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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원격조종(?)한 장성급 회담서 밑지는 장사 … 절대 유리했던 선전활동 성급한 중단 결정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북한군 병사들이 볼 수 있는 언덕에 가로 세로 10m의 크기로 새겨놓은 ‘자유대한’글귀를 해병대 병사들이 부수고 있다. 심리전단 요원들은 “자유대한 글귀를 부술때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말한다.

지난 6월12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실무대표회담에서 ‘선전활동을 중지하고 선전수단을 제거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대북 심리전을 담당해온 국군 심리전부대 요원들이 상당히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이 반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이번 합의로 우리의 대북 심리전 요소가 상당 부분 봉쇄당했으나 북측의 대남 심리전 요소는 생생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정보 네트워크가 발전하지 않은 사회다. 신문과 방송은 노동당이 장악하고 있고 통신 자유는 제약돼 있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입소문’이 중요한 정보 통로가 되고 있다. 사람을 통해야만 외부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휴전선에 배치된 인민군 병사들은 우리 측의 중요한 심리전 대상이 되어왔다.

현재 휴전선에 설치돼 있는 북측 확성기는 107개. 그러나 고장이나 전기 부족 등으로 47개만 하루 4시간씩 ‘겨우’ 방송해왔다. 반면 우리 측은 월등한 성량의 확성기를 이용해 하루 쫛쫛시간씩 방송을 ‘퍼부어’왔다. 우리 방송에서는 낭랑한 목소리의 여성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고 가요나 댄스곡·뉴스 등을 감칠맛나게 전달해왔는데, 이는 20살 안팎의 인민군 병사들에게 ‘대단한 유혹’이었다.

심리전 요원 수백여명 어떻게 활용하나

실제로 몇 년 전 휴전선으로 귀순한 북한 병사 K씨는 우리 측 여성 아나운서의 이름(방송용 가명)을 대며 만나보고 싶어한 적이 있었다. 2002년 월드컵 중계방송도 우리의 심리전이 ‘팍팍’ 꽂힌 대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당시 심리전단은 확성기로 한국팀의 경기를 중계했는데, 한국팀이 골을 넣는 순간 북측 GP에서 함성이 터져나오는 것이 여러 군데서 수집됐기 때문이다.



휴전선의 인민군 병사들은 7~8년을 한곳에서 근무하므로 자연스럽게 우리 가요를 배우게 되고, 제대 후에는 이를 북한 전역으로 퍼뜨리는 구실을 해왔다. 조선족 보따리 장사꾼이 전달한 한국 가요 테이프가 북한에서 인기를 끌게 된 데는 휴전선에서 한국 가요를 익힌 ‘잠재적 한국 가요 마니아’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밤 15km 밖에서도 글자가 보이는 대형 전광판도 중요한 심리전 도구였다. 심리전단은 이 전광판을 통해 4월19일 김정일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한 것과 22일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난 것을 보도했다. 그 직후 우리 측 정보망은 최전방의 인민군 부대가 당황해하며 후방의 사령부로 “남조선 전광판에 지도자 동지께서 중국에 가셨다는 내용이 떴는데 사실입니까”라고 묻는 것이 포착됐다.

반면 북측이 휴전선에서 펼쳐온 대남 심리전은 10여년 전부터 맥을 못 추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부터 북한은 인터넷을 통해 대남 심리전에 주력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계기는 2003년 1월 북한의 민족민주전선(민민전) 방송이 ‘인터넷은 국가보안법이 무력화된 특별공간이며 항일 유격대가 다루던 총과 같은 무기’라고 방송하면서부터. 이후 북한은 조선인포뱅크나 한국민족민주전선 등의 사이트를 통해 한국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주한미군 철수 등을 강력히 거론했다.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금강산에서 상견례 성격의 1차 남북장성급회담이 열린 다음날(5월27일) 송영근 기무사령관은 공군회관에서 열린 국방정보 보호 컨퍼런스에 참석해 북한의 이러한 노력을 언급한 후 “북한은 5년제인 김일성군사대학과 1998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신설한 컴퓨터과학대학을 통해 컴퓨터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북한군은 이곳 출신자를 중심으로 인민무력부 정찰국에 해커 부대를 운영하고 있다”는 내용의 개회사를 읽어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발언 직후 송사령관은 NSC (국가안전보장회의)로부터 “장성급회담을 방해할 수 있는 언사다”라는 지적을 받고 NSC를 찾아가 “그런 의도로 발언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곤욕을 치렀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심리전단은 물론이고 기무사도 북한이 우리의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무차별적인 심리전을 펼치려는 의도를 간파했기 때문에 사령관이 나서서 대비책을 세우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의식한 NSC는 이를 눌러버렸고 6월12일 군사실무회담에서 또 한 번 판단착오를 범했다”라고 지적했다.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5월26일 금강산초대소에서 열린 제1차 남북 장성급 회담. 우리 쪽에서 이 회담을 통제한 것은 NSC였다

