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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퇴출” 창원지검發 혁신 태풍

반복 사건 노하우 공유 ‘집중검토제’ 정착 … 신속과 적정, 투명성 세 토끼 사냥 성공

  • 창원=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야근 퇴출” 창원지검發 혁신 태풍

“야근 퇴출” 창원지검發 혁신 태풍

창원지검이 새롭게 선보인 ‘집중검토제’가 검찰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창원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황보중ㆍ가운데) 소속 검사들이 집중검토 회의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박철완, 김종형, 김미라, 황보중, 이지윤, 손우찬, 김창우 검사(왼쪽부터).

“야근을 금지한다.”(부장검사)

“아니, 야근이 불필요해졌다.”(주임검사)

대한민국 가장 끝자리쯤에 위치한 창원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이뤄지지 못했던 혁신 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그것도 가장 힘센 권력기관이라는 ‘독불장군 검찰’에서.

창원지방검찰청(이하 창원지검)이 지난 3개월간 시범적으로 시행해 정착시킨 ‘새로운 사건처리 시스템(일명 집중검토제)’에 대해 전국 검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9월23일 검찰의 내부 게시판인 ‘e프로스’에 게시된 창원지검의 ‘집중검토제’에 대한 조회수가 일반 게시물의 4배에 달하는 2000회에 이를 정도.

창원지검으로는 야근에 지친 전국의 검사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어떤 비결이 창원지검 검사들의 야근을 몰아냈고, 그것이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40~50년간 반성 없이 지속해온 검찰의 업무 시스템을 바꿔보자는 일종의 경영 혁신입니다. 생산라인을 단축하고 현장 전문가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하자는 사기업의 변화와 흡사하지요. 극대화된 효율성은 만성 야근에 지친 검사들에게 가정생활을 돌려준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어요.”(공안부 조재호 검사)

“진짜야” 전국 검사들 문의 쇄도

국민에게 각인된 검사들의 상징은 ‘야근’과 ‘폭탄주’였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검사들은 놀라운 응집력과 애국심, 그리고 조직 충성도를 발휘해왔다고 할 수 있다. 2003년 3월9일 ‘검사스럽다’는 유행어를 퍼뜨렸던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에서 표출된 검사들의 정서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검사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근면하고 애국적인 공무원인데, 왜 정치인은 검사를 괴롭히냐’는 논리였다. 야근이라고 하는 비효율성이 검사의 상징임을 내비쳤던 것이다. 그런데 검찰의 ‘야근=애국론’은 곧바로 검찰의 부담스러운 업무를 덜어주자는 논리로 비화돼 ‘경찰의 수사권 독립’ 논의를 촉발했다. 또한 비대화된 검찰 조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왜 검사들은 야근이라는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까. 창원지검의 발상은 검찰의 조직과 업무처리 시스템이 비효율적이었다는 단순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야근 퇴출” 창원지검發 혁신 태풍

창원지검 청사 4층에 마련된 집중검토실과 회의 장면. 집중검토 회의가 열리는 동안에는 외부와의 모든 연락이 단절된다.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사건과를 통해 차장검사에게 전달됐다가 부장검사를 거쳐 주임검사에게 배당됩니다. 그리고 주임검사의 법률적 검토를 거쳐 부장과 차장 때로는 검사장에까지 다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데 최소 2개월이 소요되는데, 결제라인에서 한 번 반려된 사건은 해결에 3개월이 넘어가는 장기 미제사건으로 돌변해버리지요.”(하용득 형사2부장)

형사부 검사 1인에게 한 달에 배당되는 사건은 대략 200~250건. 일선 검사들은 ‘검사는 독립관청’이라는 미명 아래 살인적인 사건 양을 고독하게 감내해왔다. 단일 사건일지라도 진위를 파악하고 법률 적용 검토를 거쳐 문서화하는 데 적잖은 시간이 들어간다. 따라서 결산이 있는 월말이면 주임검사실과 부장검사실에는 사건 파일이 산더미같이 쌓이곤 했다.



때문에 검사들 사이에서는 ‘결재 편취(騙取)’라는 은어까지 생겨났다. 검사가 자신 있게 판단하지 못한 사건을 여러 결재 서류와 함께 제출해 결재를 받는 편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월말이면 부장검사가 4~7명의 검사들이 쏟아내는 100여건이 넘는 사건 파일을 그저 도장 찍기에 바쁜 약점을 악용(?)한 현실을 비꼰 것이다. 형사부 부장검사들은 “바쁜 월말에 100쪽이 넘는 사건을 일일이 검토하고, 문제 있는 결론에 재검토를 지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일선 검사들 역시 마찬가지다. 검사들은 1인당 평균 50~60건에 이르는 미제사건을 안고 있기 때문에 휴일을 반납해야 했고, 야근을 마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검찰에는 예상치 못한 부담으로 작용해왔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은 폐쇄성과 늑장처리입니다. 신속하게 결론을 내려주면 간단히 승복할 사건을 오래 끌게 되니, 외압에 의해 사건이 왜곡됐다는 인상을 주게 됩니다. 그런 불안감에 기생해서 검찰 브로커가 생겨났고, 불필요한 법조 비용의 증가로 이어졌지요. 사건 처리 속도 향상은 검찰 혁신의 가장 큰 내용일 수 있습니다.”(하용득 부장)

이러한 비효율을 극복해낸 창원지검의 ‘집중검토제’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내용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반복적인 형사사건에 대해 선배 검사들의 경험을 후배 검사들이 공유하자는 것이었다. 이른바 검찰의 ‘팀(team)제’ 혹은 ‘지식경영’으로 정리할 수 있다.

