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1

2004.11.25

당분간 … NSC 코드로 GO?

여권, 이종석 외교안보 시스템 신뢰 … 부시 진영 네오콘과 한·미 공조 논의 가장 큰 부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11-18 1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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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분간 … NSC 코드로 GO?

    NSC 이종석 사무차장과 한나라당 박진,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왼쪽부터).

    청와대 및 정부 외교안보팀이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열어 부시 대통령 재선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것은 11월4일. 부시 재선이 결정된 직후였다. 당시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는 빈약한 대미(對美) 네트워크에 부담을 느낄 때였고, 일부 여권 인사들 주변에서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을 비롯해 이건희 삼성,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기업인 중심의 공화당 인맥을 활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던 시점이었다.

    잔잔한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한·미 간 이해의 폭을 더 넓히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미국 측에 충분히 이해시키자는 요지였다. 이런 전제가 가능해야 앞으로 있을 남북 직접 접촉에 따른 한·미 간 갈등 요소 등을 없앨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 참여정부의 대북 프로젝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권 한 관계자는 “어차피 내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이나 대북 특사 파견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이벤트들이 추진되고, 또 성사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그때까지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한·미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차장 교체 요구

    미국과 북한 간 갈등이 증폭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중재하지 않으면 남북정상회담 등의 추진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NSC의 회의 내용은 당일 정치권으로 흘러들었다. 다음날인 5일,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느닷없이 NSC 역할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는 “최전방 철책선 절단사건, 동해 북한 잠수함 출현 의혹, 재외동포 보호 등 문제의 진원지는 항상 NSC였다”며 특히 “NSC에 있는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책임자 때문에 문제가 계속된다. 제멋대로 일을 처리하는 그 책임자를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를 전후해 NSC를 겨냥한 책임론이 비등했다. 책임론은 NSC 상임위원장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불확실한 역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후 집요하게 NSC의 인적 교체를 요청했다.

    부시 재선이 확정된 직후 마치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NSC 문제를 제기한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부시 재선이 확정된 직후 코드 인사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이종석 차장의 교체를 공개 주문한 데는 다각적인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한 인사는 “단순한 정치 공세가 아니라 부시 승리라는 호재를 통해 NSC의 기능과 역할을 한나라당 구미에 맞게 바꾸려는 사대주의적 발상이자 의도”라는 정치적 해석을 내렸다.

    이런 지적에 한나라당은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중용설이 나도는 콘돌리자 라이스 NSC 보좌관 등 미 행정부 내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그동안 이차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온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이차장 교체 요구는 이런 명분 외에도 지난 2년간 참여정부가 쌓아놓은 외교 라인의 핵심을 와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노대통령이 스스로 대북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라는 요구로 해석될 소지도 충분하다.

    이런 한나라당 요구에 청와대와 우리당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특히 이차장 경질과 관련해서 여권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일축했다. 여권 인사들은 “NSC가 설정한 틀과 방향에는 오류가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여권 한 인사는 “중요한 것은 대북 정책의 흐름과 방향인데 지난 2년간 숱한 토론을 거쳐 틀이 형성됐다”면서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과도한 인적 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내심 부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네오콘을 중심으로 재집권에 성공한 부시 사단은 힘을 바탕으로 한반도 정책을 경색 국면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많다. 특히 외신을 통해 확인된 이차장에 대한 네오콘의 반응은 매우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차장을 마냥 끌어안기에 부담이 없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네오콘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미국기업연구원(AEI) 에버스타트 연구원이 국내 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부시 낙선을 바란 청와대와 NSC 인사를 안다”고 말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네오콘의 인식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때문에 대미 라인의 물갈이는 아니더라도 시스템적 보완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권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런 흐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듯하다. 미국을 방문 중이던 노대통령은 11월12일(한국 시간 13일 오전) 로스앤젤레스(LA) 국제문제협의회(WAC) 오찬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과 네오콘을 겨냥한 듯한 단호한 발언을 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은 일리 있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盧대통령 LA 발언 아슬아슬

    물론 미국의 대북 정책에 한국 정부의 목소리가 분명히 반영되기를 희망하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들, 네오콘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다. 미국의 대북 무력행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하게 천명, 집권 2기를 맞은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의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는 것.

    이와 관련 여권 일각에서는 앞서 미국을 방문한 이차장의 역할 부재가 노대통령의 발언을 몰고 온 배경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차장이 미국행 비행기 트랩을 오른 것은 11월9일. 이차장의 이번 방미를 통해 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릴 노대통령과 부시의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북핵 문제, 특히 6자회담 조기 개최에 대한 양국간 의견 조율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차장의 방미에 대한 미 외교가의 반응은 생각보다 뜨겁지 않았다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이 때문에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 미국의 강경 정책에 제동을 거는 정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 노대통령의 발언은 이차장이 한미정상회담 의제를 협의하고 돌아온 하루 뒤 터져나왔다는 점도 이런 의혹을 부채질한다. 이와 관련 NSC 이지현 공보관은 15일 전화통화에서 “노대통령의 연설 원고는 NSC를 비롯, 관계기관이 사전에 토의를 거쳐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 논리에 따라 엉겁결에 나온 미봉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외교 라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가운데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 한승주 주미대사 등 고위당국자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데 인색한 사람은 드물다. 그렇지만 그들이 확고한 대표성과 주체적인 상황 파악 및 분석 능력과 환경을 보장받았느냐는 별개의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이 역시 NSC와 이차장의 역할이 이들과 오버랩되는 현상을 지적하는 말로 해석된다. 참여정부의 외교문제에 비판적인 한 재미 기업가는 “미국 측 고위인사들은 ‘한국 정부 인사들 가운데 누구와 대화를 해야 책임을 질 수 있느냐’는 얘기를 곧잘 묻는다”고 말했다. NSC가 옥상옥의 기능이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오해가 빚은 폐단은 정동영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방미하는 등 외교적 활동 반경을 넓히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 평가를 유도한다.

    그러나 여권 내부는 NSC를 중심으로 한 외교시스템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차장에 대한 노대통령의 신뢰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관계가 어느 때보다 돈독하다는 속내도 숨기지 않는다. NSC 한 관계자는 “지난 2년간 한·미 양국은 팔 길이와 식성 등을 모두 확인해 더 이상의 갈등과 마찰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또 다르다. 노대통령의 LA 방문을 수행하고 있는 한 수행기자는 “아슬아슬하다”는 표현으로 기명칼럼을 썼다. 부시의 대선 승리와 노대통령의 LA 발언으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외교 라인과 시스템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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