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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島 농지탈환운동 한 일본인 목숨 건 행보

1928년 농민조합 싹틔운 ‘아사히’ … 일본인 지주와 맞서 싸우다 9개월간 구금 후 추방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하의島 농지탈환운동 한 일본인 목숨 건 행보

하의島 농지탈환운동 한 일본인 목숨 건 행보

아사히가 직접 그리고 쓴 1928년 하의도 농지탈환운동. 당시 주민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 도쿠다가 보낸 '해결사'들과의 대치상황, 재판받는 장면(왼쪽부터).

“의인(義人) 아사히 선생의 은혜를 잊지 못합니다.”

‘연꽃 섬’이란 뜻의 전남 신안군 하의도 민초들의 ‘제 땅 되찾기 항쟁’은 1956년 마무리될 때까지 약 350년을 끌었다. 동아일보는 24년 1월31일 ‘기원은 홍가 세도, 선조대왕 때 홍가에게 주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이 보도로 하의도 주민들의 고단한 역사가 알려진 뒤 꼭 80년 만에 일제 강점기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에서 일본인이 지도자 노릇을 했음이 밝혀졌다.

일본 후쿠시마현에서 태어나 27년 하의농민조합 결성에 주도적 구실을 한 아사히 겐즈이(朝日見瑞, 1898~1988)가 그 주인공. 아사히는 일본 통일노동운동농민당 오사카 지부 대의원으로 참여하는 등 평생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 투신한 현장운동가다.

하의3도농지탈환운동기념사업회(회장 김학윤)는 최근 하의농민조합 결성 비화를 기록한 아사히의 수기와 유족을 찾는 데 성공해 감사의 뜻을 전달키 위해 유족들과 접촉하고 있다.

평생 노동·농민 운동 … 최근 수기와 유족 찾는 데 성공



그렇다면 아사히는 한국의 대표적 농민운동으로 기록되는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을까.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한국인을 도왔다고 알려진 다른 일본인보다 아사히 선생의 헌신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가끔씩 한국을 찾아와 도와준 게 아니라 연고가 전혀 없는 하의도 주민에게 스며들어 동고동락하면서 목숨을 걸고 싸웠다.”(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이규수 연구교수)

동아일보에 따르면 하의도 농지탈환운동은 약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해 대부분의 섬들은 임진왜란(1592~98) 이전까지 왜구 침략을 우려한 정부의 공도(空島) 정책 탓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 하의도에 농민들이 건너오기 시작한 때는 임진왜란 직후다. 왕실은 서해 연안 섬들에서 개간된 토지가 늘어나자 민초들이 일군 토지를 빼앗기 시작한다. 왕실이 국왕으로부터 땅을 하사받는 형식으로 소유권을 차지한 것. 1623년 인조는 선조의 딸로 풍산 홍씨가로 출가한 정명공주에게 농민들이 부치던 하의도 토지 24결(1결·300평)을 하사했다. 정명공주(홍씨가)에게 주민들의 땅이 넘어가면서 지루한 350년 농지탈환운동이 시작된다.

하의島 농지탈환운동 한 일본인 목숨 건 행보

하의3도농지탈환운동 기념사업회 김학윤 회장.12월17일 목포에서 열린 신안도서지역 농민운동사 학술대회(오른쪽).

18세기 경종 때 홍씨가는 하의도 땅이 더 개간돼 150결에 이르자 이를 모두 자신들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땅이라고 우기며 소작료를 받아가기 시작한다. 농민들은 한성부에 송사를 냈지만, 홍씨가의 세도 탓에 윤세민 등 농지탈환운동 지도자들이 오히려 귀양을 가게 된다.

1870년 하의도 주민들은 지루한 싸움에서 마침내 승리한 듯했다. 전라감사 이호준이 농민들의 하소연을 받아들여 애초에 인조로부터 하사받은 24결 외의 땅은 홍씨가가 주민들한테서 소작료를 거두지 말라고 판결한 것.

그러나 농민들의 승리는 잠시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 궁내부의 내장원경 이용익이 전국의 왕실 관련 토지를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내장원 소속으로 만드는 작업에 나선다. 이용익은 나라의 존폐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농민들의 땅을 빼앗아 왕실을 배 불렸다. 홍씨가의 24결을 포함한 하의도 땅이 왕실로 소유가 바뀐다.

