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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30년 흑자에도 현대車 고용 불안?

11년째 연속 파업 노사 평행선 대치 … 해외 공장 증설, 일거리 감소 불안감 증폭

  • 울산=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30년 흑자에도 현대車 고용 불안?

30년 흑자에도 현대車 고용 불안?
8월31일, 파업 5일째를 맞는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울산공장. 아반떼와 클릭 등을 생산하는 제3공장의 기계는 오후 3시를 기해 멈춰 섰다.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노동조합(노조) 대의원들이 공장 안을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잠시 뒤 조명이 꺼졌고, 이어 노조원 비노조원 구분 없이 삼삼오오 옷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4시간 동안 예정된 주간 작업반 인원들의 부분파업. 회사 정문 앞에서 금속연맹 노조와 연대집회가 열리기로 한 시간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조원들은 집회장으로 향하지 않고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장 안팎에서는 집회 참석을 종용하는 노조 대의원들과 귀가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휴식을 원하는 발걸음을 돌리기란 쉽지 않았다.

“연례행사 지겹지도 않은가”

면적 151만평 대지의 5개 공장에서 한 해 생산하는 자동차 대수는 170여만 대에 달한다. 노조 조합원만 2만7400명, 비정규직까지 합치면 4만여 노동자가 일한다는 현대차 울산공장의 부분파업은 오늘도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97년 사상 초유의 IMF 사태를 맞이해서도 쉬지 않고 계속된, 94년 이후 만 11년 동안 매해 이어져온 싸움이다.

“연례행사가 되긴 했는데, 지겹지도 않은지 몰라. 매년 저렇게 임금인상을 외치는 걸 보면 부럽다는 생각도 들고….”



택시기사들은 이방인에게 가장 손쉬운 지역여론 나침반 구실을 한다. 울산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현대차 공장이 자리한 양정동까지는 1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택시기사인 김모(54) 씨는 부럽다면서도 한마디 쏘아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밖에서 보기에는 배부른 투정이지. 현대차에서 일하는 친구나 친척들이 있어서 잘 아는데 한마디로 우리 택시기사보다 훨씬 잘살제.”

흔히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울산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의 공업화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그에 따라 정유·중공업·조선·자동차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수준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미 30평대 아파트에서 중형차를 굴리고 아이들을 각종 학원에 보내며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꿈꾸기 시작한 지 오래다.

현대차 울산공장 입구는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산업스파이 때문이 아닌 파업 사태 때문이다. 정문을 경계로 한 공장 안팎에서는 시뻘건 포스터와 선동 구호들이 난무했다.

30년 흑자에도 현대車 고용 불안?

8월31일 현대자동차 노조가 5일째 부분파업을 시작한 15시 정각. 공장 승용차 생산 라인이 텅 비어 있다.

노동권 쟁취와 확보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중심은 역시 노조(위원장 이상욱)가 될 수밖에 없다.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는 60여명의 상근 직원들이 금일 4시간의 부분파업과 9월1일 충남 아산과 전북 전주 등 현대차 노조원 2만여명이 울산에 집결하여 연대하는 대규모 집회 준비를 위해 바삐 움직였다. 노조 측은 최근의 언론보도가 노조에 부정적이었기 때문인지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현대차 노조는 과연 귀족 노조인가?

울산의 택시기사가 현대차 파업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정도면 타 지역 중산층의 반감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2003년 현대차 노동자 가운데 연봉이 7000만원이 넘는 이들이 나왔다는 언론보도와 2005년 초, 기아자동차 노조의 취업장사 비리가 세간에 공개되면서 현대-기아차 노조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같은 불리한 상황에서 11년(현대), 15년(기아) 연속 임금인상 파업 소식은 비난 여론을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임금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파업은 그치지 않을 겁니다.”

조창민 노조 정책3부장은 파업의 이유를 묻자 명쾌하게 답변한다. 올해 노조는 기본급 대비 8.48%(10만9181원)의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2000년 이후 최근 4년간 기본급이 46.3% 인상됐다. 물가상승률 10%대에 비해 폭발적인 성장률이다. 회사 측은 노조가 원하는 임금인상률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를 든다.

하지만 노조는 이것이 단지 통계수치의 허상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기본급의 높은 성장률과, 평균 5500만원에 달하는 연봉 총액으로 대치될 수 없는 노동권에 대해서 말하겠다는 논리다.

“현대차 노동자 연봉이 높은 이유는, 주말과 야간에 쉬지 않고 일한 결과입니다. 남들보다 많이 일해서 높은 보수를 받았을 뿐인데, 귀족 노조란 어불성설이지요.”

유럽은 물론 일본과 미국 노동자들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많이 잡아도 2200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업체 노동자들은 대개 3000시간에 육박한다. 매일 2시간의 잔업과 4시간의 야근, 그리고 14시간의 주말 특근은 현대차 노동자들의 일상이 됐다.

이같이 노동시간이 많은 이유는 비정상적인 임금 체계 때문. 기본급이 터무니없이 적고 야근과 주말 근무에 대해서는 기본 시급의 갑절 이상이 지급되니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시간외 근무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노조는 기본급이 높아져야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물가상승률을 초과하는 임금 상승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귀족 노조 논란에 대해서 노조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현대차의 임금 수준은 전체 상장회사 가운데 142위 수준입니다. 뼈 빠지게 일해 연봉 5000만원을 받았다고 귀족 노조가 된다면 우리나라는 온통 귀족판이겠네요.”

그런데 파업 현장의 표면적인 중심 화두는 임금인상이지만, 실상 그것은 과거처럼 절대적인 이슈는 아니었다. 총액이 아닌 임금구조에 대해 노사가 논쟁할 만큼 양측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공장이 완전하게 멈춰 선 것도 아니다. 단지 잔업거부 수준의 부분파업에 그치고 있다. 임금에 대한 불만 역시 노동자라면 누구나 갖는 정도일 뿐. 노동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노동조건에 있다.

