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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비자금 회오리 ‘숨막히는 공포’

수백억원 정치권 유입 메가톤급 위력 … 칼끝 누굴 겨눌까 여야 ‘침묵’ 긴장 고조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SK비자금 회오리 ‘숨막히는 공포’

SK비자금 회오리 ‘숨막히는 공포’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입에 정치권의 시선이 쏠려 있다. 10월2일 대검찰청에 출두하는 손회장.

SK비자금 파문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안대희 검사장·이하 대검 중수부)가 손길승 SK그룹 회장을 소환하면서 본격화된 SK비자금 파문은 10월10일 이후 SK그룹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은 정치인에 대한 소환조사를 거치면서 정치권과 재계를 강타할 태풍으로 몸집을 키울 것으로 예상된다. ‘태풍 상륙’을 예고받은 정치권은 SK비자금 파문이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인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검찰조사에서 손회장이 ‘자백’한 것으로 알려진 SK그룹의 비자금 규모는 2000억원대. 검찰은 이 가운데 수백억원대의 돈이 2000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권에 건네진 것을 확인, 이 돈의 대가성 여부를 집중 추적하고 있다는 게 이번 사건의 대체적인 줄거리다.

검찰 “금감위 고발하기 전부터 내사”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어째서 SK그룹의 2세 경영자인 최태원 회장을 제치고 돌연 손회장이 SK 수사의 주역으로 떠올랐느냐 하는 점. SK 계열사 가운데 비자금 조성의 창구 역할을 한 회사는 SK해운. 이 회사는 손회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로, 그룹 내부에서는 사실상 ‘손길승의 회사’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이 막강한 회사다.

SK 내부에서 SK해운은 그룹 비자금 조성 창구로 통한다. SK 계열사들이 주주인 데다 매출액의 대부분이 계열사들과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비자금 조성이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라고. 지난해 말 현재 SK해운의 최대주주는 SK㈜로 47.81%의 지분을 갖고 있고, SK글로벌㈜과 SKC㈜가 각각 33.16%와 19.02%를 보유하고 있다.



비자금 조성 과정도 엉성했다. SK해운은 주로 기업어음(CP)을 발행하고도 이에 대한 회계처리를 하지 않는 방법으로 2000억원대의 비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비자금을 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임직원 명의의 SK증권 계좌를 통해 관리해왔다는 것.

SK비자금 사건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을 때부터 파문이 일 것으로 예견됐다.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감위)가 고발한 분식회계 사건은 서울지검 금융조사부가 맡아오던 것이 관례. 하지만 이번 사건을 대검 중수부가 맡으면서 분식회계에 대한 수사를 넘어 정치권에 대한 뇌물수수 등 여타 범위로 수사의 폭이 확대될 수도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도 “금감위가 고발하기 전부터 SK해운이 비자금을 조성, 정치권에 제공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해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비자금의 대부분이 손회장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SK해운에서 조성됐다는 사실은 곧 손회장이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증거로도 해석됐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당초 검찰은 비자금 조성의 몸통으로 최태원 회장을 지목했지만 조사과정에서 최회장보다는 손회장이 비자금 조성 및 정치자금 전달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정황을 확보하고 그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사의 맥은 제대로 짚었다는 것.

그러면 SK비자금 파문의 불똥은 어디로 튈 것인가. 이에 대해선 추측만 난무할 뿐 구체적 정황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손회장과 SK그룹 핵심 관계자, 그리고 대검 중수부 관계자만이 관련 정치인의 이름을 알고 있을 뿐이다.

검찰 주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손회장은 검찰조사에서 SK그룹이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 중진 현역의원과 여권 고위인사인 전직의원 1명에게 각각 20억원씩을 전달했고, 한나라당 중진 현역의원에게도 30억원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에게 모두 67억원의 선거자금을 제공한 단서도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여야 정치인 3명에게 개별적으로 준 70억원은 합법적인 후원금이 아닌 대가성이 있는 돈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돈을 제외한 상당한 규모의 돈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에게 건네졌는데 대부분이 후원회를 통해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전해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돈의 규모는 대략 여야 각각 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이런저런 돈을 합쳐 현재 SK그룹이 정치권에 전달한 돈의 총 규모는 300억원대에 이른다는 게 검찰 주변의 판단이다.

정치자금 거명 중진급 의원들 ‘손사래’

우연의 일치인지, 정가에서도 오래 전부터 비슷한 내용의 소문이 떠돌고 있다. 정가의 한 소식통은 “2000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을 거치면서 민주당이 100억원 가량, 한나라당이 140억원 가량, 합해서 240억원을 SK로부터 수수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고 말했다.

