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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이색도시 ⑨ | 리히텐슈타인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 글·사진/ 리히텐슈타인=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리히텐슈타인의 통치자 한스 아담스 2세가 살고 있는 파두츠 성 전경.

‘작지만 강하다’. 리히텐슈타인만큼 이 말에 꼭 들어맞는 나라도 없을 듯하다.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은 유럽의 공국(公國). 그러나 남북을 가로지르는 거리가 25km, 동서로는 불과 6km인 이 나라의 국민소득은 4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또 살기 좋은 나라를 선정하는 조사에서도 언제나 1, 2위를 다투는 복지국가다. 인구 3만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인 리히텐슈타인은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곳이다.

리히텐슈타인에 가려면 먼저 국경이 맞닿아 있는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가야 한다. 리히텐슈타인에는 공항이 없기 때문이다. 수도 파두츠(Vaduz)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스위스의 취리히 공항.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스위스를 거쳐 리히텐슈타인에 들어간다. 리히텐슈타인은 통화, 교통 시스템이 스위스와 똑같아 오스트리아를 통해 들어가는 것보다 스위스를 거치는 쪽이 더 편리하다.

취리히 공항역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사간스(Sagans)역에서 리히텐슈타인행 버스를 탈 수 있다. 20~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이 버스를 타고 20여분만 가면 바로 리히텐슈타인. 그러나 차 안에서는 어디서부터가 리히텐슈타인인지를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알프스산맥 줄기와 푸른 초지, 드문드문 있는 전원주택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리히텐슈타인의 수도 파두츠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두 나라를 경계짓는 것은 중랑교보다도 짧은 다리 하나가 전부다. 국경을 지키는 보초조차 없으니 출입국 신고도 당연히 필요 없다. 마치 버스를 타고 종로구에서 서대문구로 건너가듯이, 그렇게 싱겁게 국경을 넘는다. 열심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면 다리 양쪽에서 나부끼고 있는 국기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정도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인구 3만명에 국민소득은 4만 달러



그래서 유럽여행 중에 리히텐슈타인을 지나간 사람들 가운데 자신이 이 나라를 거쳐 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리히텐슈타인의 존재를 알았다 해도 스위스와 똑같은 자연환경에, 똑같은 언어와 화폐를 사용하는 이 나라를 스위스의 한 ‘마을’쯤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단 리히텐슈타인에 내려 수도 파두츠의 거리를 걷다 보면 이 같은 선입견은 큰 오해임을 바로 느낄 수 있다. 진기하고 역사 깊은 리히텐슈타인만의 매력이 관광객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손꼽히는 리히텐슈타인을 방문한 이들은 하나같이 리히텐슈타인의 제일 큰 매력을 신비로움이라고 말한다.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리히텐슈타인 예술 박물관(Kunst Museum)은 세계적인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국민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는 한스 아담스 대공 부처. 1869년에 건설된 성 플로린 성당(위부터).

이처럼 리히텐슈타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곳이 군주가 ‘다스리는’ 왕국인 탓이다. 리히텐슈타인에서는 어디서든 파두츠 중심에 높이 솟아 있는 왕의 성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사는 한스 아담스 2세 대공은 이 나라를 직접 통치하는 절대군주다. 21세기 유럽 한복판에서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궁금해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한스 아담스 2세에게는 내각해산권과 판사임명권 등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한이 있고, 리히텐슈타인의 헌법은 그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만 개정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이 같은 사항이 올 3월16일 치러진 리히텐슈타인 국민투표에서 64%의 지지율을 얻어 확정됐다는 점이다. 리히텐슈타인 유권자들의 대부분은 300여년 간 자신들을 ‘다스려온’ 한스 대공 가문에 절대군주의 권한을 주는 것에 동의했다. 그래서 리히텐슈타인에서 왕가의 힘은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국들에서와 달리 실질적이고 강하다. 1999년 6월에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리히텐슈타인 왕가가 보유한 재산은 50억5000만 유로로 유럽 왕가 중 가장 부자이기도 하다.

‘왕국’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은 파두츠 거리 곳곳에서 드러난다. 파두츠 중심가에 위치한 리히텐슈타인 국립미술관(Staatliche Kunst-sammlung)은 다른 국가적인 보물들과 함께 왕가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한스 아담스 2세의 컬렉션에는 루벤스, 렘브란트의 대표작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 가운데 하나인 우표를 전시하는 우표박물관에서도 한스 아담스 2세 가족의 사진이 담긴 우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 국민들은 실제로 그들의 군주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우표를 구입해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군주제가 생소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그 우표들은 신기한 기념품이다. 리히텐슈타인의 기념품점에는 한스 아담스 2세가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하는 모습과 왕가가 살고 있는 성의 풍경, 왕가의 단란한 한때를 담은 우표들이 다른 기념품과 함께 전시, 판매되고 있다.