10월4일 오후 2시, 창원지검 4층에 마련된 ‘집중검토실’에 형사1부 소속 검사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수요일은 형사2부, 목요일은 형사3부의 집중검토 회의가 열린다. 회의시간에는 전화 연결도 차단되고 손님 접견도 금지된다. 오로지 형사1부에 배당된 사건만을 놓고 검사들 간의 자유스러운 의견 개진과 토론이 이어진다.

“부장님, 김모 씨가 자동차를 훔쳐 달아난 사건인데, 통상적인 절차인 구공판(사안이 중대한 경우에 검사가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것)으로 처리할까 합니다.”(A 검사)

“아니에요. 얼마 전 정부 입법으로 벌금형도 신설됐어요. 사건의 경중을 따져 구약식(범죄는 인정되나 그 사실이 경미하여 정식재판의 필요성이 없는 경우 피고인을 출석시키지 않고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으로 해도 됩니다.”(부장검사)

“저는 지난번에 비슷한 사건을 벌금 500만원인 구약식으로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B 검사)

만일 집중검토 회의를 거치지 않았다면 A 검사는 혼자 고민 끝에 판례를 참조해 ‘구공판’으로 넘겼을 가능성이 컸다. 이 경우 피의자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고 재판에 수없이 불려나가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집중검토를 하게 되면 검사마다 천차만별인 양형의 통일성까지 꾀하게 된다.

“검사 개인에게 사건을 떠밀지 않고 배당 초기에 부서원 전체가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자는 취지입니다. 부서원이 합심해 지혜를 모은다면 사기, 폭력, 교통사고 등 비슷한 유형의 형사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황보중 형사1부장)

“야근 퇴출” 창원지검發 혁신 태풍

창원지검 청사 모습. 2004년부터 시작된 민원인에 대한 ‘스마일 운동’으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일상적인 사건에 대해 일주일 단위로 중지를 모으니 중복해서 일을 처리할 필요도 없어졌다. 선배들의 노하우까지도 자연스럽게 후배들에게 전달됐다. 이 제도를 시행하기 전인 4월만 해도 창원지검 검사 1인당 평균 미제사건은 52건에 달했으나, 이 제도가 시행된 10월4일엔 평균 27건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업무량이 줄어들자 중요성을 알고 있음에도 미제로 남겨놓았던 사건에 대해 검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다.

9월29일, 창원지검은 ‘집중검토 100일’ 잔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단 21건의 미제를 남긴 임유경 검사(연수원 34기)가 최소 미제상을, 무고사범을 여럿 찾아낸 김봉현 검사(연수원 31기)가 무고인지 대상을 받았다. 올 초에 검사로 임관한 임 검사는 집중검토제에 대해 “선배들의 노하우를 제도적으로 전수받을 수 있어서 여타 지청 검사들에 비해 적응이 빨랐다”며 “업무 효율성 증가로 인해 야근이 줄어 검찰 지망을 꺼리는 여성 법조인들의 검찰 지원이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미제사건 검사들 역량 발휘

그렇다고 긍정적인 전망만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신속하다는 장점이 부실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 “개별 검사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창원지검은 “낮아지는 항고율(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리한 고소 사건에 대한 고소인의 이의 신청 비율)로 보아 집중검토제가 적절성까지 지녔다고 볼 수 있다”고 반박한다. 창원지검의 항고율은 집중검토제 시행 이전 6%대를 상회했다면 이후엔 3%대로 낮아졌다. 사건의 신속하고 투명한 처리가 민원인들의 불만을 없앴고, 검사의 역량을 주요 사건에 집중시킨 효과라는 분석이다. 때문에 창원지검이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자신감도 이 같은 통계를 바탕에 깔고 있다.

불필요해진 야근, 사라진 폭탄주, 미제사건이 처리된 텅 빈 캐비닛…. 창원지검이 시도한 집중검토제란 허황된 권위를 벗어던진 검찰이 지식경영을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첨단의 공무원으로 거듭난 상징적 변화일 수 있다. 창원지검의 한 젊은 검사는 귀뜸한다.

“도제식으로 교육 받은 선배들과 달리, 우리 세대는 토론식 일 처리에 익숙합니다. 검찰의 변화는 이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34~36)

창원=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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