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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박시환 변호사’

기존 사법 질서 깰 성향과 이력 … 대법관 선임 여부 법원 안팎 초미의 관심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태풍의 눈 ‘박시환 변호사’

태풍의 눈 ‘박시환 변호사’
9월26일 취임한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의 향후 6년 행보를 가늠할 3명의 대법관 인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미 대법원은 10월10일 퇴임하는 유지담·윤재식·이용우 대법관에 대한 후임 인선에 착수했고, 17일경에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대법관 제청자문위원회를 통해 후보자를 공론화할 예정이다. 초미의 관심사는 누가 뭐래도 박시환 변호사(52·사진·사시 21회)의 대법관 승선 여부.

박 변호사는 2003년 대법관 인사제청 파동으로 불거진 법원의 갈등 와중에 서울지법 부장판사 법복을 벗은 개혁 법관 그룹의 대표다. 법조계는 사법부가 과거사 청산 의지를 내비친 시기에 박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발탁된다는 것은 어떤 이슈보다도 법조계를 뒤흔들 만한 파급력을 지닌 사안으로 보고 있다. 박 변호사의 성향과 이력, 그리고 그를 후원하는 이들이 기존의 폐쇄적인 사법 질서를 깨뜨릴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시 21회 개혁 법관 그룹의 대표

우선은 서열 파괴. 사시 21회 동기들은 현재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막내 그룹에 불과하다. 박 변호사는 사시 13~17회에 해당하는 법원장급 대법관 후보군 10여명에 견주어 무려 5~7기수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인선 자체만으로도 혁신적이다. 게다가 그는 고등 부장판사를 거치지 않은 변호사 출신. 때문에 박 변호사의 등장은 폐쇄적 조직을 개방하는 효과까지 가져오리라는 전망이다.

둘째는 개혁 성향. 그는 줄곧 법원의 보수적인 행태에 반기를 들고 대법원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이다. 시민단체는 그의 인권중심 판결에 지지를 보내며 꾸준히 대법관 시민후보 1순위로 지지해왔다. 그는 종교적 소수자의 입장을 옹호해 ‘종교를 이유로 한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병역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2003년에는 법원 인사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현직 판사들과 함께 건의문을 작성하는 등 법원 개혁에 소신을 펼쳐왔다.



마지막으로는 법조계 진보세력 결집. 잘 알려져 있듯이 박 변호사는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김종훈 변호사로 대표되는 86년 제2차 사법파동 주동세력인 우리법연구회의 맏형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속했던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도 긴밀한 끈을 맺어오기도 했다. 때문에 박 변호사의 대법관 등극이 국민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제2, 제3의 진보적 대법관이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박 변호사는 그동안 재야의 선배들을 제치고 대법관 추천 후보 1순위로 거론됐지만, 그의 판결 성향은 ‘신중한 진보’로 분류될 만큼 중도와 진보 그룹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때문에 기존의 주류 법관들이 느낄 심적 부담감은 예상을 초월한다는 평가다.

“박 변호사의 대법관 등극은 한순간에 대법관 인선의 관행을 뒤바꾸는 법원 개혁의 상징적 인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대법관에 지명되는 순간 현직 고등부장급 이상의 대다수 판사들이 이 대법원장에 대한 기대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역풍도 잠재해 있다.”(대법원 K 판사)

대법원은 대법관이 올해에 3명, 내년에 5명이 바뀌는 인적 전환기를 맞아 뒤숭숭한 분위기.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중도 성향의 이홍훈 수원지법원장(15회)과 지방대(원광대) 출신의 김지형 서울고법 부장판사(21회), 영남 지역에서만 근무한 향판(鄕判)인 장윤기 창원지방법원장(21회) 모두 비주류로 분류되는 점도 흥미롭다. 때문에 주류 측에서는 여기에 박 변호사 카드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기존의 대법관 체제가 일순간에 중도를 넘어 진보 방향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감을 표시한다.

9월 초, 천 법무부 장관이 자리한 저녁 모임에서 이들 네 명이 대법관 후보로 거론됐다는 중앙일보의 보도 내용 역시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박 변호사는 평소에 헌법재판관보다 법원 개혁을 위해 대법관에 더 많은 애착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고, 청와대에서도 이미 박 변호사를 대법관 몫으로 분류했다는 소문까지 나돈 상황이었기에 천 장관의 발언이 그 소문을 확인해준 셈이다. 이에 개혁 그룹은 이 때늦은 기사가 주류세력의 반격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새 대법원장이 취임 과정에서 ‘정비 필요성’을 언급한 법원 내 비공식 모임 ‘우리법연구회’ 역시 박 변호사를 포함한 몇몇 변호사 회원과 이광범 신임 대법원 비서실장을 연구회에서 탈퇴시키는 등 발빠른 보완책을 들고 나왔다. 박 변호사를 둘러싼 법원 내의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증폭될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37~37)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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