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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ㅣ스크린의 감초 이문식

초라한 배역, 화려한 연기

초라한 배역, 화려한 연기

초라한 배역, 화려한 연기
나는 이문식이 불쌍하다. 배우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직업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문식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아마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너무 얻어맞는다. 어쩌다 뺨 한 대만 맞아도, 아무리 연기지만 억울한 마음에 잠 못 드는 배우들도 있다는데, 이문식은 무차별하게 주먹과 발로 얻어맞는다. 그것은 그가 상대적으로 권력에서 멀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배우의 잘생긴 외모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키도 작다. 영화 속에서 그는 상대 배우들이 만만하게 주먹을 날릴 만한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문식이 한국 영화에 필요하게 된 것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외모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해 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조연상이 발표되었을 때, 장내가 약간 술렁거렸다. 누가 받아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모두 쟁쟁한 후보들이었다. 그러나 ‘범죄의 재구성’의 이문식이 받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연기가 부족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시골 아저씨처럼 생긴 외모와 그가 맡은 배역의 초라함이 수상과는 거리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시상식에도 가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전혀 귀띔도 없었다. 이문식을 대신해서 상을 받은 최동훈 감독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궂은 조연 역으로 내공 쌓아 ‘마파도’서 드디어 주연

이문식이라는 이름이 우리들 감각의 포충망에 채집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아직도 대중에게 이문식이라는 이름보다는 흐린 날 잔뜩 찌푸린 하늘 같은 그의 얼굴이 더 낯익다. 그가 조연급으로 확실하게 발돋움한 것은 ‘달마야 놀자’에서 대봉 스님 역을 맡으면서부터. 그러나 그 전에 한국 영화에 이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 물고기’(1997년) 도입부에서 제대한 한석규에게 시비 걸던 양아치였고, 김성수 감독의 ‘비트’에서는 구청 직원이었다. 모두 관객들이 존재감을 느낄 만한 배역은 아니다.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오지게 쓰는 택시 강도 역으로 비로소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흔적을 남긴 그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녹음실 선배 역)와 오기환 감독의 ‘선물’을 거쳐 드디어 출세작 ‘달마야 놀자’를 찍는다. 이문식은 영화 포스터에도 얼굴을 내미는 배우가 되었다.

‘공공의 적’(2002년)은 배우 이문식의 굳히기 한판이었다. 강력반 강 형사에게 건방 떨다가 삼류 건달 상수는 무자비하게 얻어맞는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강 형사 역의 설경구라는 배우는 일단 ‘슛 들어가면’ 연기하지 않는다. 때리는 척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주먹과 발길질이 이문식의 온몸을 향해 수도 없이 날아갔다. 이문식의 한양대 연극영화과 선배지만 봐주는 게 없다. 첫 단추가 그렇게 풀려서 그런지 이문식은 이제 맞는 배역이 아무렇지도 않다. 맞으면 물론 아프다. 국선도를 배워서 촬영 중 기다리는 시간에 혼자 수양하기도 한다.

초라한 배역, 화려한 연기

마파도.

2003년 그는 무려 여섯 편의 영화를 찍는다. ‘역전에 산다’ ‘오 브라더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그리고 그가 황금촬영상 특별상을 받은 ‘어깨동무’,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범죄의 재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결정적으로 이문식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영화는 ‘황산벌’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거시기가 논에서 일하고 있던 어머니와 껴안는 라스트 신은 이문식의 인간적 캐릭터를 고스란히 살린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2005년 3월 개봉되는 ‘마파도’는 이문식의 첫 주연작이다. 그러나 상대 여배우는 여운계 사미자 등 60세가 넘은 할머니들이다. 그러나 영화를 찍기 위해 처음 만났을 때 다섯 명의 할머니들 중 이문식이 배우인 줄, 그것도 영화의 주인공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스태프로 알았다는 것이다. 촬영장을 지나가던 아줌마들은 “저 사람 개그맨이야. 생긴 거 봐”라고 수군거렸다.

‘마파도’에서 그가 맡은 역은 나충수 형사. 집에는 아픈 딸이 있고 마누라는 세탁소 남자와 눈 맞아서 도망갔다. 형사의 박봉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단속 나갈 때 업주에게 정보 주고 돈 받는 등 비리를 저지른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160억원 가지고 도망간 여자를 잡으면 30억원을 주겠다고 제의한다. 그래서 건달 이정진과 그 여자의 고향을 찾아간다. 그곳이 5명의 할머니들만 사는 마파도다. 일주일에 한 번 배가 오는데 낚시꾼으로 위장해서 할머니 일도 도와주고 또 얻어맞기도 한다. 처음으로 양아치 건달 도둑에서 형사로 신분 상승한 탓에 영화사 소개로 진짜 형사들과 잠복근무도 하고 범인 잡는 데 따라가기도 했다. 생각과 달리 고단한 직업이었다.

