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8

2005.01.11

누구를 위한 ‘민생법안’인가

  • 입력2005-01-07 15:0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어느 해보다 스산한 세밑과 연초다. 서민들의 입에서는 ‘IMF 때보다도 못하다’는 체감경기 타령이 끊이지 않는다. 1998년 경제위기 때는 그때까지 모아놓은 돈이나 퇴직금이라도 동원할 수 있었고, 하다못해 카드 빚이라도 얻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2005년 경제 전망이 잿빛이다 보니 세밑인데도 캐럴조차 듣기 힘들었다.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빠 힘내세요’라는 노래뿐이었다.

    세밑의 스산함은 서울 여의도 풍경을 보면 이내 착잡함으로 바뀐다. 여의도의 천막들은 하나 둘씩 늘어나 어느새 국회 앞을 가득 채웠다. 국가보안법 철폐 천막을 필두로 비정규직, 사립학교법, 장애인 이동권, 의료개방 반대 등 하나같이 나름대로의 요구를 내건 농성 천막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직업이 의사다 보니 찬 바닥에서 단식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진료 요청이 온다. 하지만 거리에서 하는 ‘진료’라는 것이 그들의 절박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단식으로 까칠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나도 모를 절망감이 가슴을 저민다. 내 절망의 근원은 바로 국회에 있다. 17대 국회는 이른바 ‘개혁국회’다.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그러나 그 기대에 그들이 답한 것이 무엇인가.

    치료보다 수익 우선? … 서민복지와는 거리 멀어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나 경제가 어렵다는 데는 모두 공감한다. 마치 앙숙처럼 보이는 두 당이 소리 소문 없이 ‘합의 처리’한 법안은 바로 ‘경제 살리기’ 법안이었다. 그들은 이를 ‘민생법안’이라고 부른다.



    서민들은 ‘경제 살리기’를 서민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당에 경제 살리기는 다른 의미인 것 같다. 복지 분야에서 이른바 ‘민생법안’은 보건의료와 복지를 기업에 맡기는 법들이 대부분이다. 민생 3법 중 연기금 운용법에 대한 국민들의 정서는 국민연금을 주식시장에서 날릴지도 모르는데 무슨 주식투자냐는 것이지만 두 당은 이에 전혀 이견이 없다.

    또 하나의 ‘민생법안’인 민간투자법은 얼마 되지도 않는 공공의료와 복지 분야를 기업의 투자처로 내주는 법이다. 기존의 민간투자 허용 분야에 공립병원, 학교, 보육시설, 임대주택 등을 포함시킨 이 법은 영국 수상 블레어의 ‘의료개혁 실패’를 연상케 한다. 블레어는 영국의 국가 의료체계(NHS)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공립 의료기관에 민간자본을 유치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공립병원은 민간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공익사업을 줄였고, 그것도 모자라 공공자산조차 잠식해가기에 이르렀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이뤄지는 기업 살리기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조차 이루어진다. 의료법 개정안은 병원의 부대사업으로 건강식품 제조판매, 온천장·화장장 등을 허용하자는 법안이다.

    치료보다 수익을 위한 부대사업이 더 커진 셈이다. 두 당이 합의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은 병원이 건강보험 적용을 안 받고 진료비를 자기 마음대로 받을 수 있게 해 현재 진료비의 10~20배를 받을 수 있는 부유층 병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세밑에 충격적이었던 사건은 굶어죽어 장롱에 버려진 한 아이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이가 선천성 근위축증을 앓고 있었고, 아이의 부모가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이의 사인은 병사로 수정되는 분위기다. 의학적으로 근위축증은 먹는 데 쓰는 근육의 마비보다 호흡근육 마비가 먼저 온다. 즉 근위축증이라 하더라도 호흡마비로 죽기 전에는 돌봐줄 사람만 있다면 영양실조로 죽을 가능성은 없다는 이야기다.

    사건의 실체는 이렇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이 집에서 둘째와 셋째 아이 먹이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여덟 살 난 첫째 아이에게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자기 밑의 2세, 4세 아이의 보호를 책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손발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병든 아이가 굶어죽은 것이 이 사건의 실체다. 빈곤 가정이나 서민 가정에 중환자가 있으면 지극히 비인간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을 이 사건은 극명하게 보여준다.

    경제 살리기는 바로 이런 사람들에 대한 사회복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된다. 경제 살리기는 기업에 사회복지 분야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사회복지를 책임지는 것이어야 한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두 당이 합의 처리하는 민생법안들은 서민의 복지와 거리가 멀다. 사회복지는 사회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복지 제1 원칙이 이토록 공허해진 2005년 초, 나는 다시 한번 경제 살리기와 굶어죽은 한 아이를 생각한다.

    우 석 균ㅣ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



    칼럼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