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83

2005.05.03

“변화 이끌 ‘글로벌 리더’ 키운다”

어윤대 총장 “영어 강의 확대, 재정 확충 세계적 명문대로 도약할 터”

  • 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 heb8610@donga.com

    입력2005-04-28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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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 이끌 ‘글로벌 리더’ 키운다”

    어윤대 총장

    “2년 사이에 완전히 다른 대학이 됐다.”

    5월5일 개교 100주년을 맞는 고려대 어윤대 총장의 자체 평가처럼, 정말 요즘 고려대의 변신은 눈부시다. 오랜만에 모교를 찾은 고려대 교우들은 지하광장과 첨단건물로 일신한 캠퍼스 풍경에 어리둥절해한다고 한다.

    하드웨어 변화와 함께 소프트웨어도 확 바뀌었다. 교육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글로벌 리더를 양성해내자는 취지에서 ‘글로벌 KU(고려대의 영문 이니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이후 대학의 체질과 이미지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4월19일 고려대 총장실에서 가장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고려대의 대변신 내막을 어윤대 총장에게서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고려대의 개교 100주년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대한제국 말 최초의 고등교육기관이자, 민족자본에 의해 설립된 고려대가 개교 100주년을 맞는 것은 단순히 최초라는 차원을 떠나 여러 면에서 뜻 깊은 일이다. 고려대는 ‘교육 구국’이라는 차원에서 세워졌을 뿐 아니라, 100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민주화되고 정치·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한국의 가장 권위 있는 대학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 기여한 고려대의 지난 100년은 마치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이나 미국의 하버드 대학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글로벌 KU’를 내건 이후의 변화상을 요약한다면 무엇인가.

    “외국으로 나가서 수업을 듣는 고려대생의 수가 불과 2년 사이에 20배 늘었다. 고려대에 와서 공부하는 외국 학생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영어 강의 비중이 5% 수준에서 2년 사이에 25%로 5배가 됐다. 획기적인 변화다.”

    -고려대의 글로벌 프로젝트의 핵심 중 하나가 영어 강의의 확대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시도해본 결과는 어떤가.

    “교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가 많고, 학생들도 대부분 한국 학생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강의가 진행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어 강의로 인해 얻는 긍정적 효과가 월등하게 크기 때문에 계속 확대해나갈 생각이다. 요즘 고려대에 새로 부임하는 교수들은 모두 영어 강의가 가능하고 또 그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다. 학생들도 1년 정도만 더 지나면 확실하게 달라질 것이다. 해외 대학에 가서 학점을 이수하고 돌아오는 학생들도 계속 늘어날 것이므로 4~5년 뒤에는 영어 강의의 효과가 엄청나게 확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현재 25%인 영어 강의 비중을 2010년까지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유학 오는 외국 학생이 서울대로 가겠는가, 고려대로 오겠는가. 이런 전략과 방침이 계속되면 외국 대학이나 외국 학생들이 보는 한국의 일등대학은 고려대가 될 수밖에 없다.”

    -2010년까지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불과 5년 후가 아닌가.

    “100대 대학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충과 SCI(과학논문 인용 색인) 논문 증가, 외국인 학생 비율과 교수 1인당 학생수 등의 주요 지표가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 외국인 교수를 많이 늘릴 계획이 서 있고 외국 학생들도 영어 강의 확대와 국제학사 건립 등에 힘입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SCI 논문은 이공계와 의과대학에서 많이 나와야 하는데 인센티브 제도와 함께 논문이 없으면 승진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시스템을 바꾸었기 때문에 곧 좋은 논문이 양산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미국의 5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100대 대학 진입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본다.”

    -모든 분야에서 세계 수준으로 발전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면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일 텐데, 향후 고려대는 어떤 분야에 역량을 집중할 방침인가.

