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4

2005.10.04

“애무로 금기 깨고 싶어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5-09-28 16: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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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무로 금기 깨고 싶어요”
    십중팔구, 그녀들의 강의를 TV에서 보거나 글로 읽는다면 꽤 민망할 것이다.

    “일단 혀를 릴랙스해준 뒤 최대한 넓고 소프트하게 핥아줍니다. 허벅지 안쪽에서 차츰 골짜기 쪽으로 들어와주세요. 핥아주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여인네들도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테크닉이지요.”

    그러나 소문난 ‘애무법’ 강사 ‘양대산맥’의 윤성희(24) 씨가 토끼처럼 귀여운 옷을 입고 ‘안녕, 프란체스카’ 안성댁처럼 ‘소프트하게 핥아달라~’고 강조하면 당연히 따라해야 할 것 같다. 윤 씨와 함께 ‘양대산맥’의 한쪽 기둥을 이루는 전명옥(31) 씨는 ‘애무법’ 총론과 손의 테크닉을 강의한다. 전 씨의 강의 내용 역시 ‘지나치게 포르노적’이지만 마치 마당극 연기를 하는 듯한 그녀의 입심에 홀리긴 마찬가지다.

    “애무로 금기 깨고 싶어요”

    ‘여성전용파티’에서 ‘애무법’을 강의하는 전명옥, 윤성희 씨(오른쪽).

    게다가 서늘해진 가을밤 한강변 선유도공원, 여자들만의 파티에서 듣는 ‘애무법’ 강의는 흥미진진하기만 하다. 비밀 회합에 모인 마녀들의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2004년 유영철 사건 뒤 이슈화된 ‘밤길 되찾기’ 운동의 연장선에서 페미니즘 진영이 처음 마련한 ‘여성전용파티’가 올해로 2회째를 맞아 9월30일 밤 선유도공원에서 열리고, ‘양대산맥’은 여기 모인 여성들에게 ‘애무법’을 강의한다. 6월에 열린 안티성폭력 페스티벌 ‘포르노 포르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까닭에 ‘앙코르 공연’을 마련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강사인 전명옥 씨와 윤성희 씨 모두 ‘싱글’이고, 여성들을 위한 ‘애무법’이라는 ‘센’ 주제를 통해 여성주의 문화운동에 데뷔했다는 것이다. 첫 공연을 마친 뒤 이들이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당연히 ‘어떻게 그런 ‘지식’을 알게 됐냐’는 것이다.

    “싱글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하는 분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선 결혼했다고 해도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말은 금기하니까요. 그런 말 참 싫어요. 그런 터부를 깨고 싶어서 공연에 참여한 것이기도 하지만요.”(전명옥)

    ‘포르노 포르나’ 인기 등에 업고 ‘여성전용파티’에 강사 초빙

    전 씨와 윤 씨는 대학 시절 여성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단순히 책을 읽고, 인터넷에 글을 쓰는 일을 넘어서 여성운동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이프’가 주최하는 ‘포르노 포르나’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 전 씨는 딸이 다섯인 딸 부잣집 막내로 자라면서, 윤 씨는 자신보다 오빠를 챙기는 할머니라는 여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여성들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학과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이들에게 당연한 명제다.

    ‘애무법’ 강의를 맡은 전 씨와 윤 씨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강의’ 대본을 썼고, 연기 지도는 연극인 이영란 씨에게서 받았다.

    “애무로 금기 깨고 싶어요”

    ‘여성전용파티’의 포스터.

    “인터뷰를 하면서 성에 관해 솔직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남성들이 ‘세고’ ‘오래가는’ 것에 골똘하다 보니 섹스에 대해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놀란 건 남성들도 성기뿐 아니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민감해서, 정서적이고 정성스런 애무를 원한다는 것이었어요.”(윤성희)

    “저도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남성도 여성과 비슷한 성감대를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남성들이 하는 애무란 삽입 이전의 ‘형식’에 불과하다는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거죠. 남성, 여성 모두 ‘테크닉’이나 감정적 교류가 없는 손짓은 애무가 아니라고 대답했어요. 이른바 ‘선수’로 좋은 평을 받는 사람들은 애무에 무척 공을 들이는 거지요.”(전명옥)

    전 씨는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이 자신의 공연에 참석해서 속에 있던 것이 ‘해방된 느낌’이라며 격려를 해주어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많은 인터뷰 통해 정보 얻고 대본 써 … 관객들 호응에 자신감

    윤 씨는 성기를 상징하는 꽃 모형과 혀를 상징하는 붓을 오브제로 써서 상징극처럼 강의를 진행한다. “관객들에게 ‘혀 돌리기’를 따라하라고 할 때 부끄러워하면서도 호응해준 관객들 덕분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의도적이고 과장된 포르노 형식’을 빌린 이들의 강의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들의 손과 혀는 여성의 것이기도 하고 남성의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의 머릿속 깊은 곳에 자리한 남성중심적 사고 그물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는 단순하지 않은 문제로 남는다.

    이제 막 여성주의 문화운동에 뛰어든 두 사람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여성주의 운동의 끈을 잡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전 씨는 ‘사이코드라마’를 만들어 여성 문제를 다루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민감하고 심각한 성폭력의 문제를 대중적이고 즐거운 한판 축제로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전명옥)

    ‘피도 눈물도 없는 밤’이라는 부제를 달고 밤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는 ‘여성전용파티’는 9월30일 한강 선유도공원에서 다시 열린다.



    문화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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