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1

2004.07.01

‘뚱보가 몸짱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한국인 과학자들 비만 퇴치 신물질 개발 선두…하루 한 알로 식욕 억제 체지방 감소 현실 눈앞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입력2004-06-24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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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보가 몸짱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세계 최초로 비만억제 메커니즘을 밝혀낸 울산대 의대 이기업 교수(오른쪽)와 연구에 동참한 김민선 교수.

    서기 2010년, K씨는 운동을 유난히 싫어하는 스무 살의 청년이다. 170cm 아담한 키로 햄버거, 피자 같은 정크푸드(Junk Food)와 탄산음료를 워낙 즐기는 탓에 몸무게가 120kg까지 늘어난 비만족. 의학적으로 초고도 비만환자인 K씨에게 의사는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을 하라”는 식의 구시대적 ‘잔소리’ 대신 꿈의 비만치료제 V를 처방한다.

    하루에 한 알 먹는 V로 K씨의 몸무게가 매달 10kg씩 줄었고, 6개월 뒤에는 60kg으로 변해 있었다. K씨는 V를 먹는 동안 단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았고 식습관도 바꾸지 않았다. 식욕이 떨어지면서 먹는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든 증상 외에 다른 부작용은 없었다. 놀랍게도 K씨의 몸에서 빠져나간 살의 대부분은 운동으로만 제거된다는 지방 덩어리들. 심한 감량에도 K씨의 몸은 오히려 탱탱해졌다. 비만치료제 V에는 근육강화 효과까지 있었기 때문. 초고도 비만의 공포와 함께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고지혈증과 당뇨, 고혈압 등 대사관련 질환도 함께 날려보냈다.

    만약 공상 속의 비만치료제 V처럼 식욕을 떨어뜨리면서 살을 빼주는, 먹는 것만으로 실제 운동을 한 효과를 가져오는 약물이 존재한다면? 만약 그런 약물이 나온다면 출시 1년 이내에 연간 500조원에 이르는 세계 비만시장(치료제 시장은 4조원)을 독점하고, 사기성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다이어트 식품들을 비만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쫓아낼 것이다. 또 치료제 개발자는 21세기에 등장한 인류의 가장 강력한 적이자 위험한 질병인 ‘비만’을 퇴치한 주인공으로서 노벨상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전 세계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2배에 이르는 비만 시장을 잡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런 까닭.

    공상 속의 ‘비만치료제 V’ 눈앞의 현실로 임박

    하지만 이런 약물은 더 이상 ‘공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가 아니다. 실제 식욕을 줄이면서 동시에 체지방도 제거하는 신물질이 선진 과학자 집단, 그것도 한국인 과학자들에 의해 발견되면서 치료제 개발 단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베일을 벗고 있는 국내 학계와 바이오벤처들의 비만치료 신물질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는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대표주자가 서울아산병원(울산대 의대) 내분비 내과 이기업 교수(59). 이교수는 체내 분비물질인 알파리포산(Alpha-lipoic acid)이 식욕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체내 에너지 소모를 늘린다(지방 제거)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내고, 이미 지난 3월부터 신약 개발을 위한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이교수가 발견한 알파리포산은 이미 당뇨병 치료제로 널리 쓰여왔던 성분으로 사람에게 해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에 2~3년 안에 약품 개발이 완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교수가 발견한 알파리포산의 비만치료 효과는 지방흡수 차단제와 식욕 억제제 등 기존 비만치료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새로운 발견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2000년 다국적 제약사들에 의해 출시된 후 전 세계적으로 한 해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기존 치료제들은 출시 당시 ‘꿈의 신약’ ‘인류 최고의 해피드러그(HAPPY DRUG)’라고 불리며 치켜세워졌으나 해가 갈수록 매출의 거품이 걷히고 있는 상태다.

    ‘뚱보가 몸짱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꿈의 비만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살을 빼는 데 운동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반면 알파리포산의 경우 식욕억제와 지방 소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면서도 기존 치료제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모두 극복했다. 특히 기존 지방흡수 차단제는 지방이 몸속에 흡수되기도 전에 장으로 바로 내려보냄으로써 설사 급변 지용성 비타민의 유출이라는 부작용이 있는 반면, 알파리포산은 소모 에너지를 늘리는 방식으로 지방을 태우기 때문에 ‘자주, 그리고 갑자기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부작용이 없다. 또 포만감을 증대시켜 식욕을 억제하는 기존 식욕억제제의 경우 두통, 변비, 식욕 자체의 감소와 같은 부작용이 있는 데다 사람마다 느끼는 포만감이 다 달라 효능이 들쭉날쭉한 단점이 있었다. 4조원에 이르는 국내 비만시장에서 이 두 치료제의 매출이 모두 합해 500억원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까닭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비만 전문의들은 이들 치료제를 운동과 식이조절 요법과 함께 쓰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알파리포산은 이미 당뇨 치료제로서 부작용이 없음을 검증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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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식품개발연구원 김성란 박사

    그렇다면 이교수는 알파리포산의 비만치료 효능을 어떻게 발견했을까. 또 베일에 가려진 알파리포산은 도대체 어떤 물질일까.

