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잠깐의 로맨스, 기나긴 서스펜스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9-07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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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의 로맨스, 기나긴 서스펜스
    웨스 크레이븐의 신작 ‘나이트 플라이트’의 도입부는 나쁘지 않은 로맨스의 시작처럼 보인다. 비행기가 계속 연착되고 취소되는 동안, 비행기를 기다리던 두 남녀가 눈이 맞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여자 역시 남자의 그런 시선이 싫지 않다. 둘은 대화를 나누고 공통된 관심사를 발견한다. 나중에 간신히 비행기를 탄 여자는 남자가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놀라운 우연의 일치일까? 그랬다면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트 플라이트’에서는 전혀 다른 식으로 흘러간다. 이 모든 건 직업적 암살자인 남자가 계획한 것이었다. 만약 호텔리어인 여자가 일하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투숙하는 차관의 방 번호를 바꾸지 않는다면 여자의 아버지는 죽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심장을 바짝 죄는 서스펜스물로 급전환한다.

    ‘나이트 플라이트’는 야심이 큰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크레이븐 감독의 전작 ‘나이트메어’ 시리즈처럼 호러 장르의 문을 새로 열지도 않고 ‘스크림’ 시리즈처럼 자신이 속해 있는 호러 장르를 분석하지도 않는다. 영화의 목적은 단순하고 명백하다. 한 시간 반도 되지 않는 짧은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을 끊임없이 긴장시키는 서스펜스 영화를 만드는 것. 크레이븐의 전작과는 달리 ‘나이트 플라이트’는 처음부터 기성품을 의도한 영화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썩 좋은 기성품 영화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없고 스케일도 작으며 설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엔 상당히 억지스럽지만, 웨스 크레이븐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들에게 일정 수준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물론 로맨스 영화인 척하는 도입부가 조금 늘어진다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이 설정의 정체를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그렇지도 않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영화가 로맨스물이라고 착각하고 극장을 찾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트 플라이트’의 또 다른 공신은 주연배우인 레이철 맥애덤스와 킬리언 머피다. 두 사람은 아직 국내에선 그렇게까지 잘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눈썰미가 있는 관객들이라면 ‘노트북’, ‘퀸카로 살아남는 법’ 등의 영화들을 통해 맥애덤스를, ‘28일 후…’나 ‘배트맨 비긴즈’를 통해 머피의 얼굴과 재능을 알아봤을 것이다.





    잠깐의 로맨스, 기나긴 서스펜스
    ‘나이트 플라이트’는 영화의 절반 이상이 좁은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영화이고 그 때문에 배우들의 역할이 중요한데, 맥애덤스와 머피는 모두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맥애덤스는 사실적이고 절실하며, 머피는 야비하면서도 은근히 재미있다. 이들의 관계는 로맨스의 위장을 던져버린 뒤에도 경쾌하고 흥미진진한 성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주로 호러 장르에 집중해온 크레이븐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해보면 순수한 서스펜스물인 ‘나이트 플라이트’는 조금 예외적인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의 완성도를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서스펜스물이 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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