그런데 이용익이 실각하고 친일파 이완용이 득세하자 다시 홍씨가가 술수를 부린다. 이완용에게 뇌물을 주고 하의도 땅이 모두 홍씨가 소유라는 증명서를 받아낸 것이다. 이에 주민들은 1909년 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하의도 땅은 주민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럼에도 땅은 농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홍씨가가 재판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땅을 당시 한일은행장 조병택과 백인기에게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이후 몇몇 브로커의 손을 거친 땅은 다수의 일본인을 거쳐 도쿠다 야시치(德田彌七)에게 넘어간다. 하의도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지주를 상대로 다시 싸움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하의도 농지는 해방 이후 56년에 이르러서야 농지 상환조치가 이뤄진다.

아사히는 도쿠다가 하의도 토지를 점유하던 시절인 27년 하의농민조합 결성에 주도적 구실을 했다. 일본인이 한국인을 위해 일본인 지주와 맞서 싸운 것이다. 오사카에 거주하던 하의도 출신 인사들에게서 도쿠다의 횡포를 전해들은 아사히는 연고라곤 전혀 없는 외딴 섬 하의도로 건너온다. 27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부르주아적 상식으로는 조선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암흑사회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살아서 돌아갈 보장도 없었다. 이런 곳까지 일본인이 우리를 돕기 위해 올 리가 없다는 불신의 눈을 이겨냈다. 후에 일본인들에게 저놈은 조선인인가 하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아사히가 72~73년 일본 사회타임스에 기고한 수기, ‘가에멘 어느 조선농민쟁의 기록’ 중에서)

하의도에 도착한 그는 한복을 입고 막걸리를 마시며 한국인들에게 동화된다. 하의도에 도착하자마자 시작한 농민조합 결성은 착착 이뤄졌다. 오사카에서 노동자로 생활하던 최용도 고장명은 아사히의 지원을 받아 28년 초 하의농민조합을 세웠다. 하의농민조합은 토지소유권 회수 운동을 잠시 미뤄두고 소작인의 권익 보호에 초점을 맞추어 저항에 나섰다. 거듭된 농지탈환운동의 실패로 좌절했던 농민들이 아사히의 지도 아래 다시 농민운동의 싹을 틔운 것이다.

“네놈은 조센징이냐” … 진정한 의인이며 하의도 은인



“첫 번째 요구는 토지 측량을 공평하게 다시 하라는 것이었다. 실제보다 토지를 크게 측량해 과도한 소작료 징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가공의 소작미가 할당되었기 때문에 해마다 소작료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아사히, 앞서의 수기에서)

그러나 도쿠다 측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도쿠다는 하의농민조합을 분쇄하기 위해 ‘해결사’로 박모씨가 이끄는 조직을 하의도에 파견한다. 박씨는 “너는 어떠한 놈인데 조선에 와서 순진한 농민을 선동하여 혼란을 일으키느냐”면서 흉기를 꺼내 아사히를 위협했다. 일본인 지주를 위해 일하는 한국인이 한국인을 위해 헌신하는 일본인을 윽박지른 것. 이에 박씨의 횡포를 기억하던 농민들과 박씨 조직이 충돌한다. 이후 일본인 지주 편에 선 일제 경찰의 대대적인 검거 작전이 벌어진다. 경찰의 포위망을 피해 목포에 숨어 있던 아사히는 28년 4월 경찰에 체포됐다. 그의 기억이다.

“목포를 연고로 섬과 연락하고 지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대여섯 차례 아지트를 옮기며 쟁의를 지도했다. 2개월 뒤 시장통의 아지트가 마지막이 되었다. 어디에서 비밀이 샜는지 모르겠지만 등사기로 삐라를 인쇄하던 중 모두 연행되고 만다.”

아사히는 이후 9개월 동안 미결 상태로 감옥에 구금돼 “네놈은 조센징이냐”는 말을 듣기까지 했다.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은 뒤 하의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 경찰은 그를 일본으로 추방한다. 부산행 기차에 올랐을 때 경찰 5~6명이 그를 에워쌌다. 하의도 주민들이 그를 ‘탈환’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 하의도 주민들의 아사히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산항으로 마중 나온 일본 경찰들은 “일본인이 조선인을 위해 설치고 돌아다녔다”며 꾸짖었으나 그는 당당하고 의연했다고 한다. 아사히의 수기를 발굴하고 유족을 찾아낸 김학윤 회장은 “아사히 선생은 진정한 의인이며 하의도의 은인”이라며 “가정과 직장을 버리면서까지 작은 섬 하의도에 묻혀 농민들의 등불이 되어준 그의 민족과 국가를 초월한 의협심과 정의감은 하의도 주민들의 마음에서 영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04.12.30 466호 (p66~67)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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