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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멸의 기록 <24>ㅣMLB 믿기 힘든 진기록

악! 한 이닝 한 선수에 만루포 두 방

1999년 LA-세인트루이스戰 … 투수 박찬호는 최악, 타자 타티스는 최고의 날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악! 한 이닝 한 선수에 만루포 두 방

악! 한 이닝 한 선수에 만루포 두 방

한 이닝에 한 타자에게 2개의 만루홈런을 맞은 박찬호가 괴로워하고 있다

프로야구에서 투수가 한 경기에서 만루를 허용하는 경우는 많아야 한두 차례다. 당연히 만루홈런을 허용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더구나 한 이닝에 만루를 두 번 허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투수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9년 4월25일(한국시간) 박찬호는 한 이닝에 두 차례 만루를 허용했고, 두 번 모두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 그것도 한 선수에게 잇따라 허용했다. 한 이닝에 한 투수가 똑같은 선수에게 만루홈런을 연속 허용하는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다시 일어날 확률 사실상 제로

박찬호에겐 수치스러운 기억이겠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30년이 넘은 메이저리그 역사에도 없었고, 앞으로 130년이 지나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전문가들은 박찬호가 한 이닝 한 선수에게 2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한 기록을 ‘메이저리그 최고의 진기록’이라고 부른다. 당시로 되돌아가 보자.

LA다저스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 박찬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 시즌 네 번째 선발투수로 나섰다. 당시 박찬호는 98년 시즌이 끝난 뒤 98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병역면제 혜택을 받아 홀가분한 상황. 그러나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느라 무리를 한 데다 마무리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몸 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시즌 첫 경기인 4월7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에서 7이닝 동안 4안타 2실점을 기록하며 퀄리티 스타트를 했지만 승리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13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전에서는 5이닝 동안 6안타 5실점을 당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트레비스 리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한 것이 패배의 빌미가 된 것이다. 18일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전에서는 5이닝 동안 8안타를 맞으며 3점을 허용했지만 팀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1승1패 방어율 5.29를 기록했다.

4월24일 박찬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전에 시즌 2승째 도전에 나섰다. 슬로 스타터(경기력이 중반 이후에 나타나는 스타일)인 박찬호는 경기 시간에 맞춰 몸 상태를 조절했지만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예정시간(7시10분)보다 18분 늦은 7시28분에 경기가 시작됐다. 박찬호는 홈 선발이기 때문에 먼저 마운드에 올랐다.



박찬호는 톱 타자 데렌 브렉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했지만 이후 에드거 렌테리아와 마크 맥과이어를 각각 삼진으로 잡은 다음, 페르난도 타티스를 2루 땅볼로 잡아 무실점으로 넘겼다. 그동안 팀 동료들이 1점을 내서 1회에 1대 0으로 리드를 잡았다. 박찬호는 2회 초 첫 타자 J. D 드루에게 우전 2루타를 허용해 무사 2루의 위기를 맞았다. 6번 타자 엘라이 메레로를 투수 땅볼로 잡은 뒤 7번 블랑코에게 볼넷을 허용해 실점 위기를 맞았지만 8번 맥유잉을 투수 땅볼, 9번 투수 히메네스를 1루 땅볼로 잡아 위기를 벗어났다. LA다저스 타자들은 2회 말에 다시 1점을 내며 2대 0으로 앞서 2승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3회 초 들어 박찬호는 전혀 다른 투수로 변했다. 선두타자 데렌 브렉에게 우전안타를 맞은 다음 2번 타자 에드거 렌테리아에게 볼넷, 그리고 마크 맥과이어에게 우전안타를 맞아 무사만루 위기에 처했다. 여기서 박찬호가 4번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만루홈런을 얻어맞으면서 팀은 2대 4로 뒤지기 시작했다. 박찬호는 5번 타자 J. D 드루를 2루 땅볼로 잡아 첫 아웃카운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6번 타자 엘라이 메레로에게 또다시 몸쪽 직구를 던지다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스코어는 2대 5로 3점차로 벌어졌다.

이때부터 박찬호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체된 7번 타자 블랑코와 8번 맥유잉을 잇따라 볼넷으로 걸어 내보낸 것이다. 그럼에도 LA다저스의 데이비 존슨 감독은 박찬호를 강판시키지 않았다. 9번 타자 히메네스가 투수 앞 땅볼을 때렸지만 이미 흔들린 박찬호는 야수 선택으로 다시 만루를 자초했다. 톱타자 브렉이 1루 실책으로 나가 점수는 6대 2로 벌어졌고, 2번 에드거 렌테리아의 우전 적시타로 7대 2가 되었다.

박찬호 “이런 날도 있구나”

박찬호는 3번 마크 맥과이어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 한숨 돌리는가 싶었으나 다시 돌아온 4번 타자 타티스에게 두 번째 만루홈런을 얻어맞아 한 이닝 한 선수에게 만루홈런을 2개 연속 허용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진기록을 완성했다. 박찬호는 3회 한 이닝에만 13명의 타자를 맞아 만루홈런 2개, 솔로홈런 1개 등 홈런 3개와 6안타, 몸에 맞는 볼 1개 등 사사구 3개를 허용하면서 무려 11점을 빼앗겼다. LA다저스는 이 경기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5대 12로 패했고, 박찬호는 당연히 패전투수가 되었다.

경기가 끝난 뒤 박찬호는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오늘 경기에서 어떤 점을 느꼈는가.

“이런 날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올해 선발 등판할 33~34경기 가운데 이제 4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한다.”

-오늘 경기의 문제점은?

“최악의 날이었다. 빗맞은 타구도 안타가 되었다. 나는 되는 게 없었고, 세인트루이스 타자들은 안 되는 게 없었다.”

-4번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 이닝에 2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했다.

“홈런 타자 3번 마크 맥과이어를 상대한 뒤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4번 타자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만루 상황이라 더욱 신경을 써서 던졌어야 했다.”

-지금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마운드에서 내려와 로커룸에 앉아 있는데, TV에서 다저스 팀 아나운서인 빈 스컬리 씨가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투수들도 이런 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조금 위안을 받았다.”





주간동아 2005.05.03 483호 (p84~85)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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