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6

2005.10.18

영어 대세는 ‘말하기 시험’

기업들 토익 점수보다 영어회화 능력 중시 … 말하기 능력시험 ‘SEPT’ 주가 쑥쑥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10-12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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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대세는 ‘말하기 시험’

    성균관대 다산관 ‘영어 헬프 데스크’에서 외국인 교직원들이 영어에 대한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있다.

    ‘전교생이 토익학과생’.

    대학 도서관 열람실 책상마다 토익 책이 놓여 있다 해서 생긴 말이다. 이유야 간단하다. 많은 기업이 토익 점수 제출로 입사 시 영어시험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만간 이런 대학가 풍속도에도 큰 변화가 올 듯하다. ‘영어로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토익 고득점자’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까닭이다.

    변화의 바람은 기업에서 가장 먼저 불고 있다. 채용 포털사이트 ‘커리어’가 최근 27개 공기업과 대기업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은행, GS리테일 등 12개 기업이 채용 시 어학성적 규정을 아예 없앴다. 두산, 국민은행, 한국도로공사 등은 자격기준을 대폭 낮췄다. 대신 강화된 것이 ‘말하기 능력’ 검증이다. 각 기업은 2, 3년 전부터 신입사원 전형에 앞다투어 영어 면접을 도입하고 있다. 재직사원의 승진, 해외 주재원 파견 등을 가늠하는 잣대 또한 과거 토익에서 1대 1 영어 면접, 각종 말하기 시험 등으로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1, 2년 후부터는 신입사원 응시자들 또한 토익 점수 대신 SEPT, MATE, TOP, PHONE, G-TELP 등 말하기 시험 점수를 영어시험 대용으로 제출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영어교육 시장의 ‘대세’ 또한 토익이 아닌 말하기 시험이 될 것이다.

    각종 말하기 시험 중 현재 응시자 수가 가장 많은 것은 SEPT다. 무엇보다 삼성그룹 대부분의 계열사, LG전자, 포스코, GS칼텍스정유, 대한항공, GM대우, 동국제강, 조선호텔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이 시험을 재직사원의 영어능력을 측정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능력 측정의 ‘화두’가 토익에서 말하기 시험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징후는 SEPT 강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발견이 된다. SEPT 전문 강사인 이선해(Kate Lee) 씨는 “1, 2년 전만 해도 승진 등을 위해 SEPT 점수가 꼭 필요한 직장인들이 수강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요즘은 대학생이 전체의 50%에 육박하고 있다”며 “이는 90년대 초 토익이 막 활성화하기 시작할 즈음과 비슷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이 씨는 또 “취업정보에 밝은 대학생들은 ‘높은 SEPT 점수가 취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을 이미 끝낸 상태다. 대기업 신입사원 중에도 ‘빠른 승진을 위해 미리 SEPT 점수부터 챙겨두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주요 기업들은 어떤 방식으로 신입사원 및 재직사원의 영어 말하기 능력을 측정·평가하고 있을까.

    삼성그룹에는 사내 외국어 회화평가 시험인 SST(Samsung Speaking Test)가 있다. 그중 영어 쪽 테스트를 SEPT로 대체 실시하고 있다. 다만 등급은 SEPT 본래의 1~10단계가 아닌 4, 3, 2, 1, S 등 5단계로 나뉜다. 삼성그룹이 부분적으로 SEPT를 도입한 것은 97년. 99년에는 이 테스트를 대부분의 계열사로 확대했고 2001년부터는 아예 계열사별로 상위등급 보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제일기획의 경우 전 사원의 50% 이상이 2급 이상을 취득한 상태다.

    SEPT 성적을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비율은 계열사마다 다르다. 등급이 높을수록 승진심사에 유리하며, 특히 해외 주재원으로 선발되려면 반드시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 계열사에 따라서는 S급 취득자에게 해외 참관 및 연수 기회 등을 제공하기도 한다.

    신입사원 채용에 있어서도 토익 점수는 하한선(이공계 620점, 인문계 730점)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그보다는 영어 면접 당시 드러나는 회화능력 평가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LG전자는 단일기업으로서 ‘영어 말하기’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곳이다. 2008년 영어공용화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LG전자뿐 아니라 LG그룹 각 계열사는 임원 승진, 해외 주재원 선발 등에서 이전부터 LGA-LAP(LG Academy-Language Assessment Program)이라는 고유의 영어구사 능력 측정법을 활용해왔다. LG그룹의 연수교육기관인 LG인화원이 기존의 여러 영어평가 프로그램을 연구 분석해 개발한 것이다.

    30분간 원어민과 1대 1 인터뷰를 하는 방식. 응시자는 Yes/No 답변이 가능한 정도부터 의견제시 및 역할설정(Role Play)이 필요한 수준까지 다양한 난이도의 질문을 받게 된다. 평가등급은 1.0에서 5.0까지 9단계이며, 임원이 되려면 반드시 3.0 이상 등급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LGA-LAP은 다수를 동시에 평가할 수 없으며 비용도 많이 든다. 그래서 LG전자는 SEPT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04년 처음 도입한 이래 올 상반기까지 7000여명이 시험을 치렀다. SEPT 사무국 이지환 팀장은 “LG전자의 경우 직원들의 인사고과 및 승진, 영어교육 향상도 평가 등에 SEPT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신입사원 모집에 있어서도 2004년부터 영어면접을 도입, 총점의 20%를 배점하는 등 말하기 능력 측정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LG전자 인사팀 리크루팅그룹 이동진 그룹장은 “토익 점수는 지원자격 기준 정도로만 반영한다. 실제 영어구사 능력 검증은 영어 프레젠테이션 및 영어토론 면접을 통해 이루어진다”며 “예를 들어 ‘침소봉대를 영어로 설명해보라’는 식의 질문을 던져 명확한 영어구사 능력을 검증하는 식”이라 설명했다.

    현대자동차는 2003년부터 대졸 신입사원 채용 시 전 분야에 걸쳐 영어 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아예 영어회화 시험도 도입했다. 연구개발직 지원자에게는 관련 분야 용어를 잘 숙지하고 있는지 등을 묻고, 해외영업 지원자의 경우 바로 외국인과 높은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지를 측정한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이른바 ‘토익 하한점’이 없다는 것이다. 입사지원서에 점수 적는 난이 있긴 하지만 참고사항일 뿐이다.



    현대차는 아직 임원승진 등에 회화 능력을 고려하고 있진 않지만 말하기 시험에 대한 ‘실험’은 이미 시작한 상태다. 2003년, 2004년 외국어집중교육과정 중 SEPT 시험을 도입한 것. 총 500여명이 SEPT 평가를 받았는데 그중 80%가 10등급 중 레벨 3에 해당했다고 한다.

    SK그룹은 신입사원 채용 시 특이하게 G-TELP(General Tests of English Language Proficiency)를 보게 한다. 대부분의 계열사에서 필수적으로 응시하게 돼 있는 G-TELP는 미국에서 개발된 또 하나의 영어능력 측정도구.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을 평가하는 5단계의 등급시험과 말하기 시험, 작문시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SK에선 이중 등급시험만을 치르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 인력운영팀 이호민 차장은 “토익처럼 일반화돼 있지 않은 만큼 상대적으로 변별력이 높다. 응시자들에게도 동일한 조건 아래서 테스트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본다”고 밝혔다. SK그룹의 경우 현재는 글로벌 비즈니스 부문 지원자에게만 영어 면접을 실시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대세’에 따라 영어 토론, 영어 프레젠테이션 등을 전면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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