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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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달이는 향기 바람결에 전해온다네

길상사 석간수로 차 달여 … 1000여 보 떨어진 곳에서도 茶香 맡았을 정도

  • 정찬주/ 소설가

    입력2005-04-28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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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달이는 향기 바람결에 전해온다네

    수행자의 발우.

    상백운암(上白雲庵)은 전남 광양의 백운산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암자(해발 1040m)로, 현대의 고승인 구산 스님이 9년 동안 수행한 곳이다. 암자 주위에 병풍처럼 둘러처진 바위는 힘찬 기운을 뿜어내고, 차 맛을 내는 조건 중 최고인 석간수(石間水)의 맛은 깊고 달다.

    길상사(현 전남 순천 송광사) 1세 사주(師主) 지눌도 바로 저 돌샘 물로 차를 달여 마셨을 것이다. 좌선을 오래 하다 보면 망상이 고개를 들고 졸음이 오는데, 이때 맑고 향기로운 한 잔의 차는 온몸에 활기를 주고 느슨해진 정신을 깨어나게 한다. 그래서 선가에 다선일여(茶禪一如)란 말이 생긴 것이다. 지눌이 남긴 다시(茶詩)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이규보가 지은 진각국사 비명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을축년(1205) 가을,

    보조국사가 억보산(현 백운산)에 있을 때

    진각국사가 선승 몇 사람과 보조국사를 뵈러



    가는 길에 산 밑에서 쉬는데, 암자와의 거리가 1000여 보나 되는데도 보조국사가 암자

    안에서 시자 부르는 소리가 멀리 들려왔다.

    보조국사의 게(偈)는 이러하다.

    아이 부르는 소리 송라의 안개에 울려퍼지고/

    차 달이는 향기 돌길 바람에 전해온다네

    (呼兒響落松蘿霧 煮茗香傳石經風).’

    지눌이 달이는 차 향기가 1000여 보나 떨어진 곳까지 바람결에 풍겨왔다는 내용은 그가 차를 즐겨 마셨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지눌의 자호는 목우자(牧牛子)이고, 시호는 불일보조(佛日普照). 8세 때 사굴산파의 종휘 스님에게 나아가 승려가 된 뒤 밤낮으로 공부하여 명종 12년(1182) 25세 때 승과에 급제한다. 그리고 보제사의 담선법회에 참석하여 대중과 정혜결사를 맺고 수행정진을 맹세했으나 호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결사를 뒷날로 미룬다.

    교계의 부질없는 쟁론 질타하기도

    이때 고려불교는 선종과 교종이 서로 대립했는데, 지눌은 선교일치의 태도를 고수했다. 따라서 지눌은 불(佛)에 의지하여 정진하기도 했던 바, ‘육조단경’의 ‘진여 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키매 육근(六根)이 보고 듣고 깨달아 알지만, 그 진여 자성은 바깥 경계들 때문에 물들어 더렵혀지는 것이 아니며 항상 자유롭고 자재하다’라는 구절에 첫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이후 지눌은 마음을 닦으며 정진하는 동안 대장경을 읽다가 ‘부처의 말씀이 교가 되고, 조사께서 마음으로 전한 것이 선이 되었으니, 부처나 조사의 마음과 말씀이 서로 어긋나지 않거늘 어찌 근원을 추구하지 않고 각기 익힌 것에 집착하여 부질없이 쟁론을 일으키며 헛되이 세월만 소비하는가’ 하고 교계를 질타한 뒤, 팔공산 거조사로 옮겨 동지들을 모아 ‘정혜결사문’을 선포한다. 마음을 바로 닦음으로써 미혹한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언으로 그 방법은 정혜쌍수, 즉 정과 혜를 함께 닦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눌은 8년 만에 결사한 대중 중에 일부가 초심을 잃자, 거조사를 떠나 36세 때 지리산 상무주암에 머물며 ‘대혜어록’을 보다가 ‘선은 고요한 곳에도 있지 않고 시끄러운 곳에도 있지 않다’는 구절에서 홀연히 크게 깨닫는다.

    이어 지눌은 희종의 명을 받아 길상사에서 오랫동안 머물며 선풍을 크게 일으킨다. 길상사를 중심으로 백운암, 규봉암, 조월암 등을 오가며 안거한 지 10여년, 지눌은 대중을 불러 모아놓고 주장자를 세 번 치면서 ‘천 가지 만 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다’는 화두 같은 법문을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 가는 길

    남해고속도로에서 광양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우회전해 2분여 가다 다시 옥룡면 쪽으로 우회전해 곧바로 가면 백운암 이정표가 나온다. 상백운암은 백운암에서 다시 20여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수행자의 발우.



    茶人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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