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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때리기’ 시나리오 있는가

‘삼성 국감’ ‘에버랜드 전환사채 유죄’에 당혹 … 권력 핵심서 기획 ‘의혹의 눈길’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삼성 때리기’ 시나리오 있는가

‘삼성 때리기’ 시나리오 있는가

10월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싼값으로 배정한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받은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 허태학(왼쪽) 씨와 박노빈 씨.

“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현행 공정거래법은 위헌 소지가 높기 때문에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를 비롯해 여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는데 헌법소원까지 제기하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다. 법리적인 차원으로만 문제를 풀어가려고 해선 안 된다.”

6월 말 삼성이 공정거래법에 대한 위헌 소송을 제기하기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내부에서는 이런 논란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급인 이종왕 법무팀장은 소송 제기를 강력히 주장한 반면, 장충기 부사장이 팀장인 기획팀은 “소송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오히려 지금은 몸을 낮춰야 할 때”라고 반박했다는 것. 처음엔 단순한 ‘논리 싸움’ 수준에서 시작됐지만 나중에는 법무팀과 기획팀의 파워게임으로 비화됐던 이 대결에서 승자는 법무팀이었다.

전방위 압력 ‘보이지 않는 손’ 논란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1997년 대선 당시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사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선자금 지원 논의를 담은 X파일 공개, 헌법소원 제기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비판 발언 및 그 이후 감지되는 삼성에 대한 여권의 강경 분위기 등 여러 악재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팀 쪽에서는 “법무팀의 ‘강공 드라이브’ 때문에 기획팀이 덤터기를 쓰게 됐다”는 불만이 흘러나왔다.



올해 국정감사는 ‘삼성 국감’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삼성을 몰아세우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0월5일 재정경제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국민정서법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전방위적 압박’에 공식적으로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며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이런 상황에 10월4일 서울중앙지법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리자 삼성 관계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96년 삼성의 지주회사 격인 에버랜드 CB를 이건희 회장 자녀들에게 싼값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된 에버랜드 전·현직 사장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이 회장의 장남 재용(삼성전자 상무) 씨에 대한 경영권 승계 과정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일련의 ‘삼성 때리기’에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이 있느냐 하는 점. 삼성 일각에서도 법원의 판결은 논외로 치더라도 여권의 ‘삼성 때리기’는 권력 핵심에 의해 ‘기획된’ 것 아니냐며 청와대 쪽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삼성의 위헌소송 제기에 대한 노 대통령의 비판 발언이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주도한 재정경제부 등에 대한 금융산업 구조조정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 과정의 ‘삼성 봐주기’ 의혹 내사 등이 우연히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삼성 때리기’ 시나리오 있는가
이에 대해 여권 인사들은 “무슨 소리냐”며 펄쩍 뛴다.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에 의해 삼성에 악재가 겹쳤다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로서는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직접적으로 삼성에 개입할 수단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요즘 세상에 만약 삼성을 상대로 뭔가를 ‘기획’했다가는 금방 들통 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파장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법무팀 ‘헌법소원 제기’는 실수

그럼에도 야권 일각에서는 여전히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여권의 ‘삼성 때리기’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론’을 통한 정치판 새판 짜기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재계의 판갈이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아울러 ‘1등 기업’ 삼성을 때림으로써 소득 양극화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에 대한 증거는 없는 상태다.

‘삼성 때리기 기획설’은 현재로선 양쪽 주장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어 실체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사안.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성의 헌법소원 제기가 삼성에 대한 여권의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점. 심지어 삼성 내부에서도 “구조본 법무팀의 ‘강공 드라이브’ 때문에 친(親)삼성 의원들의 입지도 좁아져버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삼성 법무팀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는 그동안 삼성 안팎에서 끊임없이 논란 대상이 돼왔다. 노 대통령의 사법시험 동기인 이종왕 변호사를 사장급 법무팀장으로 영입할 때부터다. ‘검사 이종왕’을 높이 평가하는 검찰의 한 중간 간부는 “법무팀은 어디까지나 기업 활동에 대한 ‘조언’을 해야 하는 조직인데, 거물급 변호사를, 그것도 사장급으로 영입했기 때문에 조직 생리상 법무팀장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법무팀이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강골형 검사였던 이 변호사는 쉽게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스타일이다. 이런 점에서 ‘정의로운 강골 검사’였던 이 변호사를 법무팀장으로 영입한 것 자체가 삼성의 실수였다”고 말했다.

‘삼성 때리기 기획설’의 실체 여부는 확인하기 힘들지만 삼성이 이처럼 몰리게 된 것은 삼성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삼성에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도 한 원인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여권 내부 역학관계의 변화가 삼성에 악재였다. 삼성에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노 대통령의 초기 참모들이 떠나고 원칙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각료들이 전진 배치된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전임 이헌재 부총리보다는 친기업적인 색깔이 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데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재벌 개혁에 대한 소신과 철학이 뚜렷하다는 게 주변의 평이다.

검찰이 서울중앙지법 판결 직후 이건희 회장 부자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도 천 장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게 검찰 내부의 평가다. 한 법무부 관계자는 “천 장관은 회의 때 사법 개혁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 의견을 거의 밝히지 않는 대신 ‘검찰이 대기업 등 거대권력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면서 “이런 천 장관의 의지가 검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결자해지 노력 선행을

여기에 싫든 좋든 시민단체의 힘이 커진 것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DJ) 정부 초기만 해도 재벌 개혁을 원칙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현실적으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이후 삼성의 지배구조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시민단체의 힘이 커지면서 법원이 유죄를 인정할 정도가 됐다”고 분석했다.

‘삼성 때리기 기획설’의 실체에 대한 진실 여부를 떠나 ‘삼성 또는 기업 때리기’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삼성이 밉다고 해서 이 그릇을 깨기에는 너무 크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앞의 재경부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부처 사람들은 삼성이라는 ‘그릇’이 깨지면 한국 경제가 어떻게 될까 하는 현실적 고민을 하는데, 이 때문에 삼성을 ‘비호하는’ 것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 물론 시민단체를 비롯한 개혁세력들은 삼성이라는 기업과 기업주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분명한 사실은 법원의 유죄판결에서 보듯 삼성이 잘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그릇’을 깨기에는 너무 크고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삼성이 스스로 지배구조 문제 등 약점으로 지적돼온 문제를 해결하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조류독감 파동 때 보듯 삼성 직원들이 삼계탕을 먹는다고 하자 전 국민도 따라서 먹을 정도로 삼성은 이미 ‘국민 기업’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60~62)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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