회사 측 관계자들도 “울산 현대차는 애당초 매년 파업할 수밖에 없어요. 차기 노조 선거도 있고, 노동계를 대표한다는 상징성도 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겠죠”라며 순응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양측은 뭔가 불안감을 감추지 않는다. 임금문제가 아니라면 현대차 파업의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 현대차 공장은 존속 가능한가?

“이대로 가다간 현대차의 이익은 해외 주주만의 이익에 그칠지 몰라요.”(노조)

“도요타 노조는 4년간 임금 동결을 선언했어요. 우리는 항상 강경투쟁이죠.”(회사)

노사 양측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도요타나 GM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려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돌변한 논쟁구조는 바로 이 국제화다. 현대차가 ‘글로벌 톱5’에 근접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대신 바라보는 관점은 정반대다. 회사 측은 선진국 수준의 노사관계와 생산성을 원하고, 노조 측은 선진국 수준의 노동조건을 기대한다.

올해 최대의 이슈인 ‘주간연속 2교대제도’ 논쟁도 여기서 출발한다. 더 이상 매주 주·야간이 바뀌어 근무하는 우리의 ‘2개조 맞교대 시스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힘들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회사는 장기적 과제로 삼아야 하지만 너무 급격한 변화는 생산성 하락과 임금 상승으로 직결된다고 한발 물러선 상태.

노조가 맞이하는 또 다른 충격은 현대차 그룹의 세계화와 직결된다. 고용불안, 즉 생존권 문제다. 이번 쟁점으로 떠오른 △해외 현지공장 신설과 신차종 투입 시 노사 합의 △신기술 도입 및 외주화 관련, 고용관계 사항 노사 합의 같은 조항들도 알고 보면 ‘경영권 침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기보다는 잘못하다간 내 직장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고용불안이죠. 솔직하게 5년 뒤에도 울산의 현대차 공장이 운영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에요.”(현대차 제1공장 정경훈 씨·40)

노조의 최대 고민은 울산공장의 물량을 해외로 빼앗기는 문제다. 이는 현대차가 해외 공장을 인도, 터키, 미국 등에 신설하면서 생산 차종을 국내와 동일하게 배치하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차종이 중복되는 만큼 이제는 기아차나 쌍용차와의 경쟁이 아닌, 현대차 해외 공장의 노동자와 경쟁하고 있는 셈이 됐다.

“신차와 신기술 도입도 큰 고민입니다. 지속적으로 공장 내 일거리가 줄고 있어요. 모듈화가 가속화하면서 울산공장은 단순한 조립공장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게 몸으로 느껴집니다.”(조창민 노조 정책부장)

노조원들의 이 같은 불안감은 이미 일상화가 됐다. 노조원들의 나이도 평균 40대가 넘을 정도로 고령화됐다.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의미다. 몇몇 노조원들은 이 같은 불안감이 지나친 임금인상 요구로 이어진다는 것을 시인한다. 회사가 망하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놓자는 이른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현상이다. 회사의 입장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생각이다.

현대차는 고용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노조와 완전고용합의서를 체결했고, 작업장 교체근무나 새로운 직무교육 등 다각도의 대책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뿌리깊은 노사 갈등과 노노 갈등, 심지어 공장 간 갈등으로 인해 전환배치 문제는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일감 없는 4공장 노동자를 3공장으로 배치하는 것조차 노조가 반대하면 불가능해요. 휴가 가고 풀 뽑더라도 안 움직여요. 이게 무슨 회사입니까. 노조판이지.”

회사의 노조에 대한 불만도 일리가 있지만 노조 측이 회사 측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도 설득력을 가진다. 회사의 주문에 따라 한번 이동하기 시작한 노동자는 계속 안 좋은 보직으로 밀려나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는 것. 아무리 싸워봐야 신뢰 없는 노사 간에 의사소통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될 뿐이다.

장규호 노조 공보부장은 “GM의 예에서 보듯이 실패만 하면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럼 현대차의 30년 흑자는 과연 누구 때문입니까” 하고 되묻는다. 30년간 흑자 기업이 97년 단 한 번의 적자로 인해 1만여명 이상을 정리해고 한 회사에 대해 어떻게 신뢰가 가능하냐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조도 고민이 적지 않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는 것이 노조의 목표였는데, 눈앞의 임금에 목을 맨 노조 가족들은 오히려 ‘왜 우리 남편 일 못하게 막느냐’고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 게다가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에 육박한 비정규직 증가에 노조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책임이 있어, 현재의 노노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랜저와 소나무

시위에 참석한 한 노조원은 “회사의 성장을 왜 막겠어요. 대신 언젠가 국내 공장이 없어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러는 거지” 하고 속내를 토로한다. 한 회사 관계자는 “우리 노동자들 생산성 나쁘지 않아요. 한국처럼 실력 좋고 부지런한 노동자 찾기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노사 간에 신뢰만 쌓이면 충분히 노사 간 타협도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 섞인 태도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치 않다.

8월31일 오후 7시. 울산 현대차 사옥에는 경비들과 100여명의 강성 노조원들이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과 그다지 달라진 점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들이 한번 충돌할 때마다 회사 옆의 소나무와 화단들이 짓밟혀나갔다. 참석한 사람이나 구경한 사람 모두 혀를 끌끌 차지만 이래야만 회사도 타협안을 들고 나오고, 노조 대의원들도 체면이 설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2000년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세계화의 와중에 야기된 다양한 갈등을 그리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도 최첨단 ‘그랜저와 소나무’가 치열하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주간동아 2005.09.13 502호 (p42~43)

울산=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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