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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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어린이들에게 ‘서울의 추억’ 선물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7-31 14: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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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 어린이들에게  ‘서울의 추억’ 선물
    하루에 버스가 네 번밖에 다니지 않는 마을. 강원 평창읍 이곡리는 평창읍에서도 오지라고 불릴 만한 시골이다. 이 이곡리에 사는 어린이 22명이 7월24일과 25일 이틀간 서울 나들이를 했다. 단순히 ‘서울 구경’을 한 게 아니라 뮤지컬과 영화도 보고, 민속박물관과 방송국 견학도 하며 평소 할 수 없는 ‘문화체험’을 맘껏 즐겼다.

    “연극도 재미있고 다 좋았다”는 초등학교 5학년 동준이, “서울은 시골보다 편한 것 같다”는 3학년 선홍이, “사탕과 장난감 자동차를 뽑는 게임이 제일 재미있었다”는 3학년 송언이. 때묻지 않은 표정의 아이들은 더운 날씨에도 즐거워 보였다. 22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평창중학교 3학년 희남이는 “서울은 우리가 사는 곳과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내 사랑 DMZ’ 같은 연극은 처음이라 참 인상적이에요”라고 어른스레 소감을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 마을 노산교회의 이등용 목사는 “평창에서도 가끔 초청공연이 열리지만 공연의 수준은 별로 높지 않다. 서울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아이들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이들을 서울에 데려온 이는 공연기획자인 폴리미디어 이선철 대표(41). 공연기획계의 베테랑인 그의 주소는 뜻밖에도 평창읍 이곡리다.

    그는 지난해 가을 서울 강남에서 평창읍 이곡리의 산골 폐교로 이사를 갔다. “거창하게 귀농이라고 할 것은 없고요. 건강이 너무 나빠진 데다 나이가 들수록 대도시가 아닌 산 근처에 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전국을 헤매며 살 곳을 찾다가 평창의 폐교를 찾아낸 거죠. 폐교를 수리한 뒤 ‘평창스튜디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이 예술가들이 자연 속에서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곳이 되었으면 해요.”

    “마을주민이 된 뒤 농사를 도우려 해봤지만 오히려 방해만 됐다”면서 웃는 이대표는 아이들에게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적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서 1박2일의 서울 나들이를 추진했다고 한다.



    “서울 사람들이 시골 분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시골 분들이 그런 걸 고마워하지도 않고요. 이번 서울 나들이도 거창한 뜻은 없습니다. 그저 아이들이 여러 문화적 체험을 통해서 좋은 추억을 남기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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