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김형욱의 3500만 달러 어디 있나

돈 심부름 맡았던 전 중정 요원 입 통해 실체 공개 … 파리 살해설 이은 또 다른 미스터리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5-08-11 18: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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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욱의 3500만 달러 어디 있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7년 6월 미 의회 증언에서 유신정권에 대해 포문을 연 뒤, 반(反)박정희 전선의 선봉에 섰다.

    김형욱 미스터리’의 끝은 도대체 어디쯤일까. 26년 묵은 낡고 닳은 미스터리에 다시 불을 붙인 건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이다. 4월 ‘시사저널’이 보도한 ‘파리 교외 양계장 살해설’은 그동안 숱하게 제기된 시나리오 가운데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김형욱이 프랑스서 닭 모이로 사라졌다”는 이 엽기적인 보도의 후폭풍은 매우 컸다.

    1979년 10월 초 일어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은 구구한 억측을 일으켜 왔다. △납치 후 청와대 지하실에서 살해 △살해 후 파리 센 강에 유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종 등 그럴싸하게 포장된 ‘설’들이 나돌았다. 여기에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위원장·오충일, 이하 진실위)까지 가세해 사건은 더욱 복잡해졌다.

    중정 요원 출신으로 김형욱의 최측근

    ‘시사저널’에 “내가 김형욱을 죽였다”고 밝힌 L 씨는 그의 증언을 뒤집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김형욱은 파리 근교 양계장에서 사료 분쇄기에 넣어져 처리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L 씨의 주장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중앙정보부(이하 중정) 비선 조직원이었다는 L 씨가 70년대 중정에서 일했던 것은 사실로 안다”고 말했다.

    국정원 진실위가 서둘러 김형욱 사건 중간발표를 한 것은 “‘시사저널’ 보도처럼 진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설’들이 난무했기 때문이다”.(오충일 위원장) 진실위는 김형욱이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의 지시로 프랑스에 있던 요원들과 이들이 고용한 동유럽 외국인들에 의해 피랍돼 살해된 뒤 파리 근교에 버려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 진실위 역시 십자포화를 맞았다. 확인되지 않은 또 다른 ‘설’을 덧붙였을 뿐이라는 비판을 들은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하기 ‘겨우’ 19일 전에 김재규가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다는 점 △전두환의 신군부가 김재규를 고문하며 털끝까지 벗겨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 △신현진(가명)의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점 등이 허점으로 지목됐다.

    그럼에도 진실위의 발표 내용은 ‘큰 그림’에서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신현진이 사건 직후 김재규를 만났다거나 숲 속에 시체를 유기해 낙엽으로 덮었다거나 하는 내용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김형욱 살해를 청부했다는 신현진의 출입국 기록과 그의 증언이 일치하는 등 진실위가 ‘진실’이라고 여기고 발표한 것이다. 오충일 위원장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도 중간발표를 토대로 이뤄진다”고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주간동아’는 박정희 정권 때 중정에서 일했고,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서 요직을 지낸 C 씨에게서 김형욱 미스터리와 관련해 흥미로운 증언을 확보했다. C 씨는 “돈까스(김형욱의 별명)의 죽음과 그의 재산 3500만 달러의 행방이 관련이 있다”는 추정과 함께 미국 체류 당시 김형욱과 김형욱의 최측근이었던 이모 씨의 행적 등 알려지지 않은 ‘팩트’를 전해줬다. C 씨와 이모 씨는 서로 ‘C형’ ‘이형’이라고 부르는 사이였다.

    이 씨는 중정 요원이었다. 그는 5·16군사정변(1961) 때 육군 중위였는데, 신념을 가지고 쿠데타에 가담한 이른바 혁명 주체 중 하나다. 그는 쿠데타 직후에 이한림 장군 등이 수감된 반혁명 수용소의 간수장을 했다. 이한림 장군은 서울로 진입한 쿠데타군을 무력화할 수 있는 무력(武力)을 보유했던 당시 1군사령관으로 육사 8기생인 박용기 중령(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를 수사한 사람) 등에게 제압당했다.

    스위스 은행에서 돈 자주 인출

    그 후 이 씨는 중앙정보부에 들어가 월남대사관에 요원으로 나갔다고 한다. 이때 김형욱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는 월남 여자(월남 장관의 딸)와 연애 결혼했는데, 정보요원이 현지 여자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 당시 중정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고 한다. 중정 간부들의 견해는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모아졌다고 한다.