SK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여야 중진급 정치인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손회장과 학연이 있는 한나라당 중진 의원과, 자신의 측근이 SK그룹 임원으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 중진의원, 그리고 전직의원으로 김대중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인사의 이름도 나돌고 있다. 이밖에 대선 당시 민주당의 요직에 있었던 정치인의 이름도 거론되는데, 이 정치인은 공개적으로 손회장의 검찰소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름이 거론되는 당사자들은 물론 SK그룹 관계자들까지 나서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며 손사래를 치고 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몇몇 특수관계를 근거로 우리 회사와 특정 정치인을 의도적으로 연관지으려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대부분이 물증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솔직히 총선과 대선 때 후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그 경우 법정 한도를 철저히 준수했으며 아무리 계산해도 70억원에서 100억원을 넘지 않는 수준이며, 삼성 LG 등 다른 재벌도 이 정도 규모의 후원금은 제공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0월2일 밤, 검찰은 이틀간의 조사를 끝내고 손회장을 일단 귀가시켰는데 손회장의 귀가는 그 자체로 뉴스거리였다. 소환되면 구속을 면키 어렵다는 대검 중수부 조사실을 별 탈 없이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었기 때문.

이를 두고 검찰 주변에서는 구구한 해석이 나돌고 있다. 검찰이 확실한 물증도 없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이자 자산규모 3위의 재벌 회장을 소환했을 리는 없다는 게 검찰 주변의 대체적 판단이다. 이 때문에 대검 포토라인에 선 손회장의 구속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그런데 검찰은 그를 돌려보냈고 불구속 수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귀가가 불구속 확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사할 게 많아 신병처리 결정을 유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검찰의 입장 발표에 수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손회장을 구속하기엔 뭔가 결정적인 것을 확보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자칫 수사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 다른 쪽에서는 SK비자금을 받은 정치권 인사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손회장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라는 당근을 제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10월6일 검찰은 “대검에 대한 국정조사가 끝나는 이번 주말 이후 현역 정치인 2~3명을 소환하는 것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타깃 불분명’ 그래서 더더욱 불안

만약 SK비자금 파문이 실제상황으로 확산된다면 정치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치권과 재계에서도 손회장에 대한 검찰조사의 “타깃이 불분명하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다. SK비자금 수사가 구체적으로 정치권 어느 쪽의 비리를 캐기 위한 작업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 현재 검찰 주변에서 비자금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정치인들도 한나라당과 민주당, 통합신당 모두에 흩어져 있다. 일단 분열 이전의 민주당 정치인이 일차적인 검찰소환 대상으로 보이지만 SK그룹의 정치자금 제공처가 민주당만이 아니었다는 점이 관전자를 헷갈리게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SK그룹 내부에서 “지난해 대선 당시 손회장이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 이런 분석이 나오는 것은 손회장이 대선 당시 거의 반(半)공개적으로 이회창 후보 당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뛰었기 때문. SK의 한 고위 임원의 말이다.

“손회장은 대선 투표일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18일에도 일부 임원들을 상대로 ‘젊은 직원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큰일난다. 그들을 잘 설득해보라’고 말할 정도였다. 노후보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으로 이는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에 대한 ‘후원’으로 연결됐을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지원은 대선 막판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 임원은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간 단일화 이후 노후보의 지지율이 이후보보다 높게 나왔을 때 ‘거품이겠거니’ 했으나 대선 투표일이 다가와도 여전히 노후보가 앞선 것으로 알려지자 뒤늦게 민주당에도 ‘보험’을 들었다는 얘기가 은밀히 나돌았다”고 귀띔했다. SK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들만이 한나라당 지원 의혹을 받는 데 대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우 대선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투표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느냐. 대기업 입장에서 노후보의 당선은 그야말로 ‘대재앙’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후보와 한나라당 쪽에 더 많은 정치자금을 제공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고 검찰의 수사에 정치적 목적이 녹아 있다면, 당장은 민주당이 타깃인 것처럼 보이지만 칼끝은 한나라당을 겨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재계쪽 관측과 달리 정치권에서는 입을 여는 사람이 없다. 통합신당의 한 당직자는 “SK 문제에 관한 한 다들 침묵하고 있다. 이상수 총무위원장이 나서 ‘내가 모르는 비자금은 없다’라고 했을 뿐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한 한 초선 의원은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왔다지만 내가 기억하기로는 한순간도 풍족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아예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비자금 수수 창구로 의심받고 있는 한 중진의원의 경우 각종 정치자금 관련 소문이 나올 때마다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린 전례를 들어 그가 관련돼 있을 공산이 크다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한편에서는 송두율 교수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검찰에 쏠리자 이를 분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SK비자금 건을 흘린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태풍 전야의 고요. 한마디로 정치권 분위기는 이렇다. ‘SK비자금게이트’로 이름 붙여질 태풍은 과연 정치권에 어떤 상처를 남길 것인가. 그리고 누가 이재민 신세가 될 것인가. 태풍 상륙을 앞두고 정치권과 재계의 긴장감이 높아만 가고 있다.





주간동아 405호 (p30~32)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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