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4

2005.10.04

어린 대학생들 “잘 지냅니다”

학과 공부·동기들과 생활 별 무리 없어 … 획일화 교과 방식에 적응 못해 휴학하기도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5-09-28 13: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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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대학생들 “잘 지냅니다”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2학년인 15세 김한별 군.

    송유근 군이 내년 인하대에 입학한다면 만 9세의 최연소 대학생이 된다. 하지만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10대 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꼬마’ 대학생들은 꾸준히 있어왔다. 매해 입시철만 되면 ‘동갑내기보다 4년 이상 앞서간 14세 대학생’ ‘19세 대학원생의 지름길 인생’ 등 최연소 합격한 ‘영재’들의 이야기가 신문지상을 장식한다. 송 군의 미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8월22일 경희대 정문에서 만난 김한별(15) 군은 앳된 얼굴이지만 제법 대학생 태가 났다. 김 군은 중학교 1학년이던 2002년 4월에 학교를 그만둔 후 그해 8월 고입, 이듬해 5월에 대입 검정고시를 마치고 1년여 준비 끝에 2003년 11월 수능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2004년 3월, 4년 장학금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경희대 언론정보학부에 입학했다. 현재 4학기째 수업을 받고 있는 김 군은 “전공 수업보다는 시사나 상식, 일반교양 등에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솔직히 학과 공부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평소에 수업 듣고 시험 때 바짝 공부하니까, 오히려 수능 준비할 때보다 쉽죠. 하지만 학생들끼리 사회나 경제 문제에 대해 토론할 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아요. 예를 들면 노사 갈등의 이유나 주식의 매수매도 시기, 또는 학생운동 등 시사나 상식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잘 모르죠. 그래서 지난 학기에 관련 수업에서 C가 하나 나왔어요. 그전까지는 A와 B만 받았는데.”(웃음)

    서너 살 많은 동기들과는 말을 놓고 지내고 두세 살 많은 후배들에게서 존댓말을 듣는다며 넉살스럽게 말하는 김 군이지만 처음엔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친구들과 제대로 사귈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행사는 모조리 참여하고 학회 활동을 하는 등 꾸준히 노력했다.

    “학생들끼리 사회·경제 등 시사 토론할 땐 애먹어요”



    “대학에서는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특별한 관리를 해주진 않아요. 학교도 그렇고 교수님들이나 선후배, 동기들도 그렇고요.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올해 초 최연소로 한양대 정보통신대학원에 진학한 김현규(19) 군 역시 “물리적 나이를 잊고 학사 학위를 받고자 하는 일반 대학생의 자세로 모든 일에 임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팀 작업 수업을 여러 차례 했는데, 모두 제가 팀장을 맡았어요. 팀원들 모두 A를 받을 만큼 성과도 좋았고요. 나이가 어리다고 다른 동기들에게 기대려고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저 자신이 대학원 석사 2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린 대학생들 “잘 지냅니다”

    19세에 한양대 정보통신대학원에 입학한 김현규 군.

    김현규 군은 이른바 ‘컴퓨터 영재’다. 초등학교 때부터 직접 게임을 만들어 벼룩시장에 내다 팔 정도로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관심도, 재능도 많았던 김 군은 컴퓨터만 연구하고 싶은데 굳이 학교에 나가 다른 공부도 해야 하는 게 싫었다고 한다. 4학년 때 학년 말 학력평가에서 5학년 과정을 풀어 97점을 받은 후 6학년으로 월반하기도 했던 그는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그리고 16개월 만에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치르고, 2001년 사이버대학인 한국디지털대에 입학했다. 한국과학기술원에 원서를 넣을 수 있을 만큼 수능에서 고득점을 받았음에도 사이버대학에 간 이유는 일반 대학과 달리 자신이 배우고 싶지 않은 일반교양 과목을 듣지 않아도 됐기 때문.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디지털정보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2004년 온라인 게임 업체에서 일하면서 플래시 게임의 기획에서 런칭 단계까지 총괄한 적도 있다. 대학원에서도 디지털미디어 관련 분야를 전공할 계획이다. 그는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어린 나이에, 더 많이 그리고 깊게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기진학을 택한 내 결정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만 17세에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에 입학한 추요한(33) 박사도 “나이가 들수록 머리가 굳는 게 사실”이라며 “특히 과학 분야에 영재성을 가졌다면 20세 이전에 고등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대 후반에는 정말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물 흐르듯 떠올랐어요. 하루 종일 실험실에 앉아 오만 가지 ‘잡생각’을 하다가 직접 실험해본 적도 많아요. 당시 교수님들과 일대일로 토론하고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게 상당한 도움을 줬던 것 같아요. 아마 지금 그때로 돌아간다면? 실험실 운영이야 그때보다 잘하겠죠.”(웃음)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추 박사는 당시부터 수학 과목에 대해서는 2~3학년 과정을 앞서 배웠을 정도로 영재성을 보였다. 귀국 후 중학교에 들어갈 때도 한 학년을 월반했고, 대전과학고도 2년 만에 졸업했으며, 한국과학기술원도 7학기 만에 마치고 만 20세 때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9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일반인들보다 3~4년 앞서가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았다”고 했다. 그는 미국 현지에서 IT(정보기술) 분야 컨설팅을 했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SI(System Integration) 관련 일을 했으며, 직접 회사를 세워 경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미국 등 외국 규격에 맞게 바꿔 수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듯 앞서 나가는 게 좋은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영재들을 대상으로 한 수월성 교육이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 대학에서는 어린 영재들을 대학에 입학시키지만, 뽑아놓기만 할 뿐 아무런 ‘애프터케어’를 해주지 않는다. 2003년 만 15세에 연세대에 입학했던 고의천(18) 군은 1학년만 마친 채 휴학 중이다. 고 군의 아버지 고형석 씨는 “영재교육에선 대학이 가장 문제”라고 강조했다.

    “차라리 중등과정에서는 영재학교 등 특수교육 기관이라도 있어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요. 조기 진학한 영재들에게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따르도록 해줘야 합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단과대학이나 학부를 만들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클래스라도 따로 마련해야 해요. 이 아이들은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선 뛰어나지만 다른 부분에선 나이 많은 동기들에 비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고, 반면 전문 분야에 대해선 다른 학생들과 발을 맞춰야 하니까 자신의 실력보다 떨어지는 교육을 받게 되죠. 그러니 특별한 케어가 필요한 겁니다. 또 평소에 공부하지 않다가 시험 때만 반짝 공부하는 풍토, 대학 자체가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해가는 상황에서 아무리 대단한 영재라 해도 범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요.”

    언어와 외국어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고 군은 현재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등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내년 또래들이 대학에 들어올 때에 맞춰 복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10대 시절의 또래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 될 수 있다. 김한별 군은 “또래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서 “대학 동기들이 야간자율 학습시간을 ‘땡땡이’ 친다거나 수업 시간에 짝과 좋아하는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다 들켜 선생님께 혼난 기억이나 수학여행 다녀온 이야기 등을 할 때면 그런 추억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인하대는 송유근 군이 입학하면 교수들이 일대일로 수업을 맡는 등 그를 위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운영해 물리학 분야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음악, 미술, 체육 등 송 군을 위한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대학의 특별한 배려를 받는 최초의 ‘꼬마’대학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송 군이 선배들의 시행착오를 얼마나 되풀이하지 않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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