    “최근 경영학·경제학 분야의 수준이 크게 올라가 국내 최고로 꼽힌다. 이제 사회과학 계열은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한국학 분야와 이공대나 의대 등 자연계열에 집중할 생각이다. 한국학센터가 2~ 3년 안에 경쟁력을 갖게 되면 한국학 분야에선 버클리 대학이나 스탠퍼드 대학보다 좋아질 것이다. 자연계열을 키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필요한데, 남은 임기 2년 동안은 여기에 혼신의 힘을 다할 생각이다. 대학본부가 있는 캠퍼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던 안암동 로터리의 이공계 캠퍼스에 지하광장을 만들고 있어 곧 이쪽의 교육환경과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다. 의대의 경우 연구동을 새로 짓는 등 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또 진료를 하지 않는 연구교수들도 뽑고 있기 때문에 내년 말부터는 의대의 연구 수준도 엄청나게 향상될 것이다.”

    -고려대생의 기질이나 고려대 특유의 문화를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가 막걸리였는데, 최근 글로벌화를 강조하면서 100주년 기념으로 프랑스산 와인을 대량 들여와 기념 판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내 구성원들은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나.

    “막걸리 대신 와인을 택한 것은 매우 의도적이었다. 고려대가 변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이벤트이자 모멘텀(momentum)을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 졸업생들은 이런 상징적인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졸업생들로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재학생이나 교직원들에게서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앞으로도 교육 시설 확충 등에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지 않겠나. 발전기금 모으는 일도 확대해야 할 텐데.

    “물론 확대해야만 한다. 오늘 아침에 만난 미시간 대학 모금 책임자는 최근 5년간 1조7000억원가량을 모았다고 했다. 앞으로 모금이 없이는 사립대가 존속하기 힘들다.”

    -고려대의 경우 재단과 동문들의 지원이랄까, 역할 분담이 가장 잘 되고 있는 대학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난 10여년간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듯이 이제 대학의 지배구조도 문제가 될 것이다. 문제는 대학 재단이 돈을 얼마나 주느냐가 아니라 학교 운영의 투명성 여부일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학교와 재단, 동문회의 관계가 더욱 중요시될 것이다. 고려대의 경우는 이런 점에서 아주 이상적이다. 교수 채용 시 재단에서 단 한 사람도 부탁한 사례가 없다. 굉장히 투명하다. 재단과 교우회의 관계도 아주 좋다. 대학이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기금도 잘 모을 수 있다.”

    -기업체를 상대로 졸업생 평판도 조사를 하면 항상 고려대 졸업생들이 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온다. 글로벌 프로젝트를 거쳐 배출되는 고려대생들은 그 성향이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고려대 졸업생에 대한 좋은 평가에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나 성실성 등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사실 학생들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오면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고려대생의 전통적인 장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걱정스럽다. 국제화 마인드를 갖추되 고려대생 특유의 인간적인 매력을 잃지 않도록 슬기롭게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고려대의 글로벌 프로젝트가 국내 다른 대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서울의 모 사립대학에서 고려대의 발전 모델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말도 들었다. 다른 대학들이 고려대의 변화를 높이 평가하고 이에 자극을 받아 나름의 전략을 세워 경쟁한다면, 이는 곧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고려대가 일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로서는 국내 다른 대학들의 움직임에 신경 쓰지 않는다. 모든 것을 학문적으로 앞선 선진 외국 대학에 견주어 발전시켜 나갈 생각이다.”

    -고려대의 이 같은 변화가 어디까지 지속될지도 관심거리다. 앞으로 다른 견해를 가진 총장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은가.

    “제 목표는 고려대를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고 있다. 총장이 바뀌더라도 이 같은 전략이 유지될 수 있게끔 제도화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대학총장은 학문적인 카리스마와 함께 관리 능력이 있고, 국제 감각이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보는데, 다행히도 고려대에는 그런 분이 수십명이나 된다.”

    ● 어윤대 총장 약력

    ·경남 진해 출생(1945)

    ·경기고, 고려대 경영대학 학사·석사

    ·미국 미시간 대학 경영학 박사

    ·고려대 경영대 부교수(1979)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한국

    국제경영학회 회장(1992)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소 소장(1993)

    ·한국금융학회 회장(1995)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2001)

    ·한국경영학회 회장(2002~)

    ·고려대 제15대 총장(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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