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4

2016.11.23

김민경의 미식세계

30년 전통의 맛과 정성, 골목대장 되다

서울 을지로의 순대·돼지고기

  •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16-11-21 15: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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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대의 스펙트럼은 대단하다. 분식을 좋아하는 아이와 여성에게는 최고의 간식, 직장인에게는 가격 부담 없는 안주이자 해장 요리이면서 또 어떤 이에게는 그리운 고향의 맛을 대신한다. 순대를 즐기는 부류가 다양한 만큼 종류도 여러 가지다. 당면이 주로 들어가 단순한 맛이 나는 것, 선지를 듬뿍 넣어 깊고 묵직한 맛을 살린 것, 각종 재료를 통오징어 안에 꽉 채운 것 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주로 쪄서 먹지만 삶아서 볶거나 튀겨 먹기도 한다.

    해가 지면 인적이 드문 서울 을지로 골목에는 밤새 불을 밝히는 숨은 맛집이 참 많다. 돼지고기와 순대를 파는 ‘산수갑산’도 그중 한 곳이다. 최준우(61) ‘산수갑산’ 사장은 미동도 없이 30년을 한자리에서, 그야말로 청춘을 불태우며 순대를 만들어왔다. 온갖 유행과 입소문에 때로 희비도 엇갈렸지만 대를 이어 찾아오는 손님의 발길이 끊긴 적은 없다. 그 비결은 언제 어느 때 가도 한결같은 맛이다. 최 사장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맛을 지켜냈다.

    ‘산수갑산’에서 하루 평균 손질하는 고기의 양은 돼지머리 20개에 기타 부위가 300근(180kg)에 이른다. 다듬고 삶는 손질 과정에서 3분의 1 정도가 버려진다. 여분의 기름기나 식감이 안 좋은 부위는 가차 없이 쓰레기통행이다. 이곳 순대와 모둠고기가 식어도 잡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오히려 차가운 고기의 쫄깃쫄깃하고 고들고들한 식감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들여온 고기는 하루 종일 틈틈이 손질하고 삶는다. 돼지머리는 삶는 것만큼이나 살코기를 발라 결에 맞춰 알맞은 두께로 써는 기술도 중요하다.

    내장은 무엇보다 신선함이 맛을 좌우한다. 대창 순대는 하루에 두 번 만든다. 순대 속에 당면은 들어가지 않고 찹쌀과 두부, 신선한 고기와 선지, 여러 채소를 듬뿍 넣는다. 특히 우거지를 많이 사용한다. 말린 채소 특유의 구수한 맛과 향이 고기의 잡냄새를 잡아준다. 수분도 적어 차진 속을 만들기에 제격인 재료다. 대창 순대의 매력은 쫄깃한 창자에 있다. 오징어처럼 도톰한 창자 끄트머리 부분은 유난히 씹는 맛이 좋고 고소해 접시에서 가장 빨리 사라진다.

    순대모둠(1만8000원)에는 대창 순대, 암퇘지의 새끼보, 오소리감투(위장), 여러 부위의 머릿고기, 간 등이 한 접시에 나온다. 허파는 주로 순댓국에 넣기 때문에 따로 주문하는 이에게만 조금씩 썰어준다. 순대와 고기는 새우젓이나 간수를 뺀 후 곱게 빻은 천일염에 찍어 먹는다. 곁들이는 반찬은 단출하다. 양배추와 고추, 시원한 섞박지, 알싸한 마늘과 마늘종 무침, 쌈장이 전부다. 손님상마다 푸짐하게 순댓국물을 내고 식으면 양을 채워 데워준다. 식어도 맛있는 순대모둠은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 판매하는데 가격은 1000원 더 저렴하다.



    ‘산수갑산’에서 허기를 채웠다면 을지로3가 방향으로 걸어가 골뱅이나 마른안주, 꼬치요리나 어묵을 곁들여 가볍게 한잔 즐기거나, 충무로 방향으로 내려가다 만나는 인현시장에서 생선구이 또는 해물요리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다.

    사실 가게 이름인 ‘산수갑산’이라는 단어는 없다. 삼수갑산(三水甲山)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잘못 표기되고 그 뜻도 ‘경치가 수려한 곳’으로 오용됐다. 삼수와 갑산은 각각 함경남도에 있는 척박한 지역 이름일 뿐이다. 우리말이 소중한 만큼 굳이 덧붙인다.

                  산수갑산

    서울 중구 을지로20길 24, 02-2275-6654,
    오전 11시~오후 10시, 쉬는 시간 오후 3~5시,
    일요일 휴무




    김민경은 이탈리아 요리학교 ICIF를 졸업했다. 여러 미식 관련 잡지 기자를 거쳐 현재는 라이프스타일 관련 책을 만드는 팬앤펜출판사 대표이자 편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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