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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높이려 스타 쓰고, 몸값 충당 위해 간접광고

방송사와 외주사, 기형적 드라마 제작 ‘악순환’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시청률 높이려 스타 쓰고, 몸값 충당 위해 간접광고

시청률 높이려 스타 쓰고, 몸값 충당 위해 간접광고

드라마와 관련해 방송사와 외주사 대표, 주연배우, 심지어 기업 애널리스트들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제작발표회 등 이벤트가 많아진 것도 외주제작사들이 방송사 드라마를 만들면서 새롭게 생겨난 풍경이다. 외주제작사들은 방송뿐 아니라 저작권을 팔아 매출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마케팅에 총력을 쏟는다. 드라마 ‘해신’, ‘장밋빛 인생’, ‘프라하의 연인’ 관련 행사(왼쪽부터).

방송사 드라마 프로듀서 A 씨는 한 외주 드라마 제작업체가 보낸 제작비 예산안을 보며 현재의 외주제작 시스템에 대해 또다시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외주업체는 약 3개월에 걸쳐 방송할 드라마 제작 예산안에 한 명의 제작 프로듀서와 두 명의 조연출, 스크립터, 섭외 담당, 운전사 등 외주 회사 직원 8명의 월급 7개월분을 포함시켰다.

A 씨의 경험으로 볼 때 제작 프로듀서와 조연출 한 명 정도는 기획 기간을 포함해 7개월 정도 매달린다 해도, 다른 인원들은 드라마 촬영이 시작돼야 투입되는 인력이다.

또한 ‘출연할 가능성이 있는’ 주·조연급 연기자들의 출연료가 회당 수백만원씩 올려져 있고, 수십명의 엑스트라들이 방송 기간 내내 철야 촬영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A 씨는 한눈에 이 예산안이 상당히 부풀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방송사는 이 예산안을 ‘관행대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미 이 예산안은 1억5000만원에서 1차 깎여 ‘표준제작비’와 제작 지원금 등을 합친 액수와 비슷한 1억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와 프로그램 성격(드라마의 경우 현대물, 사극 등)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외주제작사에는 방송사가 설정한 ‘표준제작비’가 지급된다. 현대물 미니시리즈라면 편당 8000만~9000만원대인데, 이는 방송사 안에서 제작하는 ‘인하우스’ 작품의 1.6배 정도에 해당한다.

표준제작비로도 부족한 부분은 외주제작사가 ‘제작 지원(자막 지원)’이나 간접광고(PPL) 유치를 통해 조달한다. 방송사 ‘인하우스’물의 간접광고는 불법이지만, 외주제작사의 간접광고는 용인되기 때문이다.



주간동아가 입수한 또 다른 외주 드라마 제작사의 예산안도 마찬가지였다. 전체 예산이 100억원에 이르는 외주 드라마의 예산 중 연기자 출연료가 약 50억원인데, 외주제작사의 직원 인건비가 14억원에 달했다. 연봉 5000만원을 받는 고급 인력이라면 무려 28명이 1년 동안 이 드라마에만 매달리는 것이다. 가장 고급의 인력으로 고액의 인건비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연출자와 촬영감독은 방송사에서 파견되고, 기획비는 별도 항목에 올려져 있으므로 14억원은 말 그대로 직원 월급인 셈이다.

이 외주제작사는 방송사에서 주는 ‘표준제작비’가 많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기업과 지자체 등을 통해 지원금을 받았고, 아슬아슬하게 예산안을 맞춰놓았다. 지원금과 표준제작비를 합친 액수에 예산안을 맞췄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즉 A 씨 같은 방송사 프로듀서의 눈에는 스타 연기자와 작가를 소유한 외주제작사가 프로그램 제작비를 부풀려 지원금과 간접광고를 통해 최대한 돈을 끌어오고, 프로그램의 품질은 ‘제작비를 후려친’ 방송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현재의 외주제작 시스템이다.

그러나 외주제작사의 입장에서 보면, 문광부에 등록된 외주제작사 500개사가 KBS 등 단 4개 채널에 납품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10명 직원이 근무하는 사무실을 1년 동안 운영하면서 3개월짜리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는 얼마든 가능하다. 그러므로 생존 차원에서 이들의 인건비를 한 편의 드라마 예산에 얹고, 1년 사무실 운영비도 포함시킬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부르는 게 값인 스타들을 캐스팅하고, ‘영상미’를 살리기 위해 해외 촬영이라도 하려면 제작비는 한없이 올라간다. 이를 방송사가 깎으면 제작 지원금과 간접광고를 유치해야 한다.

