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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김철수 파문 송두율씨 추방 쪽으로 가닥 … 지식인 거짓말 치명적 상처 오래갈 듯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숙소를 나서는 송두율 교수.

복잡하게 진행될 것 같았던 송두율 교수 사건이 추방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재외 민주인사’로 알려졌던 송교수가 한국에서 추방되는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황장엽씨와 소송을 치르면서까지 김철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던 그가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의 조사를 받으며 김철수였다고 시인한 것이 추방되는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민주화 이후 복잡한 사회갈등을 겪어온 한국이, ‘거짓말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간과한 게 송교수의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사건은 송교수 자신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송교수는 출판과 언론 칼럼을 통해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왔다. 이러한 자유는 앞으로도 누릴 수 있겠지만, 그의 독자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야유하는 관중을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렸다가 위기에 처한 보스턴 레드삭스의 김병현 선수와 비교된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 ‘지식인이라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을 무시한 것이 송교수의 실수다.

거부감 확산 지적 영향력 대폭 축소

송교수가 앞으로도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에게 제3의 자리에서 남과 북을 이어주는 임무를 맡겨줄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그를 북한에서 반겨줄 것인가. 북한 입장에서 송교수의 가치는 남한 지식인층에 대한 영향력에 있었다. 반유신 운동을 하다 억지로 고국을 등지게 된 데 대한 연민의 정도 보태져 한국에서는 그를 이해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한국 사회에 대한 송교수의 영향력은 현저히 줄어들 전망이다. 북한측 입장에서 보면 그의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것인데, 이러한 그를 과연 북한이 반기겠는가.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1991년 방북 때 노동당 기관지에 실린 송교수와 김일성의 기념사진.

송교수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해외공작을 담당하는 북한 노동당 조사부의 조직에 대해 이야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보 유출이 가장 두려울 것이므로 송교수를 냉랭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송교수는 남북의 경계에 선 경계인에서 남북 모두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송교수 사건으로 국정원의 정보력에 대한 세간의 눈길도 달라졌다. 그동안 국정원은 황장엽씨가 ‘김철수가 곧 송두율’임을 밝힐 때까지는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한 소식통은 “황장엽씨는 조선로동당 중앙에 근무했던 유일한 귀순자다. 따라서 노동당에서 비밀로 여기는 사항을 누구보다도 많이 알고 있다. 이러한 황씨는 귀순 후 국정원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믿고 김철수가 송두율이라는 것을 언급했는데, 국정원이 이를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황씨는 그 후 역공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북한과 연계된 채 한국 사회에서 활약하는 사람의 리스트를 밝히는 것을 극도로 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송교수 사건으로 국정원이 황씨가 아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특히 독일주재 북한 이익대표부에 서기관으로 근무하다 미국으로 망명한 김경필씨의 조서를 확보한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 간의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시켜주었다. 일각에서는 “상대적으로 북한에 경도되었던 DJ(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도 국정원은 여전히 CIA와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다. 김정남이 일본에 입국하다 발각돼 추방된 사건은 사실 국정원이 축적한 자료가 CIA측에 제공된 후 다시 일본에 제공됨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국정원은 1990년대 초반부터 김정남이 어떤 여권을 사용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송교수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던 강금실 법무장관

송교수 사건은 고영구 국정원 체제의 향방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고영구씨와 박정삼, 서동만씨가 외부인으로 들어가 국정원장과 국내담당 2차장, 기조실장을 맡았을 때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박차장은 송교수와 서울대 철학과 동기생인데, 송교수가 입국하기 직전 베를린을 방문해 구설에 올랐다. 송교수 역시 입국을 앞두고 “박차장이 친구”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정원에서는 송교수 문제를 두고 대공수사국 등의 실무자들은 사법처리를 요구했고, 간부진은 공소보류 등의 선처를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중간자인 국장·단장급 간부들은 중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 내의 이러한 기싸움은 송교수에 대한 여론이 크게 나빠지면서 실무진의 KO승으로 귀결되었다. 일부 국정원 간부들은 사태를 잘못 예측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송교수 사건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자기 생각 전하려다 되레 역공

세간의 관심은 누가 송교수에게 들어와도 괜찮다는 사인을 보냈는지에 쏠리고 있다. 이 문제 역시 누가 오판했는가라는 책임론으로 귀착되는데, 첫번째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거론된다. “설사 김철수라고 해도 송교수를 처벌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 바 있는 강장관은 송교수 입국을 지지했던 쪽으로 꼽히고 있다. 이종수 KBS 이사장과 정연주 KBS 사장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송교수 사건의 향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여론이었다.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송교수가 입국한 후 꾸준히 여론조사를 벌였는데, 송교수를 비난하는 여론이 월등히 높아지자 대세에 따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노대통령의 “원숙하게 처리하자”는 발언이 있었고 이어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송교수는 한쪽에 너무 깊이 발을 담갔다”는 발언이 나오게 되었다.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송교수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박정삼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 이종수 KBS 이사장, 정연주 KBS 사장(왼쪽부터).

송교수 사건은 한독 관계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는 분석이다. 국정원과 검찰은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만큼 송교수를 출퇴근 형식으로 조사했다. 송교수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송교수 조사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문제점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독일은 과거 분단국이던 시절 기욤 사건 등 여러 스파이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독일의 국익을 해치지 않고 한국의 사법당국이 적법하게만 처리했다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모 정보기관 관계자는 “로버트김 사건이 있었다고 해서 한미 관계가 무너졌는가. 한국과 러시아는 외교관 맞추방 사태까지 겪었지만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송교수 사건은 아무것도 아니다. 한독 관계 운운하는 것은 기우다”라고 잘라 말했다.

남북 기피 ‘주홍글씨’ 앞에 선 경계인

송교수가 김철수라고 밝힌 황장엽씨.

세간의 관심은 왜 송교수가 완전히 전향하지 않았는가로 쏠리고 있다. ‘강철’ 김영환씨는 전향 후 학생운동권을 상대로 전향운동을 펴 전북지역의 학생운동권을 북한 민주화운동 추진세력으로 전환시켜 놓았다. 송교수 역시 완전히 전향하고 북한 민주화운동에 동참할 것을 약속했더라면 큰 무리 없이 한국 사회에 편입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모 기관에서 사회 흐름을 분석하는 자리에 있는 관계자는 “송교수 사건은 반대쪽의 목소리가 높았던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를 파병 우세 쪽으로 돌려놓은 역할을 한 것 같다. 송교수는 자신의 생각을 전파할 기회를 잡기 위해 한국에 왔는데, 되레 한국 사회를 보수로 돌려놓는 역할을 한 것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은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수용하게 될 것이다. 송교수는 한국에 오지 않은 것보다 못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405호 (p40~4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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