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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화려한 싱글

일 그리고 자유…“난 혼자이고 싶다”

방해 안 받고 자신에게 전념 ‘매력’…무절제·외로움 등 부작용 극복이 관건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일 그리고 자유…“난 혼자이고 싶다”

일 그리고 자유…“난 혼자이고 싶다”
언제부턴가 유부남 유부녀는 트렌디한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열리는 일체의 모임에서 매우 ‘뻘쭘한’ 존재가 돼버렸다. 그것이 파티플래너가 기획한 ‘울트라 세련’ 파티든, 진지한 문화계 인사들의 토론장이든 마찬가지다. 일단 이런 곳에서 유부남 유부녀를 찾기가 매우 어려워졌고, 밤늦은 시간까지 열정적으로 모임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오리지널 싱글이거나 ‘다시 돌아온’ 싱글들이다.

진동으로 해놓았어도 끊임없이 울려 주위사람들까지도 눈치채게 되는 주머니 속의 전화 때문에 슬슬 초조해지는 유부남 유부녀를 “이제 집에 가보셔야죠?”라는 말로 ‘친절하게 쫓아내는’ 것도 문화적 주류가 된 싱글들이다.

통계적으로도 싱글족, 즉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15.5%(2000년 기준)나 차지,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보통가족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가구 형태가 되었다.

영화 ‘싱글즈’는 멋진 싱글 주인공-사실 싱글 아닌 영화 주인공은 찾기 어렵다-이 아니라 싱글의 보편적 라이프 스타일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2003년 ‘동미’와 ‘나난’이라는 아이콘을 얻은 한국의 싱글족은 어떤 사람들이며 그들은 왜 ‘결혼’으로 ‘개종’하지 않는 것일까. 사람들의 비뚜름한 시선과 간섭을 꿋꿋하게 견디고 있는 싱글족의 조용하고도 분명한 증가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성은 ‘일’ 남성은 ‘자유’ 때문에 “결혼 사절”



영화 ‘싱글즈’의 나난(장진영 분)은 “아침 해주고 밤에 적당히 서비스해주면 남편이 학비도 대주고 용돈도 주겠다는데, 그런 찬스가 어딨냐?”며 결혼을 권하는 동미(엄정화 분)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결혼 대신 레스토랑 매니저라는, 스스로 그토록 경멸하던 일을 선택한다.

“여러 면에서 훌륭한 남자의 청혼이지만 나난은 계속 찜찜해하고 있고, 처음으로 직장에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결혼을 유보하기로 한 거죠.”

나난은 ‘싱글즈’의 시나리오 작가 노혜영씨(28)의 분신이자 서른 안팎 싱글 여성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은 캐릭터다. 능력 있고 화려하고 ‘오는 남자 마다 않고, 가는 남자 잡지 않는’ 동미가 지구 중력의 제한을 받지 않는 팬터지라면, 나난은 상상 속에서 섹스하고 사표도 던지지만 ‘대출금 이자, 공과금, 카드값’을 위해 오늘도 옥탑방에서 회사로 출근하는 현실 속의 싱글이다.

“대학 졸업 후 7년 동안 온갖 직업과 백수 생활을 거치며 너무 힘들어 매일 울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일이 제겐 제일 중요한데, 그 일이 잘 안 풀려 다른 인간관계까지 망치게 될 때 참 힘들었어요. 연극을 하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건 제 콤플렉스가 됐어요.”

대부분의 싱글 여성들은 현실적으로 일과 결혼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으로 받아들여 ‘일=나 자신’으로 생각하고 있다. ‘싱글클럽’(http://cafe.daum.net/sololist) 회원들이 꼽은 싱글이 좋은 이유 1위도 ‘내 일에 전념할 수 있어서’다.

“30대 중반까지 싱글로 지내다 결혼했어요. 외형상 완벽한 커플이었는데 결혼식날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오더군요. 결국 싱글 때처럼 일하는 내게 남편은 ‘이러려면 왜 결혼했냐’고 다그쳤고 우린 4년 만에 헤어졌어요.”

디자이너 A씨는 독특한 싱글이다. 얼마 전 그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양쪽 모두 결혼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보수적인 상류층 손님들을 주로 상대해야 하는 그는 일을 위해 혼인신고를 했지만 사실상 싱글 라이프를 100% 즐긴다. 그녀는 40대 초반 싱글 여성 모임의 리더이기도 하다.