알프스에 둘러싸인 ‘천혜의 관광자원’

리히텐슈타인을 방문한다면 우표박물관에 꼭 들르는 것이 좋다. 세계 우편의 역사를, 그것도 무료로 살펴볼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우표부터 17, 18세기에 유럽의 왕실끼리 주고받은 우편물들, 당시의 배달부 복장과 마차, 우편 시스템 등이 전시돼 있다. 많은 사람들이 리히텐슈타인 하면 우표를 떠올릴 만큼 우표는 이 나라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우표박물관과 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있는 우체국은 항상 전 세계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우표박물관을 다 본 후에는 중심가를 지나 다소 오르막이 있는 위쪽 길로 천천히 올라가보자. 잘 손질된 잔디 정원을 갖춘 집들을 지나 30~40분쯤 걸으면 길의 끝에서 14세기식 성을 만날 수 있다. 동화책 속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이 성은 한스 아담스 2세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곳.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지는 않지만 성 외곽을 돌아보며 이 안에서 실제 왕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비롭다. 성으로 가는 동안 주위를 감싸고 있는 아름다운 알프스산맥과 계곡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이 산책에 의미를 더한다.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세계 최대 우표 수출국 리히텐슈타인의 다양한 우표들(위).알프스산맥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리히텐슈타인 전경.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리히텐슈타인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무너진 옛 성 앞에서 어린이들이 놀고 있다.

산책을 마치고 그냥 중심가로 돌아오기가 아쉽다면 가까이에 있는 왕자의 포도밭을 찾아도 좋다. 눈에 띄는 누구에게든 물어보면 바로 안내해줄 만큼 리히텐슈타인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그곳에 가면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리히텐슈타인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왕정만이 아니다. 알프스산맥에 둘러싸인 천혜의 자연환경은 리히텐슈타인을 국민소득 세계 1위의 나라로 만들어준 관광산업의 밑거름이다. 리히텐슈타인의 남동쪽, 알프스산맥 위에 자리잡고 있는 말분(Malbun) 리조트에 도착하면, 왜 리히텐슈타인이 유럽인들의 휴가지로 각광받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겨울에는 스키, 여름에는 하이킹을 즐길 수 있도록 돼 있는 말분 리조트에는 수십개의 호텔과 스키장,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있지만 번잡하기보다는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넉넉한 알프스산맥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감싸안고 있기 때문이다. 말분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영국인 관광객 마이클 그린은 “해발 1602m에서 이렇게 편안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며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말했다.

작은 땅, 큰 기쁨 ‘신비의 小國’

인구 3만여명의 소국이지만 리히텐슈타인 곳곳에서는 다양한 축제와 스포츠 경기가 벌어진다.

국제특허 출원 세계 6위 … 창의성 뛰어나

리히텐슈타인 북쪽의 작은 마을 쉘렌베르크(Schellenberg) 역시 산을 끼고 있어 경치가 기가 막힌 곳. 13세기부터 있었다는 옛 마을 트리젠(Triesen)에서는 역사의 향기가 느껴지는 멋진 오솔길을 걸으며 하이킹을 할 수도 있다. 5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의 리히텐슈타인 날씨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데다 따뜻하고 쾌적해 자전거 하이킹을 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자전거 하이킹 장소로 가장 유명한 곳은 알프스산맥의 비교적 낮은 지역에 위치한 트리젠베르크(Triesenberg)다. 스위스의 대표적 관광지인 인터라켄(Interlaken)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인간적이고 다정한 산세를 자랑하는 이 마을은 중심가에 있는 돔 형태의 교회와 여러 빛깔의 꽃 화분을 내다 놓은 주택의 발코니, 목에 종을 매단 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들이 어우러져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해낸다.

이같이 풍부한 관광자원 덕에 리히텐슈타인은 해마다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관광산업이 리히텐슈타인을 부국으로 만든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겨우 3만여명에 불과한 리히텐슈타인 사람들이 지난해 출원한 국제특허가 1000여건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을 만큼 이 나라는 창의력과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우표, 현미경, 광학기기, 가죽제품 등이 리히텐슈타인이 내세우는 산업인 것도 이런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다.

또 각종 과세 부담이 적어 2000여개의 다국적 기업들이 ‘조세 피난처’로 이곳에 들어와 있다는 점도 리히텐슈타인의 강점. 리히텐슈타인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 중 3분의 1이 외국인일 정도로 리히텐슈타인 경제는 외국 기업에 열려 있다.

동화 속 왕국 같은 신비로움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들의 창의력, 자유로움, 개방정신이 서울의 한 개 구(區)보다도 작은 이 나라를 세계 제1의 부국으로 만들어준 원동력인 셈이다.





주간동아 394호 (p88~91)

글·사진/ 리히텐슈타인=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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