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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멸의 기록ㅣ월드컵 한 대회 최다골 프랑스 ‘퐁테느’

6경기 13골 사냥 신화를 쏘았다

1958년 스웨덴월드컵 종횡무진 맹활약 … 3, 4위 전에선 4골 몰아넣는 신기(神技)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6경기 13골 사냥 신화를 쏘았다

골은 축구의 전부다. 하지만 골도 골 나름이다. 조기축구와 국가대표팀의 골의 가치는 하늘과 땅 차이다. 또한 국가대표팀 경기, 즉 A매치의 골도 친선경기나 지역 대회와 월드컵에서의 골의 값어치는 천양지차(天壤之差)다. 지구촌 모든 축구선수들의 꿈은 월드컵 무대에서 골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총력전을 펴는 월드컵에서 골을 넣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아직까지도 아시아 최고의 골게터로 꼽히는 차범근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나가 3경기에 출전했지만 골 맛을 보지 못했고, 생애 통산 1200골을 터뜨린 펠레도 월드컵에서는 4개 대회에 연속 출전해 12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런데 겨우 한 대회에 출전해서 13골을 터뜨린 신이 내린 골게터가 있다. 바로 프랑스의 쥐스트 퐁테느다. 퐁테느는 제6회 스웨덴월드컵에 출전해 6경기를 하면서 13골을 넣는 그야말로 불멸의 골 퍼레이드를 펼쳤다.

17세 소년 펠레 처음 출전한 대회

제6회 월드컵은 58년 6월, 북유럽에 위치한 백야의 나라 스웨덴에서 벌어졌다. 51개국이 지역예선에 참가한 이 대회는 54년 스위스월드컵 우승국 서독과 개최국 스웨덴이 자동 출전했고, 나머지 14개국을 포함 16개국이 4개조로 나뉘어 예선리그를 벌였다. 스웨덴월드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 있는 대회로 기록된다.

우선 제5회 스위스월드컵에 이어 중립국에서 열렸고, 1회 대회 이후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졌던 아르헨티나가 1회 대회 득점왕 스타빌레(8골)를 사령탑으로 해서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56년 멜버른올림픽 축구 금메달 국가 옛 소련이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선을 보였고, 영국의 4개팀(잉글랜드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이 모두 출전했다. 그리고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란 긴 이름의 17세 소년이 출전했다. 그가 바로 후일 ‘펠레’라는 별명으로 세계 축구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축구 황제다.



그리고 월드컵 역사에서 최고 득점을 기록한 스타가 탄생했다. 프랑스의 퐁테느는 혼자 13골을 터뜨렸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불멸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벨기에와 아이슬란드의 유럽예선 4경기에서 이미 19골(3실점)을 터뜨린 프랑스는 예선 2조 파라과이와 치른 첫 경기에서 7대 3으로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퐁테느는 전반 24분 동점골, 전반 30분 2대 1로 달아나는 골, 그리고 후반 22분 팀의 6번째 골을 터뜨려 팀이 대승을 거두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프랑스는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유고슬라비아에 2대 3으로 패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도 퐁테느는 전반 4분 선취골과 1대 2로 뒤졌을 때 2대 2 동점골을 넣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후반 43분 유고의 비젤로 비치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패하고 말았다.

프랑스는 1승1패가 되어 스코틀랜드와 치를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패하면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퐁테느는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도 팀이 1대 0으로 앞서던 전반 45분 2대 0으로 달아나는 추가골을 터뜨려 팀이 유고를 2대 1로 물리치고 8강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

이후 한 대회 11골 넣은 선수 없어

2조에서는 프랑스와 유고가 8강에 올랐다. 공격과 수비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 프랑스는 북아일랜드와 치른 4강 진출전에서 4대 0으로 대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퐁테느는 후반 11분 추가골, 후반 19분 팀의 3번째 골 등 2골을 작렬시켰다.

이 대회 최대 하이라이트는 유럽 최강 프랑스와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준결승전이었다. 프랑스에는 당시 유럽 최고의 골잡이 퐁테느가 있었고, 브라질에는 떠오르는 축구 신성(新星) 펠레가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 결과는 브라질이 5대 2 대승을 거뒀다. 브라질의 핵심 선수 바바를 막던 프랑스 주장 종케가 부상해 퇴장당한 것이다. 당시에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10대 11로 싸워야 했다. 가린샤, 디디, 바바, 자갈로, 펠레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파상 공격을 프랑스 수비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경기에서 펠레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퐁테느는 전반 8분 0대 1로 뒤지고 있을 때 1대 1 동점골을 터뜨렸다.

한국 속담에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말이 있듯 브라질과 치른 경기에서 자존심을 상한 퐁테느는 서독과의 3, 4위전에서 가공할 득점력을 과시하면서 울분을 풀었다.

퐁테느는 전반 16분 선취골을 신호탄으로 무려 4골을 몰아넣었다. 첫 골을 터뜨린 지 20분 만인 36분 2번째 골을 넣었고, 후반 33분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이 대회 12번째 골을 터뜨렸다. 12골만 해도 한 대회 신기록에 해당하는 엄청난 골 퍼레이드였다. 퐁테느는 ‘불멸의 기록’을 세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후반 44분에 마무리 골을 터뜨린다. 이 경기에서 퐁테느는 ‘한 경기 4골’이라는 당시 신기록을 세웠고, 한 대회 13골을 집어넣는 신기(神技)를 보여주었다.

퐁테느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16팀만 월드컵 본선에 오를 수 있어 소속 팀이 결승전(또는 3, 4위전)까지 올라야 6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부터 24강, 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32강으로 늘어 최대 7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대량 득점을 올리기가 그만큼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퐁테느 이후로는 한 대회 11골 이상을 넣은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주간동아 465호 (p74~75)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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