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국정원, 이번엔 믿어도 되나

김승규 원장 불법 감청 근절 의지 거듭 밝혀 … 자정 노력 외에 정치권도 의식 바꿔야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5-08-11 15: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국정원, 이번엔 믿어도 되나

    김승규 국정원장이 8월5일 과거 국정원의 도청에 대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한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7월5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장.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보통’답게 구체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김승규 국정원장 후보를 몰아붙였다.

    “후보자께서는 (국정원장직 제의를) 세 번 거절하고 나서 신건 전 원장을 만난 뒤 태도를 바꿨다고 하는데, 어떤 얘기 때문이었습니까.”

    “국정원장이 뭘 하는 자리인지 좀 알고 싶었습니다.”

    “신건 원장이 ‘이 두 가지 조건이 되면 수락해라. 첫째, 인사의 전권을 달라. 그리고 정치에 개입 안 하겠다’고 하라 해서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얘기했더니 그렇게 해주겠다 해 수락했다는데, 어떻습니까.”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 후보의 답변 내용대로라면, 그가 신건 원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형근 의원이 말한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만난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정 의원의 ‘정보력’은 입증된 셈이다.

    전·현직 국정원장 만남 정형근 의원은 어떻게 알았나

    문제는 정 의원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느냐 하는 점이다. 김승규 원장을 미행하거나 그의 전화를 도청하지 않으면 알기 힘든 내용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을 의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원장과 가까운 여권의 한 인사는 “김 원장은 국정원이 원장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전화 도청이나 하고, 이런 내용을 야당에 흘리는 조직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물론 국정원 측은 “도청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8월5일 안기부 X파일 조사 중간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김승규 원장은 “불법 감청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3월 이후 완전히 근절됐다”면서 “이제는 불법 감청을 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의도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 현 정권 들어 ‘적어도’ 현재까지는 국정원의 도청 논란이 본격 제기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국정원의 도청 근절 의지를 미심쩍어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그동안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정원 수뇌부도 수차례 도청 근절 의지를 표명했는데도 여전히 도청이 행해져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도청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고, 설령 합법적인 감청이라 해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일관되게 강조해왔던 김대중(DJ)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버젓이 도청이 이뤄졌다.

    국정원, 이번엔 믿어도 되나

    안기부의 비밀 도청팀 ‘미림팀’ 팀장 공운영 씨(가운데)가 8월4일 구속돼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정보기관의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전직 국정원 관계자들은 말한다. ‘외부’에서 온 국정원장이 국정원 조직을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하는 한 이런 ‘사고’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국정원의 전직 직원 A 씨는 “심지어 신건 전 원장 시절에는 신 원장이 국정원 내 실세로 통했던 특정 인사를 견제하자 이 인사 쪽 인맥의 주도로 신 원장을 도청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DJ 정권에서도 도청이 이뤄졌다는 국정원의 ‘자백’은 도청을 막기 위한 국회의 견제도 별 효력이 없었음을 입증한 셈이다. 국회가 그동안 통신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수사기관의 감청 대상을 축소하거나 감청 요건을 강화하고, 긴급 감청의 문서화를 추진해왔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버젓이 도청이 행해져왔기 때문이다.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으로도 정보기관 도청 막는 데 한계

    국회는 5월4일에도 통신비밀보호법을 개정했다. 핵심 내용은 과거 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승인으로 통신사실 확인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을 요청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는 지방법원 또는 지원의 허가를 받도록 한 점. 열린우리당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당시 국가정보원이나 검찰에서는 국회가 범죄 수사도 제대로 못하게 한다면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에 반대했다”고 귀띔했다.

    이 의원은 이번 개정에도 정보기관의 도청은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이 의원은 또 “가령 정보·수사기관이 범죄 혐의자에 대한 감청 영장을 발부받을 때 전혀 엉뚱한 사람의 전화번호도 함께 ‘끼워넣기’ 하면 ‘형식적으로는’ 합법 감청이 되지만 ‘내용상으로는’ 불법 감청이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현재 국정원이 이런 식으로 불법 감청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국정원 관계자들은 이런 우려에 대해 과거의 잣대로 평가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와 달리 지금은 국정원 수뇌부가 불법적인 공작을 지시하지도 않거니와,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80년대 후반 이후 국정원에 들어온 직원들의 반응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지시에 따를지 여부를 고민하다 결국에는 하는 척만 하고 제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론 정권도 ‘정권 안보’를 위해 국정원을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안기부 시절의 비밀 도청팀 ‘미림팀’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미림팀은 당시 정권 실세와 깊은 인연이 있는 안기부 내부의 실세 간부가 주도적으로 운용했고, 이 간부는 여기에서 얻은 정보를 정권 실세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국정원의 도청은 단순히 국정원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당사자인 국정원은 말할 것도 없고, 정치권도 변해야 ‘도청 논란’이 근본적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