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4

2005.03.01

생명의 적신호‘고지혈증’

자각 증상 없다 불시에 치명적 공격 … 제대로 관리 안 하면 생사 갈림길 놓일 수도

  • 입력2005-02-24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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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의 적신호‘고지혈증’

    한국화이자제약의 후원으로 무료 콜레스테롤 측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정기적 콜레스테롤 검사는 고지혈증 예방과 함께 생명을 지키는 필수 과정이다.

    평소 술자리가 잦은 데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운동을 멀리하던 직장인 L씨(36)는 얼마전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당 의사에게서 ‘고지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검진 결과는 총 콜레스테롤 255mg/dℓ, LDL 콜레스테롤 170mg/dℓ로 나타났다. 평소 별다른 증상이 없어 건강에 자신하던 L씨는 갑자기 불안해졌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높았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일이 떠올랐기 때문. L씨는 전에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주의를 받았지만 ‘아직 젊은데 운동하고 고기 덜 먹으면 괜찮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다.

    병명을 알고 난 L씨는 곧바로 정상 콜레스테롤 수치를 알아봤다.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수치와 너무 크게 차이 나는 데 놀란 것은 당연지사. 고지혈증이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고, 동맥경화는 뇌졸중·심장병 등 치명적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는 드디어 자신의 건강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반인 콜레스테롤 지식 ‘낙제’ … 2.9%만이 자신 수치 알아

    건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지만, 바쁜 직장인들이 자신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1년에 단 한 차례 받는 건강검진 때뿐이다. 혈압이나 혈당·콜레스테롤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수치와 정상 수치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99쪽 표 참조).

    콜레스테롤과 혈압 수치는 ‘생명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나 혈압은 우리의 생명을 좌우하는 심혈관 질환의 주범이기 때문. 2001년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망원인은 뇌혈관 질환(2위 14.4%), 심장질환(3위 6.5%), 당뇨병(4위 4.5%)으로, 하루 평균 뇌혈관 질환 97명, 심장질환 45명, 당뇨병으로 인해 31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2003년 통계청의 사망원인 발표에서도 인구 10만명당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으로 인한 심장질환 사망자가 1992년 12.5명에서 2002년 25.2명으로 두 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여년 전에 비해 돌연사가 2배가량 높아진 셈. 미국은 해마다 30만~40만명이 심장 돌연사로 사망하자, 고지혈증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질환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연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은 거의 ‘낙제’ 수준이다. 2004년 10월 대한순환기학회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혈압 수치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45.2%가 알고 있지만, 정상 콜레스테롤 수치는 2.9%만이 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모른다는 것, 바로 이것이 콜레스테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생명의 적신호‘고지혈증’
    동맥경화로 진행되고 합병증 이후에야 병 발견

    고지혈증은 혈액에 있는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등의 지질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때문에 고지혈증을 알려면, 반드시 콜레스테롤에 대한 ‘학습’이 선행돼야 한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과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생성하고 지방흡수에 필요한 성분으로,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다. 그러나 지나치면 병을 불러온다. 즉 콜레스테롤이 몸에 필요 물질이긴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 도리어 병을 일으키는 것.

    생명의 적신호‘고지혈증’
    하지만 콜레스테롤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콜레스테롤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LDL(Low Density Lipoprotein) 콜레스테롤과 ‘좋은 콜레스테롤’이라 불리는 HDL(High Density Lipoprotein) 콜레스테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LDL 콜레스테롤은 동맥경화증을 촉진하므로 위험하지만, HDL 콜레스테롤은 혈액 및 조직 속에 있는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주는 구실을 한다. 따라서 고지혈증 치료를 위해서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위 상자기사 참조).

    1910년대 러시아의 한 학자는 “콜레스테롤이 없으면 동맥경화증도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고지혈증이 생기면 가장 주의해야 할 질환은 바로 혈관의 지방덩어리인 플라크(plaque)가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혈류를 방해하는 동맥경화증이다. 더욱이 고지혈증은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대다수가 동맥경화증으로 진행되고 합병증까지 발생한 이후에야 병을 발견해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 동맥경화증 중에서도 심장에서 다른 부위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는 동맥의 혈관벽이 두꺼워지는 ‘죽상(竹狀) 동맥경화증’이 발병하면,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같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이어져 생명을 잃게 된다.

    대부분의 병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심각한 질환을 가져오지만, 고지혈증이야말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질환의 원인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미국, 유럽 등 서구에서는 심장질환의 하나인 심근경색이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암·뇌졸중에 이어 사망원인 3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따져보면 고지혈증 관리는 ‘생명 관리’라고도 볼 수 있다.