    “여자의 아버지가 월맹(통일 전 북베트남)에서 내려온 사람이었는데, 내가 나가 있기도 했던 스위스에서 대사를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정부장이던 돈까스가 이 씨의 사연을 듣더니 대뜸 결혼에 찬성했다. 주요 인사의 딸이랑 결혼하면 고급정보를 더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C 씨)

    월남 여자와의 결혼으로 김형욱의 눈에 띈 이 씨는 이후 홍콩, 스위스 등에 파견 나갔다고 한다. 당시 해외에서 근무한 중정 요원들이 가장 싫어했던 일은 ‘돈 심부름’과 ‘북한이 하는 일 훼방 놓기’였는데 이 씨가 주로 한 일도 돈 심부름이었다. 스위스를 오가며 돈을 한 보따리씩 서울로 보냈다고 한다. 이 씨가 스위스 은행에서 돈을 찾아 보낸 곳은 김형욱이었다. 이 씨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돈을 보냈는데, 독일 본에 있는 다른 직원이 맡기도 했다고 한다.

    해외 근무를 가름 짓고 이 씨는 중정부장 비서실에 들어간다. C 씨는 당시 쓰인 김형욱의 회고록을 대필하기도 했다. 이 책은 후에 김경재 전 의원이 쓴 ‘김형욱 회고록’과는 다른 책으로, 일종의 일대기였는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김형욱이 부장직에서 밀려났을 때 이 씨의 직급은 과장이었다. 이 씨가 권력에서 도태된 김형욱의 혜화동 집을 다녀와서 C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권력이 참 무상하더라. 부장님 댁이 그렇게 초라해지는 꼴이…. 늘 문전성시였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라.”



    김형욱의 3500만 달러 어디 있나

    5월26일 국가정보원에서 열린 김형욱 실종 사건 중간발표 모습.

    김형욱은 73년 4월 미국으로 망명한다. 77년엔 미국 의회에 출석해 유신정권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 씨는 퇴임 후에도 돈까스를 참 잘 챙겼다. 김형욱의 부름을 받고 아예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당시 김형욱은 뉴저지에 100만 달러짜리 집에 살았는데, 자기 집은 안 구해줬다고 이 씨가 투덜거렸다. 이 씨는 동부이촌동 땅하고 성북동 땅(당시 중정 직원들에게 헐값에 분양한 토지라고 한다)을 팔아서 뉴저지에 집을 마련했는데, 권력에 붙어먹던 놈들이 다 돈까스 곁을 떠났다면서 욕을 해대기도 했다.”(C 씨)

    이 씨는 김형욱의 지시로 미국에서도 스위스 출장을 자주 떠났다고 한다. 물론 돈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이었다. 당시 김형욱은 이 씨에게 전 재산이 3500만 달러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이 3500만 달러는 김형욱의 죽음과 함께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씨는 미국에서 리커스토어(술을 파는 가게)를 운영했다. 미국 생활이 힘들어지면서 김형욱에 대한 애정도 식어갔다고 한다. 과로로 쓰러지는 일이 있은 직후 이 씨는 C 씨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한다.

    “C 형 나는 혁명에 참여해 한강 다리를 넘었어. 그래서 밥은 먹고 살았지. 그런데 김형욱이 때문에….”

    “스위스에 있다고 전화 걸어왔다”

    이 씨는 스위스 은행의 프라이빗뱅크를 이용할 때 필요한 회화 등을 녹음해 김형욱에게 건네주면서 “직접 가시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김형욱의 파리행·취리히행이 잦아졌고, 그의 동선이 정보기관 안테나에 잡혔다.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가는 길엔 카지노가 몇 군데 있었는데, 이 씨는 물론이고 김형욱이 즐겨 찾았다고 한다. C 씨의 주장이다.

    “조심스럽기로 소문난 돈까스가 한국 사람을 따라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스위스에서 프랑스 쪽으로 가는 길엔 고산준령이 많은데, 알프스 어딘가에 시체를 유기하면 절대로 찾지 못할 곳이 많다. 프랑스에서 시체를 유기했다는 국정원의 발표는 프랑스의 수사력을 모르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피아-3500만 달러-와 김형욱의 죽음이 연관이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 거주하는 김형욱의 며느리 역시 “시아버지는 파리에 간 지 며칠 후 스위스에 있다고 전화를 걸어왔다”면서 파리 살해설을 부인했다. 김형욱 자서전을 쓴 김경재 전 의원은 “김형욱이 국제 범죄조직에 의해 살해됐다는 얘기를 유력 정치인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했다.

    국정원은 루마니아 마피아가 김형욱을 살해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은 동구권인이라고 어정쩡하게 발표했다. 또 시체를 낙엽으로 덮었다고 어설프게 지목한 것은 사건 장소를 지정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프랑스와의 외교 마찰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도 보인다.

    국정원 조사에서 드러난 마피아와 C 씨가 언급한 마피아엔 ‘교차점’이 있을까. 중앙정보부, 마피아, 카지노, 스위스 은행, 청부살인…, 그리고 3500만 달러.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연상케 하는 이 미스터리는, 범인이라는 당시 중정 파리연수생 신현진의 진술에 의해 일단락되고 있다. 미스터리 속 미스터리-3500만 달러의 행방-에 비밀의 열쇠가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김형욱의 돈 심부름을 했던 이 씨는 세상을 떠났다. 김형욱과 이 씨,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돈(3500만 달러)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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