일 그리고 자유…“난 혼자이고 싶다”

싱글 네 명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재로 해 공감을 얻고 있는 영화 ‘싱글즈’. 싱글의 일과 우정, 섹스를 이야기하는 성인영화지만 ‘야한 장면’은 없다.

“사람의 에너지엔 한계가 있으니 일도 하고 남편 뒷바라지도 할 수는 없지요. 혼인신고는 했지만 그 사람이나 나나 서로 원하는 게 없어요. 둘 다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난 싱글인 친구들과 예전과 똑같이 지내요.”

최근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결심한 신영은씨(36)는 “공부를 더 한다 해도 더 좋은 직장을 얻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남편이나 시댁과 상의할 필요 없이 나를 위해 무모해질 수도 있다는 게 싱글의 장점 아니냐”고 말한다.

반면 남성이 싱글을 유지하는 이유는 일에 몰두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금전적, 시간적 자유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일은 가정이 있으면 오히려 잘 될 거 같아요. 싱글이란 이유로 세금도 입사 동기보다 훨씬 많이 내고 부동산 재테크에도 둔해지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내 자유를 나눠주는 대신 내는 돈이라고 칩니다. 내가 일해 번 돈과 나를 위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나눠야 한다는 건 별로 달갑지 않아요.”

방송사 프로듀서인 B씨는 골프 마니아로 ‘싱글’ 스코어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만 나면 골프를 하러 간다. 여자친구와 함께 골프할 생각도 했었지만, 어쨌든 초기에 최소한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므로 포기했다.

미친 듯이 일하거나 놀 수 있는 자유를 결혼보다 우선하는 사람들, 그들이 싱글족이다. 노혜영씨는 “시나리오 쓰려고 호텔, 모텔에서 일주일씩 박혀 있고, 자다가도 좋은 대사가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고, 배가 고파도 안 먹고 버틴다. 누가 이런 나한테 맞추며 살겠느냐”고 말한다. 그래도 그녀는 즐겁다.

‘동거 & 섹스’ 필수 아닌 선택

영화 ‘싱글즈’와 TV드라마 ‘옥탑방 고양이’가 보여주듯 동거는 그것이 섹스를 동반하든 동반하지 않든, 싱글의 낭만과 자유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많은 싱글들이 ‘동거할 상대를 발견했다면 왜 결혼하지 않았겠냐’고 말할 만큼 동거 자체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싱글에게 아직까지 이성과의 동거는 평판을 나쁘게 할 수 있는 스캔들이다.

“평소 알던 여자가 이민을 간다며 20일 가량의 동거를 제안했어요. 재미있을 거 같아 그러자고 했는데 며칠 동안 냉장고에 내가 혐오하는 것들, 짓무른 복숭아와 애들 과자 같은 게 들어 있는 걸 보고 나가달라고 했어요.”(40대 싱글 남성)

“일종의 워크숍 차원에서 여자친구 집에 보름씩 얹혀산 적이 있어요. 그 전까지 여자랑 같이 산다는 건 상상도 못했는데, 이젠 까짓 거 살려면 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저로선 큰 변화예요. 하지만 역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던데요.”(30대 싱글 남성)

“싱글의 속성이란 자기 세계를 지키려는 욕망 아닐까요. 꽤 괜찮은 남자라도 그 남자 때문에 내 질서가 무너질 것 같으면 떠나주기를 바라게 돼요. 예를 들면, 내 원룸 화장실의 변기 커버가 위로 올려져 있는 걸 볼 때죠.”(30대 싱글 여성)

그러므로 진정한 싱글에게 동거란 성과 친밀도를 불문하고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삶의 형태다. 영화 ‘싱글즈’에서도 동미는 제일 친한 친구 나난이 아니라 정준과 섹스 없는 동거를 한다. 그러면서도 동미는 “무릇 모든 남녀 문제는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일 그리고 자유…“난 혼자이고 싶다”

싱글족은 가부장제와 관습적 결혼 제도의 ‘균열’을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거울이 아닐까. ‘싱글즈’의 이벤트 행사로 열린 싱글들의 파자마 파티(가운데)와 동거를 긍정적으로 보여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왼쪽).판박이형 결혼식을 풍자한 미술 작품 ‘웨딩 프로젝트’(오른쪽).

“사람이 매끼 밥을 먹어야 힘을 쓰듯 섹스도 적당히 해줘야 신진대사가 활발한 법이다. 너, 거미줄 칠 때 되잖았냐?”(동미)

하지만 나난은 머릿속에서만 주위 남자들을 벗겨놓고 뒹구는 평범한 스물아홉 살짜리 싱글이다.

