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5-09-07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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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

    영화 ‘분홍신’의 지하철 퍼포먼스.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가 맨발로 분홍신을 들고 지하철 역사를 돌아다니는 이 이벤트는 당시 큰 화제를 모았다.

    장면 1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 강모 씨. 그는 요즘 너무 떨려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배용준이 출연한 영화 ‘외출’의 일본 홍보 투어 ‘특파원’으로 활동하게 됐기 때문. 처음 응모했을 때만 해도 1만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자신이 뽑히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던 그는 이젠 배용준과 함께 일본행 비행기에 오를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장면 2 6월25일 오후 8시. 그로테스크한 인테리어와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서울 홍대 앞 모 클럽에서는 영화 ‘분홍신’의 ‘호러파티’가 한창이다. 파티에 참여한 사람은 무려 500여명. 분홍신과 관련하여 연상되는 낱말 맞추기 게임, 공포 댄스 추기 등을 하며 흥겨움을 더해가던 사람들의 눈동자가 일순간 한곳에 집중됐다. 주연배우인 김혜수가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등장한 것. 톱스타의 깜짝 등장에 파티장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가 쏟아지고 있다. ‘영화관에서 공포물 혼자 보기’와 같이 독특하고 엽기 발랄한 ‘쇼킹’ 이벤트는 물론 ‘엑스트라로 참여하기’ 등 영화 제작 과정에 일반인들이 직접 참가하는 이벤트도 많다.

    6월30일 개봉한 영화 ‘분홍신’은 영화보다 무서운 ‘호러파티’와 ‘피 흘리는 사람 모형 전시회’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분홍신’의 홍보를 맡았던 청년필름의 문현정 홍보팀장은 “특히 ‘분홍신을 움켜쥔 소녀의 퍼포먼스’는 한때 온라인 세상을 점령하기도 했다”며 활짝 웃었다.

    분홍신’ 들고 지하철 퍼포먼스, 행인에 화투 선물도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

    영화 ‘가문의 위기’ 출연배우들의 얼굴이 박힌 화투패.

    “지하철에서 우연히 주운 분홍신 때문에 영화 속 사건이 시작되거든요. 그래서 홍보 초창기에는 며칠간 꾸준히 분홍신을 특정 지하철의 선반에 놓으려고 했어요. 그러면 누군가가 가져갈 테고 입소문이 나면서 이슈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뒤 지하철역에 ‘네가 (저주의 분홍신을) 가져갔니’라는 표제로 분홍신을 주워간 사람에게 공포를 주는 식의 포스터를 배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분홍신을 든 소녀가 지하철을 돌아다니는 퍼포먼스로 대신했죠.”

    영화보다 재미있는 영화 홍보 이벤트

    영화 ‘외출’은 일반 관객들을 해외 홍보 투어의 일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흰 원피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소녀가 맨발로 분홍신을 들고 지하철 역사를 돌아다니는 이벤트는 대박을 터뜨렸다. 소녀를 보고 처음엔 흠칫 놀랐지만 영화 홍보임을 눈치 챈 젊은이들이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었고 이를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던 것.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남학생들은 소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주는 등 ‘작업’을 걸기도 했고, 이벤트임을 눈치 채지 못한 중·장년층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신발을 신겨주거나 머리를 올려주기도 했다. 문 팀장은 “이런 독특한 체험은 영화에 대한 기대를 낳고, 이는 영화관에 오는 발길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일반인 특파원으로 선정해 해외 홍보투어 파견

    9월8일 개봉하는 영화 ‘가문의 위기’는 추석 명절에 맞춰 개봉하는 만큼 홍보 컨셉트를 ‘정과 나눔’으로 잡았다. 우선 개봉 당일부터 3일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명동이나 서울역 등에서 떡이랑 술과 함께 출연배우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박힌 ‘특제’ 화투를 나눠줄 계획이다. 추석 명절에 가족과 ‘국민 놀이’가 된 화투를 치면서 정을 나누고 영화도 보러 오게 한다는 것. 또 협찬으로 들어온 1억 여원어치의 사무용 가구를 온라인 경매를 통해 판 뒤에 수익금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다음은 ‘가문의 위기’ 홍보를 맡고 있는 무비랩의 최유리 대리의 설명.

    “영화에서 조폭이었던 신현준 씨가 사회복지사업가로 변신해요. 영화 내용도 이런 만큼 협찬품을 좀더 의미 있는 데 활용하자는 취지였죠. 가구를 산 사람도 결국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좋은 일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호감도도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또 최근에는 영화 제작 과정에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이벤트가 많아지고 있다. 9월8일 개봉하는 영화 ‘외출’에서 극중 조명감독인 배용준이 대규모 야외 콘서트를 연출하는 장면을 찍는 신에서 6000여명의 관객을 엑스트라로 참여시킨 것이 대표적인 예. 유명 가수들이 열창한 ‘실제’ 공연이 네 시간 동안 이어졌고, 이날 관객들은 공연 관람과 더불어 영화 현장 참여라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됐다. 당시 콘서트 ‘외출’을 관람했다는 대학생 정재은 씨는 “영화의 현장 느낌을 살리기 위해 다른 공연보다 더 큰 소리로 환호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또 홍콩, 대만 홍보 투어에 일반인 ‘특파원’ 네 명씩을 ‘파견’할 예정이다. 온라인 포털 사이트 야후를 통해 응모를 받고 있는데, 현재 경쟁률이 1만 대 1을 넘어간 상태. 특파원이 된 사람은 3박4일간 진행되는 해외 홍보 투어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사진도 찍고 직접 보고 느낀 바를 글로 써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야 한다. 이벤트에 응모할 만큼 영화에 관심 있는 팬들이니 전문 리포터보다 더 큰 애정을 가지고 글을 쓰지 않겠냐는 게 영화사 측의 생각이다. 또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홍보 문구를 모집해, 뽑힌 것은 직접 광고에 활용하고 있다.

    영화 ‘외출’의 홍보를 맡고 있는 이진상 마케팅 팀장은 “일반인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데 홍보의 초점을 맞췄다”며 “이런 이벤트들은 당사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영화는 더 이상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다. 관객들이 직접 참여해 함께 즐기며 노는 것이 바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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