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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크스바겐 ‘독일판 X파일’

경영 관여 노조 대표에 과도한 향응 … 노사 시스템 공동결정제도 개혁 목소리

폴크스바겐 ‘독일판 X파일’

폴크스바겐 ‘독일판 X파일’

폴크스바겐 공장

유럽 최대의 자동차 회사이자 독일을 대표하는 기업인 폴크스바겐이 수난을 겪고 있다. 6월 체코 프라하에 있는 작은 회사와 관련된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더니, 노조 대표와 최고 경영진이 어우러진 대형 비리 사건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정치 공방전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 일은 독일의 은행 ‘코메르츠방크’가직된 한 사원의 컴퓨터 하드웨어에 저장되어 있는 기이한 문서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문서는 그 사원이 어떤 기업의 합병 시도에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 체코의 자동차 회사인 스코다의 인사부문 책임자 헬무트 슈스터와 폴크스바겐 그룹 관련 인물들도 관여돼 있었다. 스코다는 냉전 당시 동유럽을 대표하던 자동차 회사로, 냉전 붕괴 후 폴크스바겐에 인수됐다. 코메르츠방크는 이 수상한 자료를 폴크스바겐 사정팀에 보냈고, 곧바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돈과 여자로 매수 비리 실체에 경악

그 결과 슈스터가 ‘F-BEL’이라는 작은 회사에 줄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회사는 스코다 자동차 본사가 위치할, 작은 자동차 도시를 프라하 인근에 만드는 사업에 입찰한 상태였다. 즉 자사의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회사의 중역이 위장 회사를 차려 수주 활동을 했음이 드러난 것. 또 폴크스바겐의 인사 담당자인 클라우스 요아힘 게바워는 슈스터의 위장 회사에 관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슈스터와 함께 해고됐다. 폴크스바겐의 노조 대표인 클라우스 폴커트 역시 ‘F-BEL’에 관여했는데, 그는 이 일이 알려지자 당시 62세였던 나이를 이유로 6월30일 조기 은퇴했다.

처음 언론에 알려졌을 때만 해도 이 문제는 폴크스바겐 본사와 자회사의 몇몇 사람이 꾸민 비리 사건으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자신의 해고에 불만을 품은 게바워는 회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폴크스바겐 그룹의 감춰진 비리들을 하나씩 폭로하기 시작했다.



7월 초 독일의 유력 일간지 ‘쥐트 도이체 차이퉁’은 ‘폴크스바겐의 임원들이 노조 대표들을 매수하려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전면에 내걸었다. 이 신문은 한 익명의 내부인사의 투서에 근거해 ‘회사 간부진의 승인 아래 노조 대표들이 회사 전용기를 이용해 호화 여행을 다녀왔다. 여기에는 고급 접대부가 동승했다’고 밝혔다.

독일판 ‘X파일’이 열린 것이다. 이 신문에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물론 게바워였다.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들은 폴크스바겐 간부진이 노조 대표들을 돈과 여자로 ‘구워삶았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폴크스바겐 공장의 노조 대표 모임이 있을 때 이들은 회사 전용기를 사용하거나 일반 비행기의 1등석을 이용했다. 최고급 호텔에서 숙박했으며, 고급 접대부들의 시중을 받았다. 부부 동반 모임일 경우 배우자는 1000유로 이상의 상품권을 지급받아 명품 쇼핑에 나섰다. 이 일을 진행한 사람이 바로 게바워였다. 10년 넘게 그는 폴크스바겐 공장 노조 대표들의 모임과 여행을 주선하면서 마음껏 회사 돈을 쓰고 다녔다. 홍등가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거기서 발생한 온갖 잡다한 비용까지 공금으로 지불했다. 돈이 부족할 경우 회사가 지체 없이 채워줬기 때문이다.

공금을 사용할 때 영수증을 발급받아 회사에 제출해야 했는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자체 영수증을 만들기도 했다. 조사에 따르면 자체 영수증 금액만 해도 지난 2년간 70만 유로에 달했다. 그는 폴크스바겐 노조 대표들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부장’으로 통했다. 그가 가진 공금 사용에 대한 무제한적 특권은 그의 직속상관이자 폴크스바겐의 인사담당 회장인 페터 하르츠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페터 하르츠는 독일의 ‘살아 있는 전설’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금속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야간학교를 다니며 한 상점에서 도제 생활을 한 그는 온갖 고생 끝에 1993년 폴크스바겐의 최고위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2002년 8월16일 슈뢰더 총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한다. 이것이 바로 하르츠 IV법이다. 하지만 슈뢰더 정부의 개혁정책을 상징하는 이 법은 아직까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7월8일 폴크스바겐 비리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르츠의 낙마는 회사 내부의 문제 때문이었지만, 슈뢰더 정부 개혁정책의 처절한 참패를 상징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노조 간부에 대한 과도한 향응 제공과 같은 일이 회사의 묵인 아래, 아니 회사 측에 의해 주도적으로 이뤄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알기 위해선 우선 독일 노사제도의 특징인 ‘공동결정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노조 대표들이 회사 경영에 참여할 정도로 근로자의 권한이 강한 편이다. 특히 ‘F-BEL’에 참여하고 회사로부터 엄청난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완전히 명예가 실추된 채 물러난 폴커트는, 지난 15년간 노조를 이끌며 폴크스바겐의 실질적 주인이라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3년 하르츠 회장과의 대면을 통해 주 4일 근무제를 관철했는데, 이는 유럽에서도 처음 있었던 노동계의 쾌거였다. 하지만 노조 간부로서 회사 경영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경영진과 자주 만나게 됐고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쌓으면서 그는 오히려 일반 근로자들과 유리되는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사건의 파장은 몇몇 개인의 비리를 밝혀내는 차원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대표적 노사 시스템인 공동결정제도의 개혁 논란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재계와 보수 진영에서는 공동결정제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이번 폴크스바겐 비리 사건이 이런 노사 시스템이 안고 있는 약점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한다. 반면 사민당과 노조 진영에서는 비리 사건의 파장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물론 귀족 같은 행각을 벌인 일부 노조 간부들의 잘못은 명백하게 밝혀내야겠지만, 그렇다고 공동결정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노사 관계의 기본틀 자체가 도전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독일 기업의 상징인 폴크스바겐을 강타한 이번 비리 사건의 여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5.08.16 498호 (p7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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