    콜레스테롤 10% 감소하면 심장질환 사망률 20% 줄어

    실제 미국 프레밍험 연구(Framingham Study)에 따르면, 40세 이하에서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심혈관 질환 발생률이 정상인보다 크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MRFIT(Multiple Risk Factor Intervention Trial)연구소의 연구결과에서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240mg/dℓ 이상인 남성은 200mg/dℓ 미만인 남성에 비해 심혈관 질환의 위험성이 3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적으로 콜레스테롤이 10% 감소하면 심장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20% 정도 낮아지고, 심근경색 발생률도 17% 정도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심근경색, 심혈관 질환에 의한 사망 등 관상동맥 경화증 관련 사고도 23%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관심을 끄는 질환인 ‘대사성 증후군’은 복부비만, 고혈압, 고혈당(내당능 장애·당뇨병), 고지혈증(높은 LDL콜레스테롤·낮은 HDL 콜레스테롤) 등의 질병들이 한 개인에게서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대사성 증후군은 혈관의 동맥경화를 빠르게 진행시켜 동맥경화성 심장병의 발생을 증가시키므로 특히 위험하다.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 지부가 제시한 아시아인의 비만 기준에 의하면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인 체질량지수 BMI가 25 이상이거나, 복부 비만지수로는 허리둘레가 남성 90cm, 여성 80cm 이상일 때 비만이라 할 수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대사성 증후군은 남자의 경우 약 19%, 여자는 16%로 당뇨병 환자 유병률보다 3배 정도 높다. 대사성 증후군은 뇌, 심혈관계 질환 및 돌연사의 위험요소이므로 체중 조절과 적절한 운동으로 예방하고, 필요에 따라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생명의 적신호‘고지혈증’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막혀가는 모습.

    2004년 발표된 미국 보건성의 국립 콜레스테롤 교육프로그램 3차 보고(Third Report of National Cholesterol Education Program, NCEP)에 따르면 총 콜레스테롤 200mg/dℓ미만, LDL 콜레스테롤 100mg/dℓ 미만, HDL 콜레스테롤은 60mg/dℓ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99쪽 표 참조).

    하지만 인종마다 신체적 특성이나 성향이 다르게 나타나듯, 정상 콜레스테롤 기준 역시 다르게 정해져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2004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예방의학과 지선하 교수와 노화과학연구소 조홍근 교수가 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지에 발표한 ‘허혈성 심질환 발생예측 모형’에 따르면, 한국인은 총 콜레스테롤 수치를 190mg/dℓ 미만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30세부터 79세의 한국인 남녀 총 93만1466명(남자 47만1491명, 여자 45만9975명)을 대상으로 총 콜레스테롤, 혈압, 공복시 혈당, 체격검사 결과를 1993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추적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지선하 교수는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같더라도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이 서양인보다 한국인에게 상당히 높았다”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경우 허혈성 심질환을 예방하려면 남녀 모두 총 콜레스테롤 수치를 190mg/dℓ 미만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비만·운동 부족한 경우 고지혈증 위험률 ‘껑충’

    비만이거나 운동이 부족하면 고지혈증 위험률이 높아진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음주는 고혈압을 악화시킬 뿐 아니라 중성지방 수치를 높이고, 스트레스·음주·흡연 등은 고지혈증의 위험인자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이 고지혈증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남녀 모두 60~65세가 될 때까지 계속 높아지는데, 특히 여성의 경우 폐경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50세 이후에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고지혈증이 생기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가족력을 빠뜨릴 수 없다. 인구 500명 중 1명꼴로 유전으로 인한 가족성 고지혈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유전적인 요소가 전적으로 고지혈증 발병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식생활도 영향을 미치는데 간·내장·알 등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즐기거나, 중성지방을 동시에 많이 섭취하면 LDL 콜레스테롤이 높아진다.

    20세가 넘으면 최소 5년에 1회 정도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직장인인 경우에는 정기 건강검진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가정 주부나 노인들은 콜레스테롤 검사를 받을 기회가 적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특히 45세 이상의 남성, 55세 이상의 여성은 고지혈증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 흡연이나 음주를 즐기는 사람,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있는 사람도 고지혈증 고위험군이다. 특히 심혈관 질환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고지혈증’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일찍 폐경을 맞은 여성의 경우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하지 않고 있다면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갑자기 높아질 수 있으니 신경 써야 한다. 고지혈증은 자각 증상이 전혀 없으므로 다른 어떤 질환보다 검사가 중요하다. 검사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12시간 동안 금식한 뒤 혈액을 채취해 확인하는데, 총 콜레스테롤·중성지방·HDL 콜레스테롤을 측정하며, LDL 콜레스테롤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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