따라서 드라마 주인공들에게는 출연료가 비싼 할머니·고모·부모는 없고, 똑같은 한 회사 자동차를 타고, 주인공의 친구는 매일 새 물건을 사와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조롱거리가 되어도 이 모든 것이 방송사의 ‘비현실적 제작비 책정’과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이은규 MBC 드라마 국장은 “경험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외주제작사가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방송사보다 비용이 비싸게 먹힌다. 한편으로 외주제작사가 살아남기 위해 직원 인건비와 시행착오 비용까지 제작비에 넣는 것도 이해한다. 현재 방송사는 스타급 배우나 작가들을 끌어올 수가 없다. 톱클래스인 경우 출연료만 회당 2500만~3000만원 선에 이르고, 2차적 사업을 통해 5000만원 이상의 실수익을 요구한다. 이를 외주제작사를 시켜 제작 지원금이나 간접광고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방송 외주정책이 시행된 지 14년이 됐고, 현재 방송법이 규정한 외주제작 방송 프로그램 비율이 20%(EBS)에서 40%(KBS2)에 달하나, 외주 프로그램의 제작 비용을 어떻게 책정할지 객관적으로 논의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의 정책 부서나 방송사는 외주제작사가 지원금과 협찬금을 얼마나 받아 어떻게 쓰는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외주제작사가 능력껏 할 일이고 보고할 의무도 없다.

그나마 표준제작비도 과학적인 근거 없이 관행적으로 결정돼왔다는 것이 방송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 방송사 드라마 PD는 “ ‘TV문학관’ 이나 ‘베스트셀러극장’ 등을 통해 외주제작사가 처음 등장했을 무렵엔 대략 인하우스 작품의 2배 정도로 지급이 됐다”고 기억했다.

외주제작사 대표가 대개 선후배들이어서(아직도 KBS 납품 외주사 대표의 52%가 자사 출신) 일종의 ‘전관예우’적 관행이기도 했고, 외주제작 초기엔 연기자들이 출연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배려한 후한 책정이었다.

시청률 높이려 스타 쓰고, 몸값 충당 위해 간접광고

삼화프로덕션이 제작해 MBC에 납품하는 ‘신돈’.

한국독립제작사협회의 심재수 사무총장은 “방송사와 외주제작사의 관계가 정부에 의해 강제로 맺어졌기 때문에 방송사는 영상산업 의 파트너라기보다 제작비를 줄이고, 3D 프로그램을 떠맡길 수 있는 하청업체로 생각했다. 방송사의 광고 시장이 좋을 땐 모두 행복했다. 그러다 광고가 케이블 시장으로 나뉘어가면서 수입이 줄어들자 외주제작사의 제작비부터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타 작가·배우 보유 … 외주사 힘 커져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윤재식 박사는 “적정한 수준의 방송사 및 외주 프로그램 제작비를 조사하려 해도 방송사에서 ‘대외비’로 절대 공개를 하지 않는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사실”이라고 말한다.

10월4일 열린 KBS 국정감사에서 정청래 의원 등에 의해 지적된 외주 드라마업체 S사는 92년 드라마 제작 시 기업들로부터 받은 제작지원금 5억7000만원 중 3억7000만원을 누락했고, KBS에 줘야 할 분배액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지적한 정 의원 측은 “돈을 받지 못한 KBS가 저리 온순한 거 보면, 알면서 묵인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한 KBS 드라마 간부 PD는 “3년 전엔 제작 지원금을 방송사와 나눴지만, 지금은 어차피 외주제작사가 다 가지는 돈”이라며 문제없다는 반응이었다. 제재 검토 대상이라던 S사는 올해도 정연주 사장이 직접 ‘모신’ 인기 작가 K 씨의 작품을 KBS에 납품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방송 중 작가료 대폭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S사의 드라마 예산안과 KBS 자체예산안을 검토한 정 의원 측은 “예산안 틀도 다르고 구멍가게 수준으로 총액만 맞춰서 협찬금 집행 사항을 확인하거나 사후 정산하기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흔히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갑’과 ‘을’이라는 불평등한 관계로 설명된다. 그러나 외주제작 시스템이 도입된 지 14년 만에 독립제작사들은 소수의 거대한 드라마 제작사들과 다수의 영세 제작사들로 양극화됐다는 것이 방송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모래시계’ 신화의 김종학, 송지나 씨가 설립한 김종학 프로덕션(‘서동요’ ‘루루공주’ ‘해신’ ‘태왕사신기’ 등), 팬엔터테인먼트(‘겨울연가’ 등), 매니지먼트 업계의 대부격인 싸이더스HQ 계열 IHQ(‘봄날’ 등), 삼화프로덕션(‘아내’ ‘부모님전상서’ 등), 올리브나인(‘불량주부’ ‘프라하의 연인’ 등), 에이트픽스(‘보디가드’ ‘미안하다 사랑한다’) 등이 힘있는 외주 드라마 제작사로 꼽힌다.

