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0

2016.10.26

한창호의 시네+아트

‘바람 불어 좋은 날’의 귀환

장률 감독의 ‘춘몽’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10-21 18: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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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장률 감독의 ‘춘몽’은 도시 주변부로 밀려난 청년들의 일상을 그린다. 공간적 배경은 서울 디지털미디어시티(DMC) 맞은편 수색역 부근이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첨단과 낙후, 혹은 선진과 저개발의 개념이 강렬하게 대비돼 있다. ‘춘몽’의 주인공은 건달 익준(양익준 분), 탈북청년 정범(박정범 분), ‘바보’ 종빈(윤종빈 분)이다(영화감독 세 명이 실명으로 출연했다). 이들은 조선족 처녀 예리(한예리 분)를 동시에 사랑한다. 예리는 종빈의 낡은 집 마당에서 조그만 주막을 운영한다.

    보다시피 네 사람 모두 사회제도 밖으로 밀려난 인물이다. 익준은 고아 출신 조폭이었는데, 보스에게 밉보여 그곳에서도 쫓겨났다. 정범은 공장에서 임금도 받지 못하고 해고됐는데, 탈북자라는 게 이유가 됐을 테다. 종빈은 죽은 부모에게 허름한 집 한 채를 물려받았다. 고아나 다름없는 그는 무엇이 결핍됐는지, 아기가 엄마 젖을 빨듯 항상 우유를 입에 물고 산다(윤종빈의 연기가 대단히 인상적이다). 예리는 엄마의 유언에 따라 부친을 찾아 한국에 왔는데, 부친이 전신마비 환자인지라 그가 오히려 부친을 부양해야 한다. 네 주인공 모두 사실상 고아인 셈이다. 말하자면 부모로 상징되는 ‘사회제도’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춘몽’은 이 네 청년의 비관과 낙관, 그 사이를 왕복하며 간접적으로 신분격차의 대물림 같은 우리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회 비판 코미디 영화다.

    ‘춘몽’은 주변인 청년들을 통한 사회 비판이란 주제 면에서 이장호 감독의 고전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떠오르게 한다. 이 영화는 개발 붐을 타고 서울 곳곳이 파헤쳐지던 시절 ‘출세’라는 꿈을 좇아 상경한 시골 청년들의 좌절과 희망을 그린 코미디다. 용기 있게도 이 작품이 나온 당시는 ‘신군부’에 의해 사회의 부정적 요소가 엄격히 가려질 때다. ‘춘몽’의 인물들처럼 이 영화의 주인공도 전부 주변인이다. 중국집 배달부(안성기 분), 이발소 사환(이영호 분), 여관 종업원(김성찬 분) 등이며, 이들이 관계 맺는 여성도 공단 노동자(임예진 분), 이발소 면도사(김보연 분)다. 영화는 비록 청년들의 (근거 없는) 낙관을 희망적으로 그리지만, 그들의 미래가 어떨지는 우리 모두 짐작하는 바다.

    ‘춘몽’의 청년들은 ‘바람 불어 좋은 날’ 주인공들의 자식들처럼 보인다. 중국집 배달부의 자식은 훗날 어떻게 자랐을까. ‘춘몽’의 청년 가운데 한 명과 닮지 않았을까. ‘춘몽’의 청년들이 과거 인물들보다 더 안타까워 보이는 것은 돌아갈 고향도, 가족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1980년대와 달리 이제 DMC로 상징되는 미래 세계로 도약하고 있지만, 구성원의 삶은 과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춘몽’에 따르면 더 악화됐다고 보는 게 맞다. 과거 작품을 참조한(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춘몽’의 미덕은 DMC의 빌딩처럼 위만 쳐다봤을지 모를 우리를 거울에 비춰 보게 함과 동시에 한국 영화의 보석인 고전의 매력을 상기케 한 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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