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55

2016.09.14

북한

대북제재 비웃는 北·中의 우애

은행 폐쇄해도 중국인 통해 환전 후 달러 현금 북송…北 홍수 피해에 중국군이 구조 나서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 sjkim@ytn.co.kr

    입력2016-09-09 17: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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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반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배치로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긴장이 갈수록 팽팽해지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제재를 무색게 하는 북·중 우호 분위기가 접경지역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9월 1일 외교부는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압박이 일정한 효과를 내고 있다”며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대표적 사례가 중국의 자국 내 북한 은행 지점 폐쇄 조치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5월쯤 북한과 중국이 합작해 세운 은행이 영업 승인까지 받았지만, 제대로 영업하지 못하고 폐쇄됐다. 현재 중국에서 정식으로 운영되는 북한 은행은 없다”고 말했다.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270호에는 유엔 회원국들이 자국 내 북한 은행 지점을 90일 이내에 폐쇄하고 신규 지점 개설을 금지하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 조치는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이 벌어들인 달러가 북한으로 들어가는 데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 폐쇄하니 달러 현금으로 평양행

    5월 말 중국인 대북사업가 A씨는 기자에게 “중국에 나와 있는 북한 사람들의 통장 개설이 막혔다”는 사실을 알려왔다. A씨는 당시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에 새로 들어온 북한 근로자들의 통장을 만들려고 주거래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담당 은행직원은 “통장 개설이 불가능하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3월 중국 당국이 북한 기업들을 신용불량 회사로 등재했고, 4월 10일부터 각 은행에 통지했다. 이로 인해 단체로 중국에 온 북한 근로자들의 통장 개설이 4월 10일자로 금지됐다. 개인의 통장 개설은 금지된 지 이미 2년이나 됐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노력에 중국 정부도 동참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통장 개설을 금지하고 은행 지점을 폐쇄해도 북한으로의 달러 송금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지금도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다. 먼저 북한 근로자들은 중국 기업인을 은행으로 여기고 월급을 맡겨놓은 뒤 필요할 때마다 돈을 받는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신뢰관계가 형성됐기 때문에 중국 기업인이 북한 근로자의 돈을 떼먹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믿는 것이다.

    일각에선 해외에 취업한 북한 근로자가 받는 월급의 90%를 북한 당국이 빼앗는다고 주장하지만 중국인 대북사업가들의 말은 다르다. 북한 근로자의 월급은 30%가 북한 정부로, 40%가 북한의 소속 회사로 가고, 나머지 30% 정도가 본인 몫이라는 것. 즉 근로자 몫 30%를 제외한 70%만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얘기다.

    각 근로자의 월급에서 70%씩 뗀 돈은 달러로 환전해 서너 달에 한 번 평양으로 운반된다. 1만 달러라고 해봐야 100달러짜리 지폐 100장이라 위안화에 비해 부피가 작고, 평양으로 운반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평양으로 달러를 운반하는 일은 보통 북한 관리인 4~5명이 함께 맡는다. A씨는 “이들이 중국 세관을 통관할 때는 중국의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않는다”며 “소지한 달러가 얼마나 되는지, 왜 가져가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북한 관리인이 이처럼 손쉽게 달러를 들고 평양으로 향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중국인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근로자가 월급으로 받은 위안화를 달러로 환전하고 보관해주는 것도 모두 중국인이다. A씨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어느 날 북한 관리인이 평소와 달리 나긋나긋한 태도로 A씨에게 접근해왔다. 선물까지 준비해온 그는 위안화를 내밀면서 “달러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일하면서 몰래 숨겨둔 위안화를 달러로 바꿔달라는 것. 이후 이러한 부탁을 주기적으로 해왔다. 북한 근로자의 월급을 관리하는 관리인은 종종 돈을 빼돌린다. 회사나 정부에 바치지 않고 개인이 챙기는 것인데, 이를 직접 달러로 환전할 수 없으니 중국인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물론 중국인은 대부분 아첨과 선물을 대가로 이 부탁을 들어준다.



    中 군부대의 헌신적인 조난자 구조

    북한과 중국의 끈끈한 형제애는 자연재해 구조에서도 꽃을 피웠다. 10호 태풍 ‘라이언록’의 영향으로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집중호우가 쏟아져 북한은 큰 피해를 입었다. 9월 6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함경북도를 휩쓴 홍수로 60명이 숨지고 25명이 행방불명됐다’고 보도했다. 9월 1일 기자에게도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 지린성 투먼(圖們)시와 마주하고 있는 북한 남양시 일대 폭우 상황이 전해졌다. 두만강 상류 5km 지점인 카이산툰(開山屯) 지역에서 범람이 시작돼 남양시 전체가 물에 잠기면서 주민 1만5000여 명이 대피했다는 소식이었다. 두만강 지역의 경우 중국보다 북한 쪽 피해가 더 큰 이유는 중국 쪽 제방이 북한보다 높기 때문이다. 가난한 북한이 제방을 제대로 쌓지 못해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두만강 범람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언론매체들은 중국이 북한에 구조대를 파견해 홍수로 고립된 북한 주민 3명을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지린성은 8월 31일 북한으로부터 구조 요청을 받고 두만강에 있는 북한 땅 온성도로 구조대를 급파했다. 첫날 고립된 이들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자 구조대는 그다음 날 무인기까지 동원했고, 위치 파악 후 위험에 빠져 있던 주민 3명을 구조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 매체들은 지린성 바인차오루(巴音朝魯) 당서기가 직접 구조대 파견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틀 뒤인 9월 3일에도 북한 주민 2명을 구조했다. 중국 매체들은 ‘(중국) 육군항공부대가 홍수로 떠내려온 북한 주민 2명을 지린성 투먼 지역에서 구조했다’고 보도했다. 이들 2명은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휩쓸려 투먼 지역으로 떠내려왔고, 주변 도로가 모두 훼손돼 구조대원들이 육로로 접근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마침 홍수 피해 지역에서 구호 작업을 벌이던 중국 육군항공부대가 구조 헬기를 파견해 군인들이 북한 주민 2명을 무사히 구조했다. 중국군은 또 구조한 2명 가운데 1명이 위독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헬기에 태워 부근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받게 했다.

    한편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넘치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추석에도 쉬지 않고 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비롯한 해외 북한 근로자들은 3년 전부터 추석을 휴일로 지정해 쉬고 있다. 3년 전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근로자들이 추석을 챙겨 먹을 수 있게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 그런데 올 추석은 주문이 밀려 쉬지 않고 가동하는 공장이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대북사업가 B씨도 추석 당일 공장을 가동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북한 근로자에게는 휴일 근무 보너스가 추가로 지급된다. 그 돈 가운데 일부는 또 평양으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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