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5

2005.03.08

쌓이는 공포, 평범한 반전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3-04 11:0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쌓이는 공포, 평범한 반전
    데뷔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아직 12살도 안 된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다코타 패닝의 연기 파트너들의 명단은 할리우드에서 몇 십년간 활동한 웬만한 성인 배우들 못지않다. 숀 펜, 덴젤 워싱턴, 로버트 드 니로, 톰 크루즈…. 이 명단만으로도 기가 막히지만, 패닝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카데미상을 목에 건 이 거물 파트너들에게 결코 꿀리지 않는 연기와 스타로서의 자기 통제력을 보여준다. 최근작 ‘숨바꼭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도 패닝의 존재감이다. 이 어린 소녀가 20세기 미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인 로버트 드 니로의 기를 팍 죽이는 화려한 연기를 펼치는 광경은 거의 초자연적이기까지 하다.

    ‘숨바꼭질’은 자살로 아내를 잃은 정신과의사 데이빗 캘러웨이가 딸 에밀리와 함께 도시 외곽의 시골로 이사 가면서 시작된다. 에밀리는 그곳에서 찰리라는 상상 속의 친구를 만드는데, 처음에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아이로 생각했던 찰리의 존재가 점점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흐르자 데이빗은 찰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에밀리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찰리는 정말로 어디엔가 존재하는 걸까?

    우선 ‘숨바꼭질’이 분명 한번쯤 깊이 있게 다루어져 마땅한 소재를 정면으로 끄집어낸 영화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듯하다. 상상 속 친구라는 소재는 이미 RKO의 전설적인 제작자 발 루튼이 ‘캣피플의 저주’라는 영화를 통해 다룬 적이 있지만,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영화는 순수한 공포영화보다 아동심리를 다룬 팬터지에 더 가까웠다. 자주 다루어지지 않는 이 소재를 다코타 패닝이라는 절묘한 도구를 통해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숨바꼭질’은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영화는 주연배우와 아이디어, 그리고 끝에 나오는 반전을 너무 믿은 게 분명하다. 검은 가발을 쓴 패닝은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소재 역시 아낌없이 쓰였지만 그뿐이다. 설정을 만들고 반전(그것도 그렇게 신선하지도 않은)을 세운 걸 제외하면 제대로 된 호러영화를 만들기 위해 보여준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죽는 도입부에서부터 미치광이 살인마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구하려는 필사적인 사투를 다룬 결말까지, ‘숨바꼭질’은 지루하고 뻔한 클리셰들로 가득 차 있다. 패닝과 드 니로라는 훌륭한 배우들을 두었지만 정작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구멍투성이다. 실패에 대한 더욱 멋있는 분석이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숨바꼭질’에서는 그것도 어렵다. 이 영화는 그냥 서툴게 만들어진 장르다.

    국내 배급사에서는 결말이 다른 두 편의 버전을 반반씩 배급한다. 재미있는 시도지만 다른 하나를 놓친다고 해서 특별히 많이 잃을 건 없다. 반전과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정도는 아니고, 그냥 조금 분위기가 다른 에필로그들이 따로 붙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Tips

    다코타 패닝 1994년에 태어남. ‘아이 엠 샘’ ‘더 캣’ ‘업타운 걸’ 등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 최고의 아역스타로 자리잡았다. 어린 나이인데도 뛰어난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는다.




    영화평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