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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불멸의 기록ㅣ쿠바 복싱 영웅 헤비급 ‘펠릭스 사본’

최강 주먹 “맞으면 죽을 것 같아…”

198cm 거구 2m 넘는 긴팔 가공할 펀치 … 92년부터 올림픽 3연패, 세계선수권도 6연패 위업

  •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최강 주먹 “맞으면 죽을 것 같아…”

세계 프로복싱 헤비급의 내로라하는 주먹들은 거의 모두 올림픽을 거쳤다. 무하마드 알리가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으로 1960년 로마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고, ‘불도저’ 조 프레이저는 64년 도쿄올림픽 헤비급, ‘원조 핵주먹’ 조지 포먼은 68년 멕시코올림픽 헤비급을 각각 석권했다. 또 96년 애틀랜타올림픽 헤비급 금메달리스트 리딕 보우 역시 짧게나마 프로복싱 챔피언으로 군림했으며, 2004년 2월 WBC 헤비급 타이틀을 반납하고 은퇴를 선언한 영국의 레녹스 루이스는 88년 서울올림픽 슈퍼헤비급 금메달리스트다.

마이크 타이슨과 한판 대결 무산



올림픽 복싱은 당대 최고의 주먹을 가리는 명실공히 주먹의 전시장이다.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타이틀은 아마추어 복서에겐 더없는 영예이며 프로복서가 되려는 선수에겐 엄청난 프리미엄이다.

그러면 역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최고 주먹은 누구일까? 쿠바의 펠릭스 사본을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올림픽 3연패에 빛나는 사본의 선배 데오필로 스티븐슨이 있지만 객관적인 전력으로 봐 사본이 한 수 위라고 보는 이들이 더 많다. 사본이나 스티븐슨 모두 공수에서 기본기가 완벽하고 가공할 만한 오른손 주먹을 갖고 있으며, 올림픽을 3연패했다. 세계복싱선수권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승부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스피드에서 사본이 스티븐슨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스티븐슨은 84년 LA올림픽에 출전했다면 올림픽 4연패도 가능했지만 쿠바가 LA올림픽을 보이콧하는 바람에 3연패에 그치고 말았다. 사본도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도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36살의 나이였지만, 국제복싱연맹의 나이 제한 규정에 걸려 출전할 수 없게 돼 올림픽 3연패에 그치고 말았다. 사본은 4연패에 도전할 수 없게 되자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다며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두 선수 모두 현역 시절 당대 최고의 프로복싱 챔피언과의 한판 승부를 제의받았다. 스티븐슨은 72년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결을 제의받았으나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가 적극적으로 반대해 성사되지 않았다. 만약 스티븐슨과 알리 간의 경기가 벌어졌다면 아웃복싱을 하는 알리와 강펀치를 휘두르며 파고드는 스티븐슨이 세기의 승부를 연출했을 것이다. 사본도 프로모터로부터 마이크 타이슨과 경기하는 대가로 1000만 달러를 제의받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 경기는 알리와 스티븐슨의 경기와 반대로 핵주먹 타이슨의 인파이팅과 원투 스트레이트 위주의 아웃복싱을 하는 사본의 재미있는 승부가 됐을 것이다. 아무튼 스티븐슨이나 사본 모두 쿠바가 아닌 자유진영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프로복서로 엄청난 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빠른 스피드 유연성 통산 358승 17패

사본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96년 애틀랜타올림픽 그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복싱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사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6연패를 했다. 사실상 7연패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99년 미국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동료 선수가 억울하게 판정패했다며 결승전을 보이콧했다. 그래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사본에게 중요한 경기였다. 99년 미국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승전을 보이콧하자 사본이 미국의 ‘죄수복서’ 마이클 베네트에게 겁을 먹고 기권한 것이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베네트가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베네트와 치른 경기는 사본으로서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사본과 베네트는 시드니올림픽 8강전에서 만났다. 1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베네트는 적극적인 공세를 펴 사본을 당황하게 했다. 그러나 사본과 맞서는 다른 선수들은 가공할 만한 펀치를 피하기에 급급했다. 심지어 어떤 선수는 “한 대 맞고 보니 또 맞으면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넘어졌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네트가 겁도 없이 덤벼든 것이다. 그러나 사본은 경기 시작 1분이 지나자 긴 리치를 이용해 포인트를 따기 시작했고 1라운드를 7대 2로 앞섰다.

2라운드에 들어서자 실점을 의식한 베네트가 저돌적인 공세를 취했고, 사본도 맞불작전을 펴서 난타전이 되었다. 2라운드에서도 사본이 10대 4로 승리해 17대 6으로 크게 리드했다. 그러나 베네트도 99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리스트답게 3라운드부터 큰 펀치를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3라운드 1분께 사본이 베네트의 큰 펀치를 허용해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베네트가 이 틈을 놓칠세라 강한 훅을 날리는 순간 사본의 원투 스트레이트가 전광석화처럼 베네트의 안면에 꽂혔고, 뒤이어 강력한 올려치기로 베네트의 턱이 들썩거렸다. 주심은 결국 사본의 RSC승을 선언한다. 공식 기록은 3라운드 1분57초 RSC승. 이후 사본은 4강과 결승전에서 거칠 것 없는 승부를 벌인 끝에 올림픽 3연패에 성공했다.

사본은 키가 198cm나 되는 거구에 리치는 2m가 넘는다. 그 긴 팔로 레프트 잽을 던지다가 가공할 만한 라이트 스트레이트를 내뻗는다. 그리고 돌고래처럼 솟구치는 어퍼컷이 위협적이며, 빠른 스피드와 유연성도 겸비했다. 생애 통산 358승17패를 기록했다. 패배는 거의 모두 무명 시절의 일이다.





주간동아 2004.11.25 461호 (p76~77)

기영노/ 스포츠평론가 younglo54@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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