9·19 공동성명에서 약속된 사안이다.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진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그러나 평화협정 체결을 근간으로 북한과 빅딜을 이뤄내자는 로드맵은 2005년 초 콘돌리자 라이스(이하 콘디) 미 국무부 장관의 보좌관으로 특채된 필립 젤리코 버지니아대 교수의 작품이다(1990년대 말 4자회담에서 찰스 카트먼 당시 미 국무부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가 평화체제 구상을 처음으로 내놓았으나 그의 구상은 현재처럼 발전된 형태는 아니었다).

젤리코 보좌관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선 △평화협정 체결 △에너지 및 경제 지원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한몫에 엮어 풀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송 장관의 최근 언급과 거의 같다). 콘디는 젤리코 보좌관의 구상에 매료됐고, 2005년 부시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추진해보라”고 지시했으나, 일부 네오콘은 그의 구상을 깎아내렸다고 한다.

자칫 강대국 각축장 될 수도

콘디는 젤리코 구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네오콘인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이 거세게 반발한 데다, 국무부 아태국도 이른바 유럽라인(라이스- 졸릭)이 ‘유럽 모델’을 동북아에 기계적으로 넣으려는 시도를 깎아내렸다. 국무부 아태국, 백악관, 국방부가 내켜하지 않았음에도 콘디는 이 구상을 폐기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적극적인 대화에 나선 것은-젤리코 구상이 되살아난 것은-네오콘의 영향력 감소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9월 부시 대통령은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불러 “북한은 라이스에게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국방부를 떠나면서 네오콘의 세는 더욱 약해졌다.

‘젤리코 구상’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라는 선물을 안길 묘안(妙案)인가, 아니면 미국 비판세력의 지적대로 몽상(夢想)인가. 한 발짝 뒤에서 미국의 정책을 쫓아가는 정부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한반도문제 전문가 K씨의 분석이다.

“참여정부의 정책기조는 전환이 아니라 전변이다. 지난 4년을 이끌고 왔던 대북정책을 포기한 모습이다. 이럴 거면 왜 자주를 외쳤는가. 북한은 사실 평화협정이라는 문서 체결 자체엔 큰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물론 어느 시기엔 반드시 그 단계로 이행되길 바란다. 단기적으로 북한의 목표는 미국이 씌운 고깔을 벗는(테러지원국 해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종료) 데 있다. 미국이 참여정부와 함께 종전문서에 서명할 가능성은 낮다. 노 대통령의 임기는 올 12월이면 사실상 끝난다. 노무현-김정일-부시-후진타오가 모여서 종전선언을 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멋지다. 그런데 범여권 인사들은 사안을 너무 쉽게 보고 있다. 범여권 인사들이 4자 정상회담 운운하는 건 판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미국은 참여정부와는 전혀 다른 타임 스케줄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4월14일로 예정된 초기조치 이행 완료 시한을 넘기면서 송민순 드라이브엔 첫 브레이크가 걸렸다. 4월19일 10개월 만에 열린 제13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협위)는 쌀 지원 문제로 첫날부터 난항을 겪었다. 이때까지 초기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북한이 쌀 문제로 몽니를 부렸기 때문이다.

‘송민순 드라이브’가 넘어야 할 산은 앞으로도 많다. 우선 북한이 핵폐기 일정을 각 단계마다 미룰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한이 어중간한 핵문제의 해결만 허락하면서 반대급부를 최대한 받아내려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는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 강경파의 태도도 변수다. 이들은 2·13합의문에 북한의 핵무기 폐기 의무가 빠져 있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라고 비난한다.

최근 북미관계 진전은 천재일우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4국 정상이 종전선언에 서명하고, 나아가 북미가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이벤트는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젤리코 기획, 콘디 연출’의 평화체제 구상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송민순 드라이브’는 앞으로도 적지 않은 요철과 걸림돌을 넘어야 할 것 같다. 또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그 종착점이 통일의 길을 여는 게 아니라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는,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쪽배를 나눠 탄 남북이 적대감을 해소하고 한 배에 올라탈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7.05.01 583호 (p24~27)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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