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2003.10.16

佛서 불붙은 ‘안락사 논쟁’

‘전신마비 소방관’ 어머니가 안락사시킨 사건이 발단 … ‘법적 허용’ 놓고 찬반 팽팽히 맞서

  • 파리=지동혁 통신원 jidh@hotmail.com

    입력2003-10-09 15: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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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서 불붙은 ‘안락사 논쟁’

    뱅상 욍베르는 식물인간이 된 지 3년 만에 스스로 안락사를 택했다.

    한 전직 소방관의 죽음이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식물인간이 된 이 소방관의 어머니가 의료진의 허락 없이 진정제를 과다 투여해 아들을 안락사시킨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다.

    9월26일 22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 뱅상 욍베르는 지난 3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2000년 9월 당직근무 후 집으로 돌아가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 9개월 만에 의식을 되찾긴 했지만 이미 전신마비에 청력과 시력까지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욍베르는 어머니의 극진한 간호 덕분에 점자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눌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욍베르는 1년 전 의료진으로부터 더 이상 회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퇴원을 권유받았다. 가족들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마저 잃은 그가 이때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살아 있는 주검’으로 3년간 고통

    욍베르의 이름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매스컴을 통해 프랑스에 알려졌다. 그가 자신이 죽게 허락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시라크 대통령에게 보냈던 것이다. 대통령은 이 편지에 깊이 감동했고 여론도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프랑스 법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다. 견디다 못한 욍베르는 결국 어머니에게 마지막 도움을 청하게 된다.



    욍베르가 사고를 당한 지 만 3년이 되는 날,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안락사를 시도했다. 진정제를 투여한 지 이틀 만에 욍베르는 숨을 거두었다. 그가 병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들은 한 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는 죽을 권리를 소망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욍베르는 이 책에서 자신은 ‘살아 있는 주검’에 불과한 상태를 원한 적이 없으며, 그로 인해 겪은 3년간의 모든 고통은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또 이 책의 말미에서 “부디 제 어머니를 탓하지 말아주세요. 어머니께서 제게 하실 행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증거입니다”라며 아들의 목숨을 끊는 고통스런 결단을 내린 어머니의 위법 행위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동정을 산 욍베르 가족의 행위는 현재로서는 어떠한 법적 정당성도 얻을 수 없는 상태다. 어머니 마리 욍베르는 아들을 위해 법적 처벌을 각오하고 안락사를 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건 직후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풀려나 현재 다음 수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욍베르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을 당시 장 프랑수아 마테이 보건부 장관은 안락사에 반대하며, 정부는 이에 대한 합법화 요구를 단호히 거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복제와 더불어 생명윤리 문제의 화두로 떠오른 안락사 허용 여부는 그동안 프랑스에서도 꾸준히 논의돼왔지만 이 논의가 가시적인 변화를 가져온 적은 없다. 2000년 각종 민감한 사안에 대해 윤리적 해석을 내놓는 국가 윤리자문위원회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일종의 절충안을 제시했다.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경우에 한해 법원이 사례별로 정황을 판단해 안락사의 허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 절충안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욍베르의 죽음이 프랑스 사회에 몰고 온 파장은 쉽게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르 몽드’지는 사건 다음날 ‘죽을 권리’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안락사 허용 문제에 대한 논쟁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사회부 장관 프랑수아 필롱은 이번 사례와 같은 일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제안했다. 또 ‘국경 없는 의사회’의 창립 회원이자 각종 여론조사에서 프랑스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베르나르 쿠쉬네 전 보건부 장관은 ‘르 몽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랑스의 실정에 맞는 해결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광범위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 맞서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는 “생명의 문제는 정치의 소관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관련법을 개정할 의도가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부 장관도 인간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인정하기 시작할 경우, 그 후의 방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며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 인사들도 찬반으로 갈려

    한편 9월30일에는 욍베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의 재활치료 담당의사가 자신이 그를 안락사시킨 장본인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더욱 확대되었다. 이 의사는 어머니 마리 욍베르가 안락사를 시도한 뒤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자신이 직접 떼어냈다고 밝혔다. 욍베르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한 그는, 이 결정이 그동안 욍베르의 상황을 지켜봐온 의사들이 공동으로 내린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고백했다.

    이로써 욍베르 사건은 가족간의 안락사 문제에 그치지 않고 병원측의 책임 문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의료계까지 이 민감한 사안에 직접 개입하게 된 이상 사건은 다시 한번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 종교적·윤리적 해석을 통한 반대 입장과 죽을 권리를 ‘가장 비극적인’ 개인의 자유로 해석하는 찬성 입장이 팽팽히 맞서, 안락사 허용 문제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합의는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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