남북 군사회담과 관련해 국방부 쪽의 가장 큰 불만은 ‘이름만 군사회담이지 실제로는 NSC가 원격조종하는 회담’이라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이 회담에서 국방장관이 한 일이 무엇인가. 군사회담이라면 국방장관이 군사적인 관점에서 의제를 결정해주고 훈령을 내려줘야 하는데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방부 장관이 이 회담을 통제했다면 심리전 중단 같은 어리석은 합의는 도출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우리의 심리전이 아무런 대안도 없이 즉흥적으로 중단됐다는 두 번째 불만 요소로 발전하고 있다.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군비축소 차원에서 심리전을 중단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심리전을 중단했을 때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한다. 수백여명에 이르는 심리전 요원을 어느 분야로 전환할지에 대한 연구도 선행됐어야 한다. 그러나 국방연구원 등 그 어느 연구기관에서도 심리전을 중단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해 연구한 적이 없다. 이는 국방부가 군비축소 차원에서라도 심리전 중단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는데, 비군사전문가 집단인 NSC는 성급하게 심리전을 궤멸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남북 방송 개방’ 카드 제시했더라면 …

남북 군사회담과 관련해 우리는 북한이 어떤 의제를 갖고 나올지 몰랐을 뿐만 아니라 누가 수석대표로 나오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회담 성격상 인민무력부에서는 정책 담당자가 수석대표로 나올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도 국방부 정책국장인 김국헌 육군 소장을 수석대표로 내정해놓았다. 그러나 북측에서 낮은 계급자를 내세울 가능성이 있어 해군 준장인 박정화 합참 작전차장도 함께 준비시켰다. 북한이 정책국장인 안익산 소장(우리의 준장에 해당)을 수석대표로 내보낸다고 통보한 것은 회담 전날이었는데 그때서야 우리도 박정화 준장을 수석대표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회담에서 북측은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만세’처럼 바위에 새겼거나 입간판으로 세워둔 지도자 찬양 문구는 제거할 수 없다고 우기다가 마지막 날 포기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우리가 가진 모든 심리전 요소를 제거케 하는 데도 성공했다. 북측이 김정일 찬양 문구까지도 제거하겠다고 한 것은 우리의 심리전이 위협적이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NSC는 우리 심리전의 가치를 간과했다”라고 말했다.

NSC, 북한 심리전에 당했나

6월17일 확성기를 제거하는 해병대 2사단 요원들.

이 관계자는 “북측이 휴전선에서의 심리전 중단을 주장했을 때 우리가 내밀었어야 할 카드는 남북 방송 개방이었다”라고 말했다.

우리 라디오는 중파로 TV는 NTSC 방식으로 송출되고, 북한 라디오는 단파로 TV는 PAL 방식으로 방송된다. 각각의 전파를 잡을 수 있는 수신기가 없으면 남북은 상대 방송을 잡지 못한다. 관계자는 이러한 장벽 때문에 오히려 방송 개방은 쉽게 합의될 수 있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중파와 NTSC용 수신기를 생산하지 않을 것이므로 방송 개방을 하더라도 우리 측 방송을 접하는 북한 주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우리는 ‘통일전망대’ 등을 통해 북한 방송을 봐왔으므로 방송을 개방해도 북한으로 경도되는 국민이 적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어, 남북 방송 개방은 타협될 수 있다. 방송 개방이 합의된다면 이후 우리는 공동생산 등의 방법으로 북한에서 중파 라디오와 NTSC TV 수신기를 생산케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남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여지를 넓혀나간다. 방송 개방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아는 북한 주민이 늘어날 때 한반도 평화 통일 가능성은 높아지는 것 아니겠는가.”

관계자들은 NSC가 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의식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다 협상을 잘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간동아 441호 (p32~3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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