    “쥐에게 당뇨 약을 먹였더니 살이 빠지면서 잘 먹지 못하더군요. 처음엔 약이 독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쥐는 건강했습니다. 쥐는 냄새가 나면 잘 먹지 않는다는 걸 떠올리고 물에 타서 줘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1999년 이교수가 알파리포산의 비만억제 효과에 처음 주목한 계기는 다분히 ‘우연’이었다. 원래 쥐를 대상으로 당뇨병을 예방할 수 있는 치료제 후보 10여 가지를 테스트하는 도중에 알파리포산이 쥐의 식욕을 억제하고 체중을 줄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 알파리포산은 체내에서 소량 생산되는 물질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당뇨 합병증 치료제(약)다. 이교수는 “우연한 발견이 큰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 터였다”며 “알파리포산의 비만억제 효과를 발견한 당시에도 뭔가 큰 게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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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란 박사가 발견한 생약물질 'MB550'

    알파리포산 임상실험 2~3년 내 약품 개발

    이교수를 비롯한 8명의 연구팀은 그때부터 알파리포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하며 5년간 일에 매달렸다. 피땀을 흘리며 고생한 결과, 연구성과는 국제적으로 차츰 우수성과 중요성을 인정받았고, 올 7월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기초의학 전문지인 ‘네이처 메디신’에 게재할 수 있었다. ‘토종’ 논문이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 세계적 메이저 전문지에 실린 것. 이교수의 임상실험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교수는 “알파리포산의 비만억제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데 같은 병원 동료인 김민선 교수와의 콤비 플레이가 중요했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식욕 조절 중추가 있는 뇌 시상(視床)하부에 대한 전문가. 연구팀은 김교수가 연구에 가세한 후 알파리포산의 식욕억제 효과가 뇌 시상하부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물질인 ‘AMPK’와 관련 있다는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

    AMPK는 몸의 세포 내 에너지가 부족할 때 작동해 에너지를 보충하는 구실을 하는 일종의 ‘센서’. 실제 실험용 쥐에 알파리포산을 투여하자 뇌 시상하부에서 AMPK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교수는 “알파리포산이 AMPK 분비량을 줄이면 몸은 에너지를 보충할 필요가 없는, 즉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로 이해해 먹는 것을 거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바로 식욕억제 효과가 나타나는 원리다.

    더불어 연구팀은 쥐에 대한 동물실험을 통해 알파리포산이 에너지 소비를 촉진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쥐와 같은 동물에는 사람과 달리 갈색지방이 존재하는데, 갈색지방에는 체내의 과도한 에너지를 열로 발산시키는 단백질(UCP-1)이 들어 있다. 흥미롭게도 연구팀이 실험용 쥐에게 알파리포산을 투여하자 갈색지방뿐 아니라 백색지방에서도 이 단백질의 활동이 늘어났던 것. 이교수는 “이는 백색지방만 가지고 있는(대부분의 경우) 사람에게 중요한 결과로 알파리포산이 사람의 에너지 소비를 촉진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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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내지방 제거물질을 화학적으로 창조해낸 크리스탈지노믹스(주) 노성구 박사

    쥐에 대한 전체적인 비만치료 실험결과는 실로 놀라웠다. 보통 쥐가 성장해서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갈 때가 500g인 반면, 원래 뚱뚱한 종자의 쥐는 800g까지 늘어난다. 연구팀은 이런 비만 쥐를 대상으로 알파리포산의 비만억제 효과를 실험했다. 비만 쥐의 몸무게가 450g에 도달했을 때 한 마리에게는 먹이 가운데 0.5%를 약(알파리포산)으로 주고 다른 한 마리에게는 주지 않았다. 7개월 후 약을 먹은 쥐는 체중이 50g만 늘어 거의 보통 쥐와 같았고, 먹지 않은 쥐는 800g으로 뚱뚱해졌다. 이교수는 “쥐의 경우 알파리포산이 비만 억제뿐 아니라 예방 효과도 커 비만을 완전히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며 자신했다.

    ‘뚱보가 몸짱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기존 비만치료제보다 지방흡수 억제 효과가 뛰어난 물질을 복분자에서 추출한 RNL생명과학㈜ 연구진

    현재 알파리포산은 특별한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판명돼 지난해 6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를 받은 뒤 3월부터 비만환자 40명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에 들어갔다. 이교수는 “두 달 사이에 이들 가운데 한 명은 10kg, 10명은 5kg 내외의 몸무게가 빠졌다”고 밝혔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용량에서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임상실험이 완전히 끝나봐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교수는 “빠르면 2년 뒤 알파리포산이 새로운 비만치료제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알파리포산에 나노(nano)기법을 이용해 소량으로도 효과가 높은 나노 비만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비만조절 신물질 MB550 쥐 실험서 탁월한 효과