스타 작가와 스타 연출자, 무엇보다 스타급 배우들을 가진 외주제작사들은 시청률 경쟁이라는 약점을 가진 방송사와의 관계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또한 이런 외주제작사들은 M&A와 주식시장 상장, 외국투자 유치 등을 통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도 있다.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역학 관계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시아권에서 드라마 저작권을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나누고 있으며, 이전에 방송사와 나누던 제작 지원금이나 간접광고비를 모두 외주제작사가 가져가고, 제작비를 시청률과 연동시키는 등 불과 2~3년 사이에 외주제작사가 주도하여 제작 방식과 권리 배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현상이다.

‘슬픈 연가’ 같은 드라마는 방송사가 제작비 일부를 낸 대신 방송권만 갖고, 외주사인 김종학 프로덕션이 저작권을 갖고 공격적 마케팅에 나선 경우다. 또 ‘유리구두’ 같은 드라마는 제작비 전액을 KTF 한 기업에서 지원받고 방송사는 미술제작비와 교양 프로 시간대 ‘편성권’을 내주었다.

김종학 프로덕션의 박창식 제작이사는 “스타를 캐스팅해오면 드라마가 된다는 것이 방송사다. 캐스팅 비용 때문에 제작 지원과 간접광고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외주제작사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다 보니 도가 지나치는 경우가 있지만, 간접광고는 외주제작사를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맥락 없이 제품 보여주는 장면을 누가 찍고 싶겠나. 제작비를 현실화하고, 방송사 자회사로 가는 저작권 대행료 20%를 외주제작사에 주면 현재의 ‘묻지마 간접광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 이사는 최근 주인공 김정은 파동으로 ‘비데 공주’라는 오명을 들은 ‘루루 공주’를 공동 제작한 탓에 간접광고의 부작용을 절감한 듯했다.

양쪽 모두 “제작비 현실화” 주장

방송사의 프로듀서나 외주제작사 모두 제작비의 현실화를 주장하지만 ‘현실적’인 제작비가 얼마냐에 대해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일선의 방송사 프로듀서들은 외주제작사의 예산이 실제 제작비보다 부풀려진 허구라고 말한다. 제작비와 프로듀서, 촬영감독을 방송사에서 맡는 현재 외주제작 시스템에서 드라마 외주제작사는 ‘스타 배우와 작가의 매니저업체’로 전락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스타를 넣지 않으면 방송이 안 되는 현실에서 방송사의 제작비로는 전문 인력을 키우거나 시설에 재투자하기는커녕 조직의 유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외주제작사의 주장이다.

그러나 방송사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것은 방송사 자체가 비효율적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외주를 통해 프로그램 제작은 크게 줄었는데도 거대한 조직은 그대로이기 때문에 실제 제작비를 공개하기를 꺼리고 외주제작사 요구에 끌려다닌다는 것이다. 방송사 예산에서 제작비는 40% 정도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는 ‘영상 산업의 다양화’라는 정부 정책 발표 한마디로 시행된 외주제작 정책이 지금의 기형적 형태들을 가져왔다는 데 동의한다. 박창식 제작이사는 “정부가 ‘갑’이고 방송사와 외주사는 모두 ‘을’이다. 아무런 외주제작 인프라 없이 간접광고 등을 통해 문제를 너희끼리 해결하라고 하니 나빠지기만 한다. 드라마 외주사들과 교양물 제작 외주사들의 입장이 많이 달라진 것도 모른다”고 말한다. 실제로 교양 외주제작사는 대개 영세적인 규모로 깊이 있는 취재가 어려워 품질 시비 끝에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운명을 맞곤 한다.

한 방송사 드라마 간부 역시 “숫자로 던져진 방송 정책의 실패다. 외주제작을 도입하기 전에 정부, 방송사, 외주사의 역할 연구와 미래 예측, 전문 인력 양성과 비용 부담이 해결되고 지속적 관찰도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전혀 없었다. 외주제작 비율은 숫자상 높아졌지만 외주제작이 다양한 영상산업으로 발전했는가?”라고 반문한다. 외주제작사가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을 대행하여 스타 확보에 나서고 비싼 몸값을 주기 위해 간접광고를 남발하며, 간접광고가 잘되는 소수 스타에 매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외주제작 정책을 실패로 단언하는 그의 경고는 절박하다.

“외주제작사의 유지비, 간접비를 방송사가 지불하던 관행이 방송 환경이 변화하면 곧 중단될 수 있다. 그러나 외주제작사는 아직 자생력을 갖지 못했다. 지금까지 한류의 경제적 효과는 몇몇 연예인들에게 돌아갔을 뿐이다. 방송사 내부의 제작 능력이 상실되고, 외부 제작 능력이 완비되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질적으로 붕괴되고 한류도 끝이 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점점 더 현실적 위기가 되고 있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48~50)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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