“싱글을 유형별로 나눠보면 애인과 지속적으로 섹스를 하는 경우, 충동적으로 섹스 상대를 만나는 경우, 섹스 없이 지내는 경우로 나뉜다. 20대 말이라면 대개 첫번째다. 여성 싱글들이 그리워하는 건 섹스보다 따뜻한 느낌인 경우가 많다.”(노혜영)

연극배우 C씨는 동미 못지않게 ‘까놓고 즐기고 까놓고 사랑한다’는 30대 중반의 싱글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섹스는 당연한 감정의 표현인데 자제할 필요 있나요? 섹스를 즐기는 사이가 되려면 감정적으로도 서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해요. 사랑 없이 상대를 바꿔가며 즐거움을 얻는 건 일종의 정신병이죠.”

그러나 매매춘의 기회를 쉽게 접하는 싱글 남성의 경우, 낯선 여자와의 하룻밤도 흔히 선택할 수 있는 옵션 중 하나다.

“호텔 직원을 통해 독특한 매춘 여성들을 소개받습니다. 대부분 대학생이나 대학원생들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그런 일을 하죠. 그들은 저녁식사 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일종의 데이트 상대가 되어주는데, 외모나 태도 때문에 때로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그녀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하고 정신을 차립니다.”(30대 싱글 남성)

어떤 식의 섹스 라이프를 즐기든, 많은 싱글들은 “섹스, 안 하고도 살 수 있는 거 아냐? 그거말고도 할 일 많잖아”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섹스 앤 더 시티’ 같은 드라마는 싱글들의 섹스에 관한 자유롭고 진보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권태를 느끼는 유부남 유부녀에게 더 강력하게 어필하는 미국 섹스산업의 ‘찌라시’같은 영화가 아닐까.

“싱글로 살면 꽤 오래 섹스 파트너를 만나지 못할 가능성도 있죠.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오히려 결혼하면서 발생하는 게 아닐까요? 섹스 없이 사는 부부도 많고, 그렇다고 파트너를 바꾸면 법적 제재를 받잖아요.”(40대 싱글 여성)

동거와 섹스에 대해서 싱글은 ‘어쩔 수 없이’ 쿨하다.

싱글 생활의 필수요소는 ‘좋은 친구’

좋은 친구는 건강한 싱글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생각할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지다 보면 히스테리나 조울증이 생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싱글즈’에나오는 싱글들이 부러운 이유는 그들의 사랑보다 그들의 우정 때문이다.

“저도 나난처럼 옥탑방에서 살았어요. 옥상에서 별 보며 꿀꿀한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들과 10년 후 어떻게 살고 있을지를 상상하면 행복했죠. ‘싱글즈’의 옥탑방 장면은 제 친구들에 대한 오마주이기도 해요.”(노혜영)

싱글인 친구들끼리 모이면 첫번째 화제는 단연 음식이다.

“싱글인 친구들과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 만나 식사를 해요. 트렌디한 레스토랑보다 무공해, 건강식을 선호하죠. 요즘은 요가가 화제고. 서로 건강한 몸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환경문제에까지 관심이 가게 되더군요.”

디자이너 A씨는 싱글 친구들이 신문 인터뷰에 가끔 실릴 때는 ‘내 자식’ 일처럼 기쁘다고 말한다.

싱글족은 ‘결혼’을 하겠다는 다른 싱글 친구의 말에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배신감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냉담하게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싱글의 ‘피앙세’는 친구들로부터 무참하게 난도질당하고 뒷조사 당한 끝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무절제하게 싱글 생활을 하다 보면 친구들과도 멀어져 외롭다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러면 십중팔구 실패해요. 외로움은 자기 내면의 문제지 남편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랫동안 싱글 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결론에 이르는데, 스스로 자유를 얻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싱글로 남든 결혼을 하든 행복하게 살더군요.”(40대 싱글 여성)

싱글족은 온갖 팬시한 상품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한때 유행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존재가 되었다. 싱글족은 가부장 중심의 결혼, 이성애자끼리의 결혼이 강요하는 모든 문제점들에서 애교 있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싱글족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추구해 마지 않았던 ‘안정된 삶’의 균열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러므로 ‘싱글즈’가 팬터지로 보인다면, 현실은 영화만큼 ‘쿠울’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간동아 394호 (p74~7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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