    이교수가 인체 에너지대사 조절 센서인 AMPK 효소의 활동을 알파리포산으로 감소시켜 식욕을 억제시킨 반면, 한국식품개발연구원 김성란 박사팀은 오히려 AMPK 효소의 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지방을 태워 없애는 천연물질을 발견해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박사는 지난 5월 말 “2년간의 연구결과 체지방 감소와 혈당강하 효과가 탁월한 비만 조절물질 MB550을 생약소재에서 발굴했다”며 “MB550은 안전성이 확보된 생약 추출물인 까닭에 2년 내에 세계 비만시장을 뒤흔들 신약을 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김박사팀이 발견한 신물질 MB550이 체내에 들어가 지방을 태워 없애는 기전은 이기업 교수팀의 식욕억제 원리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MB550이 체내에 들어가면 AMPK 효소는 활동이 촉진되는데, 이때 신체는 이를 에너지 고갈상태로 인식하고 지방의 형태로 저장된 에너지를 소비함으로써 비만을 조절한다는 것. 김박사는 “AMPK 효소의 활동이 촉진되면 신체는 자신이 사용할 에너지가 극도로 부족하다고 판단, 저장된 지방을 연소해 새로운 에너지를 생산하고 AMPK 효소의 활동이 위축되면 반대로 사용할 에너지가 많이 남았다고 생각해 지방의 축적, 즉 에너지 저장을 회피한다”며 “에너지를 연소해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과정이 몸에서 지방이 빠져나가는 과정이고, 지방의 축적을 회피해 에너지 저장을 회피하는 과정이 식욕억제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후자가 바로 이기업 교수팀이 발견한 알파리포산이 식욕을 억제하는 과정인 것.

    ‘뚱보가 몸짱으로’…  꿈★은 이루어진다

    신물질로 만든 다이어트 쌀

    어쨌든 김박사팀이 발견한 비만조절 신물질 MB550은 비만 쥐에 대한 실험결과 평균 39%의 체중감량 효과를 보였으며 특히 복부지방이 50.9% 집중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검사 결과 지방세포의 크기 자체도 60%까지 줄어들었다. 그외에도 MB550은 지방간 개선, 혈액 중 중성지방과 혈당 감소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김박사는 “기존의 비만치료제가 식이조절과 지방흡수 억제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MB550은 운동을 하지 않고서도 운동한 것과 똑같이 체내 지방의 연소를 유도한다는 게 특징”이라며 “지방 분해만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근육구조의 변화를 통해 근력 및 지구력을 강화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박사는 2건의 특허 출원을 완료했다.

    비만제거 물질을 자연에서 찾은 김박사와 달리, 바이오벤처 크리스탈지노믹스㈜의 노성구 박사(44)는 지방대사를 활발하게 하는 촉매물질을 화학적으로 창조해냈다. ‘CG300795’라고 명명된 이 물질은 지방대사를 관장하는 ‘PPARa’ 단백질의 활동을 촉진해 지방을 산화하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노박사는 “지방대사를 관장하는 단백질의 3차원적 구조를 포항의 방사광가속기로 규명한 뒤 그것과 연결돼 지방을 가장 빠르고, 많이 연소할 수 있는 화학적 신물질을 설계해냈다”며 “이는 마치 자물쇠에 맞는 열쇠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박사가 발견한 촉매물질은 비만 쥐를 이용한 동물실험 결과, 탁월한 비만연소 효과를 보였다. 4주의 기간 동안 복부와 피하지방 등 체내지방이 45% 넘게 줄어든 것. 노박사는 “촉매물질은 비만 치료뿐만 아니라 혈중 중성지방 농도의 감소(-33.5%), 인체에 이로운 콜레스테롤인 고밀도지단백질(HDL)의 증가(39.5%), 당부하의 감소(당 부하율 -58.5%) 등 추가적인 효능까지 발견돼 임상실험을 제대로 마칠 경우 수조원대의 시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복분자에서 추출한 BHP9 지방흡수 억제 뛰어나

    한편 바이오벤처 RNL생명과학㈜(대표 라정찬)는 세계적 다국적 제약사가 출시한 지방흡수 억제제보다 지방흡수 억제 효과가 더 뛰어난 천연물질을 복분자에서 추출하는 데 성공, 지난 5월 미국의 건강식품회사에 이미 1000만 달러어치를 납품했다. RNL생명과학의 연구진들과 서울대 공중보건학교실 강경선 교수팀은 “복분자에서 분리한 ‘BHP9’이라는 물질이 몸속에 지방이 흡수되는 과정을 방해하는 정도가 기존의 지방흡수 억제제보다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BHP9은 지방뿐만이 아니라 탄수화물이 몸에 흡수, 지방으로 저장되는 것을 막는 효과가 탁월해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에겐 비만을 막는 효과에서 기존 전문의약품보다 특히 더 유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물질의 개발에 참가한 박형근 연구원은 “특허 출원을 이미 완료하고 BHP9에다 RNL이 독자 개발한 천연성장호르문 분비 촉진물질을 더한 다이어트 식품이 곧 출시될 것”이라며 “신약 개발까지는 많은 시간과 자금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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