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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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轉職 지원’ 센터 꼭 두드리세요

적성평가, 재교육, 구직알선 통해 실직 충격 최소화 … 최근엔 재직자들에도 적용 움직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0-09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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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轉職 지원’ 센터 꼭 두드리세요

    전직 지원 전문 기업인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에서 한 퇴직자가 상담원과 상담하고 있다.

    엔지니어 김모씨(42)는 2000년 12월 15년간 다니던 A엔지니어링이 다른 기업과 합병되면서 퇴직했다. 이후 여러 가지 일을 전전했지만 실패만 거듭하자 김씨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취업을 준비하며 인터넷을 뒤지던 그는 서울 마포의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에서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전직 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서비스를 통해 적성평가, 재교육은 물론, 구직알선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지난해 말 경총 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 문을 두드렸다.

    “전직 지원 컨설턴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재취업을 위한 방향을 잡아주었습니다. 도움받을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됐고 결국 재취업에 성공했습니다.”

    기업의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지속되고 감원 열풍이 불면서 직장인들의 어깨가 처지고 있는 요즘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퇴직을 앞둔 직원이나 퇴직자에게 재취업이나 창업 등 일자리를 찾는 데 필요한 교육과 제반 여건을 마련해주는 제도다.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찾아 소개해주는 헤드헌팅(head hunting)이나 서치펌(search firm)과는 달리,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실직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신적인 지원을 비롯해 퇴직 후 변화관리와 실질적인 취업 등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서비스다.

    배신, 좌절감 딛고 열정 되찾게 하는 프로그램

    ‘轉職 지원’ 센터 꼭 두드리세요

    기술인력 전문 전직지원센터인 경총 아웃플레이스먼트센터.

    사실 그 내용을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자신에 대한 이해-준비-계획 실행-경력전환 등의 프로그램이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그 실효성을 높이 평가한다. 포스코에 다니다 퇴직한 박모씨(47)는 “지금까지 내가 하는 일이 적성에 맞는지 어떤지도 모르고 같은 일을 계속했다.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의 진단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적성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 서비스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좌절감에 빠져 있던 퇴직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한 전직 지원 컨설턴트는 “퇴직했다는 사실을 아내한테조차 숨기는 이가 있을 만큼 퇴직자들은 심리적 부담감에 시달린다”며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퇴직자가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하는 것을 일차 목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경력 목표를 설정하고 창업 지원을 받는 것은 그 다음인 것이다. 전자회사에 다니다 그만둔 김모씨(45)는 “이 서비스를 받은 뒤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과 열정을 되찾은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의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은 이는 현재까지 67%대의 재취업 성공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2년 8월부터 1년 동안 600여명이 이 교육과정을 마쳤고, 현재 750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대개 3개월 과정이지만 형편에 따라 6개월까지 교육받는 이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퇴직 기술자에게만 문을 개방하고 있지만 아웃플레이스먼트 전문기관의 재취업 성공률 또한 상당히 높은 편이다.

    윤종만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 사장은 “구조조정을 실시한 기업은 고용불안에 따른 사기저하, 노사관계 악화, 법정소송 등 후유증을 겪게 된다”며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자들은 물론 현재 일하고 있는 직원들의 사기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아웃플레이스먼트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9년. 한국P&G가 지방 생산공장을 축소하면서 국내 처음으로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후 2001년 직원 4500명을 감원한 대우자동차가 이를 실시했다. 당시 대우자동차와 채권단, 노동부, 지방자치단체, 중소기업청 등이 상호 협력해 상당수 명예 퇴직자들이 전직에 성공했다. 이후 KT, 태광산업, 삼성생명, 삼성전기, 효성, SANYO, LG전자, 쌍용제지, 한국야쿠르트, 국민은행 등 많은 기업이 이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포천지 선정 500대 기업 중 70%가 이를 실시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轉職 지원’ 센터 꼭 두드리세요

    정년퇴직을 앞둔 포스코 사원들이 사내에 설치된 전직 지원 컨설팅 제도인 ‘그린라이프 디자인’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제도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인식은 상당히 부족하다. 지난해 정부의 전직 지원 장려 관련 예산이 500억원에 달했지만 실제로 집행된 예산은 10억원 정도. 기업들이 실제로는 이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우선 기업들은 일정 요건을 갖출 경우 정부로부터 전직 지원 자금 일부(대기업 1인당 75만원, 중소기업 100만원)를 받지만 자사 부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을 꺼리고 있다. 기업측이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할 경우 3개월에 1인당 300만~400만원 정도 소요된다. 게다가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으려면 기업이 구조조정의 근거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회사의 기밀이 드러날 우려가 있어 아예 포기하는 기업도 있다. 물론 이 제도 자체를 모르는 기업도 상당수다.

    경총 관계자는 “퇴직자들에 대한 생계 지원은 일시적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전직 지원은 퇴직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인데도 기업측의 관심이 적어 아쉽다”고 지적했다.

    올 400억원대 시장 … 전문업체들 경쟁 가열

    한편 대부분의 노조는 이 제도가 회사의 구조조정을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폐업을 신청한 성남 인하병원의 경우 200여명이 아웃플레이스먼트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노사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병원측이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과 사원의 상호 협력이 전제된다면 이 제도는 퇴직자들의 실직으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하고 퇴직자들이 새 직장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기업은 아웃플레이스먼트를 실시할 경우 사원을 해고하지 못해 발생하는 기회비용의 25~50%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미국에서 조사됐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퇴직(전직) 관리는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이며, 개인도 퇴직이 더 이상 끝이 아닌 변화의 계기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아웃플레이스먼트와 관련, 최근 감지되고 있는 새로운 흐름은 기업들이 퇴직자뿐 아니라 재직자들에게도 이 서비스를 받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포스코와 KT 등이 대표적. 구조조정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이고 평생고용 개념이 깨져가고 있는 만큼 재직자들이 미래에 닥칠지 모를 위기에 미리 대처할 수 있게 하려는 것. 또한 아웃플레이스먼트는 채용, 육성에 이어 기업 인적 자원 관리의 마지막 단계로 감원을 통한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전직 지원 부서가 사내에 설치되는 경우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느라 활용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전문가 부족으로 변화관리 업무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내 전직 지원 제도는 대개 창업자금 지원 정도의 역할에 그치는 경우 많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아웃플레이스먼트 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관련 시장이 200억원대였지만 올해는 400억원대로 커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DBM코리아(02-3453-6001, dbm.co.kr), 한국아웃플레이스먼트(02-703-9900, restart21.co.kr), 리헥트해리슨코리아(LHH, 02-555-8500, lhh.co.kr) 등 7~8여개에 이르는 전문업체들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DBM코리아는 전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며, 현재까지 다국적 기업, 국내 그룹 등 40여개 이상 기업의 의뢰를 받아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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