그의 고향은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전기가 들어올 정도로 깡촌인 전북 순창의 산골마을.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그를 키웠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전주에서 도시생활을 경험한다. 대학은 처음에 육사나 해양대 가려고 하다가 항공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11대 종손이 배를 탈 수는 없다는 집안의 반대 때문이었다. 항공대는 수학을 많이 해야 한다. 그는 1년 다니다 포기하고 재수를 해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간다.

그의 선배로는 85학번 유오성, 86학번 설경구가 있고 87학번 동기에 박광정, 윤종찬 감독이 있다. 후배로는 88학번의 정지우(‘해피엔드’) 김영준(‘비천무’) 이시명(‘로스트 메모리즈’) 이정철(‘가족’) 등 감독들이 많다. 3학년 마치고 군대를 갔는데 연극영화과 다닌 경력 때문에 고참들이 ‘노래해봐라’ ‘춤춰봐라’ 하고 시키는 통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의 대학로 시절은 은사인 최형인 교수와 함께 극단 ‘한양 레파토리’에서 시작된다. 군대 가기 전 공연한 브레히트의 ‘사천의 착한 여자’는 반응이 아주 좋았다. 프리 선언을 하고 ‘라이어’ 등의 연극에 장기 출연하면서 그는 조금씩 인지도를 넓혀간다. 하지만 영화는 어려웠다. 카메라 위치도 모르고 허겁지겁 행동하다가 이창동 배창호 등의 감독들한테서 야단도 많이 받았다.

첫 주연으로 ‘마파도’의 촬영을 모두 마친 지금, 그는 조연할 때 느끼지 못했던 부담감을 안고 있다. 작품성이나 흥행 모두에서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남다르다. 코미디물이지만 그냥 웃기자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전화 한 통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성공이다.

‘마파도’ 촬영 끝나고 두 달 정도 쉬고 있다. 이런 휴식은 2, 3년 만에 처음이다. 그런데 배우가 이렇게 쉬면 불안하다. 아직은 예전과 비슷한 코믹 캐릭터들만 들어오지만 주연을 맡은 뒤여서 다음 작품 고르는 데 신중해졌다.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은 역은 잔혹한 악역이다.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멜로도 좋다. 지금까지는 착한 캐릭터나 혹은 자신이 별로 안 좋아하는 깡패 양아치 등을 맡았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카페에서 여자들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가서 욕을 한 적도 있다. 또 데이트 비용은 반드시 남자가 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학교 다닐 때는 학생운동도 했고, 임수경 방북사건 때 법정소란죄로 감옥에도 가는 등 진보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내와 이야기하다 보면 스스로 보수적인 사고가 드러난다.

“남녀 관계에 대한 생각도 보수적이다.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다. 여자는 애인 아니면 남이다. 여자를 사귈 때 결혼을 전제로 했다. 처음에는 결혼할 꿈도 꾸지 못했다. 전주 이씨 11대 종손이고, 가진 거 없고, 외모 이렇고 어떤 여자가 30대 중반의 이런 남자에게 시집오겠나 싶어 나 혼자 하고 싶은 거 하며 살자 그랬는데 연극하면서 학교 후배를 만나 마음에 들어 사귀게 되었고, 지난해 3월 38세의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내 직업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서 거짓말을 못한다. 내 연기에 대해서는 혹독하게 비판한다.”

선하게 생겼다는 선입관은 이문식과 술을 마셔보기 이전의 일이다. 한때 그의 별명이 개문식이었다. 한양대 동문들이나 대학로 연극판 선후배들은 그의 술버릇을 알아준다. 연극은 아직 계획이 없다. 소속사가 있어서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재충전해서 2년 이내에 연극 한 편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나는 아직도 영화배우가 낯설다. 죽을 때까지 평생 배우를 해야 하는데…. 만족할 수 있는 작품 하나만 해도 좋다. 일반 대중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배우로 남는 게 목적이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영화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해서 책임의식을 갖고 만들어야 한다. 흥행 위주로 흘러가는 현재의 영화계 분위기에는 불만이다.”



주간동아 2004.12.30 466호 (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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