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오일달러 밑천으로 “잘살아보세”

아제르바이잔 원유개발 본격 추진 ‘부국의 꿈 성큼’ … 내년 경제성장률 38% 전망

  • 아제르바이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 kimkihy@donga.com

    입력2005-08-12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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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일달러 밑천으로 “잘살아보세”

    카스피해 연안의 소형 해상 유전. 육지와 거의 붙어 있을 정도로 가깝다.

    아제르바이잔의 뜻이 뭔지 아십니까? ‘불의 나라’입니다. 수도 바쿠는 페르시아어로 ‘바람의 도시’라는 뜻이지요.”

    낯선 나라를 찾은 초행길의 기자를 맞은 송기동 교민회장의 첫마디였다. 불과 바람. 카스피해 연안 카프카스(코카서스) 지역에 있는 인구 826만명의 작은 나라 아제르바이잔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한마디다.

    한때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길목이었고, 19세기 유전개발로 유럽풍이 물씬 풍겼던 나라. 소련에 합병돼 ‘철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가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세계사 속에 다시 등장한 아제르바이잔이 이제는 강대국이 각축을 벌이는 거대한 게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제2의 중동’인 카스피해 유전을 확보하려는 영국의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 등 서방 에너지 메이저와 미국, 러시아, 터키 등 주변 강대국의 경쟁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가 바람에 실려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산유국이라는 선입관 때문일까. 첫눈에 들어오는 바쿠의 색깔은 검은빛이었다. 바쿠는 마치 유전 위에 떠 있는 도시 같았다. 도시 곳곳에는 ‘메뚜기’처럼 생긴 채유 펌프(석유 시추기)가 ‘네덜란드의 풍차’처럼 서 있었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온 기자에게는 동화처럼 신비한 풍경이었다.

    소련 통치 기간동안 경제 피폐해져



    기원전부터 아제르바이잔은 ‘불의 땅’이었다. 사람들은 땅속에 묻혀 있는 석유와 가스가 뭔지도 몰랐다. 갈라진 틈으로 분출된 천연가스는 햇볕을 받아 자연 발화돼 불탔다.

    바쿠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야나르다크. 지하에서 새어 올라오는 가스가 수백 년 넘게 불타고 있는 곳이다. 인근 마을의 한 주민은 “야나르다크의 불꽃이 꺼지지 않는 한 산유국 아제르바이잔의 미래는 끄떡없다”며 웃어 보였다.

    고대인들이 불을 숭배하게 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조로아스터교(배화교)가 가장 번성했던 곳이 바로 아제르바이잔과 이란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우물을 팔 때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커먼 물’만 쏟아져나오는 검은 땅을 저주했다. 물론 세계 최초로 유전이 개발되면서 아제르바이잔은 ‘황금의 땅’으로 변했다. 20세기 초까지 아제르바이잔은 세계 원유 생산의 절반을 차지했다. 석유로 전 소련을 먹여 살리다시피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소련의 통치에서 벗어났을 때 아제르바이잔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있는 상태였다. 바쿠의 육상 유전은 거의 고갈됐다. 그러고 보니 소형 육상 유전의 ‘메뚜기’ 중에는 가동이 중단돼 폐쇄된 것이 많았다. 아제르바이잔 사람들이 예전의 ‘착취자’인 러시아에 대해 가지는 반감이 이해가 됐다.

    엄청난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아제르바이잔은 90년대 중반부터 과감하게 서방 자본을 끌어들여 카스피해 연안의 대규모 해상 유전개발에 나섰다. ‘오일 머니’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다. 최근 바쿠와 지중해 연안의 터키 항구인 제이한을 잇는 세계 최장의 BTC송유관이 완공됐기 때문이다. 내년 초부터 이 송유관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석유가 수출되면 아제르바이잔은 앞으로 20년 동안 무려 500억 달러(약 51조5350억원)를 벌어들인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전망에 따르면 내년도 아제르바이잔의 경제성장률은 38%대에 이른다. 이러한 초고속 성장은 적어도 2011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제2의 쿠웨이트’의 탄생이 예고되는 것이다.

    바쿠 시내를 다녀보면 눈부신 변화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발칸의 유령들’로 유명한 미국의 언론인 로버트 캐플런은 ‘타타르로 가는 길’에서 “1993년 바쿠에서 코카콜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고는 아제르바이잔호텔에 있는 ‘달러 바’ 한 곳밖에 없다”고 썼다. 당시만 해도 어두컴컴하고 지저분한 소련 스타일의 아제르바이잔호텔이 바쿠에서 가장 고급스런 호텔이었던 것. 그러나 현재 바쿠 시내에는 하얏트와 그랜드 유럽, 래디슨 사스 등 세계적인 호텔 체인이 들어와 있다. 시내 곳곳에는 타워크레인이 높이 솟은 건설 현장이 눈에 띈다. 밀려 들어오는 외국계 회사를 위한 오피스빌딩과 고급 주상복합 건물, 대형 쇼핑몰 등을 짓고 있는 것이다. 건설 붐과 함께 부동산 가격도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아제르바이잔이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걸까? 바쿠의 호텔에는 벌써부터 발 빠른 우리 기업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건설이나 토목 플랜트 수출 시장 시장을 노리는 것. 그리고 아직 우리 공관은 없지만 1992년부터 들어온 교민 수가 100여명에 이른다. 한국석유공사도 본격적으로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카스피해 유전은 한국과 거리가 멀지만 개발에 참여한 뒤 다른 곳에서 생산된 물량과 ‘스왑(교환) 거래’를 통해 국내에 석유를 들여오는 방안도 있다는 것이 석유공사 신석우 부장의 말이다. 일본의 종합상사들과 중국석유화공총공사(SINOPEC)는 이미 유전개발과 각종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가 아제르바이잔으로 가는 ‘오일로드’를 ‘먼 산 보듯이’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일달러 밑천으로 “잘살아보세”

    바쿠 인근의 ‘꺼지지 않는 불꽃’. 지하의 천연가스가 계속 올라와 수백 년 동안 불타고 있다(좌측).<br>아제르바이잔 태권도장에 알리예프 대통령 부자의 대형 초상화가 걸린 게 이색적이다(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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