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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직장인 너도나도 “로스쿨 가자”

내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확대 등 일대 변화 … 높은 보수·사회적 지위 좇아 도전 열풍

  •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日 직장인 너도나도 “로스쿨 가자”

40대 후반의 금융기관 중견간부인 A씨는 회사 업무가 끝나면 곧바로 도쿄 시내의 사법시험 예비교(학원)로 달려간다. 매일 밤늦게까지 강의를 듣다 보면 졸음이 밀려들지만 또 한 번의 인생 도전에 나선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잠을 쫓는다.

A씨의 당면 목표는 내년 4월 문을 여는 법과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데다 70, 80대에도 일을 계속하려면 법조인이 제격이라고 생각해 로스쿨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학원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최근 로스쿨 신설 방침을 밝힌 뒤 A씨처럼 법과대학원 입시를 위해 뒤늦게 학원에 등록한 회사원들이 부쩍 늘었다.

일본의 사법시험 제도가 내년부터 크게 바뀌는 것을 계기로 일본의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로스쿨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로스쿨 졸업생에게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합격자 수도 6, 7년 안에 3배 가까이 늘린다는 정부방침이 발표되자 직장인들이 높은 보수와 사회적 지위 상승이라는 매력에 끌려 로스쿨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직면해 직장생활 지속 여부가 불투명한 중년층, 저금리로 인해 퇴직금만으로는 노후생활이 불안한 노년층, 불경기로 취직 자체가 어려운 청년층…. 로스쿨 입시과정의 수강생들이 법조인을 희망하는 이유는 절박하다.



불안한 직장 탈출·노후 위한 돌파구

지금까지 일본의 사법시험은 문턱이 높기로 악명 높았다. 합격자 수가 적은 데다 시험도 까다로워 명문대 법대 졸업생이 아니면 여간해서 도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그 대신 합격만 하면 안정된 수입과 명예가 보장됐다.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뒤 몇 년째 사법시험에만 매달리는 ‘고시 장수생’이 적지 않았다. 사법시험에 대한 집착이나 과잉열기는 한국과 일본이 판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정부가 사법시험 개선안 마련에 나선 것도 시험에만 합격하면 판검사 혹은 변호사가 되고, 이로 인해 대학의 법학 교육이 파행화하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여론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1000명 안팎인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해마다 단계적으로 늘려 2004년엔 1500명, 2010년 이후엔 3000명 수준으로 늘리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미국식 로스쿨인 법과대학원 제도를 도입해 이 과정을 마치거나 예비자격시험에 합격해야만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줄 방침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사법시험에 응시하려면 법과대학원 3년(단축 코스는 2년)을 마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응시횟수도 대학원 수료 후 5년 이내, 3회로 한정된다. 현행 사법시험 제도는 법과대학원 출신이 치르는 새로운 선발시험과 병행해 2010년까지만 존속될 예정이다. 사법제도개혁심의회는 보고서에서 “로스쿨 교육의 질을 수료자의 70∼80%가 사법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 로스쿨 지망생들을 설레게 했다.

대학 입장에서도 로스쿨이 새로운 수입원일 뿐 아니라 학교의 권위를 높이는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외면할 수 없는 카드다. 일본 정부가 6월 말 법과대학원 신설 신청을 마감한 결과 국립대 20곳, 공립대 2곳, 사립대 50곳 등 전국 72개 대학이 모두 5950명을 뽑겠다고 신청했다. 가장 정원이 많은 곳은 도쿄대, 와세다대, 주오대 등 도쿄의 3개 명문대학으로 각각 300명씩이다.

그러나 로스쿨을 신설하려는 대학이 많은 반면, 자격을 갖춘 교수의 수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로스쿨 인가를 받으려면 학생 15명당 1명꼴의 교수가 필요하며 최소한 12명은 확보해야 한다. 더욱이 해당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교수의 존재는 우수 학생을 유치하는 데 필수이기 때문에 대학 간의 우수 교수 확보전은 시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수 교수 스카우트의 선두주자는 사립대 중에서도 사법시험에 유난히 강한 전통을 자랑하는 와세다대다. 전 고등재판소(고등법원급) 간부와 일본변호사연합회에서 사법개혁을 담당했던 실력파 변호사 2명을 영입한 데 이어 명문 도쿄대의 교수까지 영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수도권의 한 대학은 경쟁 대학에 교수를 빼앗기자 이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 대학의 교수를 데려오는 복수전을 펼치기도 했다.

지방대학들은 도쿄 오사카 나고야 등 대도시 대학에 유능한 교수를 계속 빼앗기자 “시골 대학은 로스쿨을 만들지도 말라는 얘기냐”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자본력이 탄탄한 대학은 파격적인 보수를 약속하며 교수 확보에 나서지만 일부 지방 국립대는 법과대학원 신청을 철회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하는 처지다. 법무성과 최고재판소의 간부들 역시 현직 판사와 검사를 교원으로 파견해달라는 각 대학의 요청이 쇄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과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과 변호사단체가 협의해 실시하는 적성시험을 거쳐야 한다. A씨가 요즘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배우는 내용도 전문 법률 과목이 아니라 적성시험에 대비한 출제 예상문제다. 법률을 배우는 데 적합한 사고력과 독해력을 갖췄는지 테스트하는 데 적성시험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8월 말 실시되는 적성시험에는 일본 전국에서 2만1590명이 응시원서를 냈다. 각 대학이 신청한 정원이 모두 승인된다 해도 경쟁률이 4대 1에 달한다. 이후 대학별로 선발시험을 거치는데 수험생의 논문과 직장 경험, 법조인이 되려는 이유의 타당성 등이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많은 법조인 지망생들이 로스쿨에 들떠 있지만 현실은 냉혹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우선 법과대학원 수업일정이 일반 야간대학원과는 달리 매우 빡빡해 회사 업무와 병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 대학원보다 훨씬 비싼 수업료에 대한 부담도 각오해야 한다. 사립대학의 경우 학비가 연간 200만엔(약 2000만원) 선으로 예상돼 3년 과정의 수업료로만 600만엔(약 60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A씨는 지금 마음에 두고 있는 법과대학원에 합격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3년간의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계획이지만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해야 하는 처지여서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변호사 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기대만큼 수입을 올리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A씨 같은 로스쿨 지망생들로서는 신경 쓰이는 대목이다.

로스쿨 졸업생의 사법시험 합격률은 어림잡아 25%가 될 것으로 학원 관계자들은 분석한다. 현재 사법시험을 준비중인 고시생들은 이런 점을 들어 로스쿨의 효용에 대체로 회의적이다. 로스쿨에 들어가는 돈과 시간이라면 수험 준비의 강도를 높여 현행 시험에서 합격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다.

장기불황에 지쳐 미래에 대한 꿈을 잃어가는 일본의 샐러리맨들에게 로스쿨은 새로운 기회를 보장하는 신천지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스쿨을 향한 기대심리가 높아지면서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고시 장수생’을 배출한 사법시험 집착증의 후속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주간동아 394호 (p68~69)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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