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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미완의 내러티브’ 展

3女3色의 비극적 색조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3女3色의 비극적 색조

3女3色의 비극적 색조

강미선의 ‘마음의 풍경-길을 가다’

‘이제 마흔을 넘긴 세 여자 작가의 전시’.

별다른 호기심도, 매력도 느낄 수 없는 전시 설명이다. 하기야 마흔 넘긴 여자 셋이 모여 무엇을 한다 한들 대중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까.

‘미완의 내러티브’는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어째서 이제 마흔이 된 성실한 세 여자 작가들의 목소리가 대중에게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미완’으로 운명지어지는가. 왜 그들의 넘치는 재능은 비극적인 색조를 띠게 되는가.

일반적으로 단체전을 여는 작가들은 학맥이나 비슷한 주제 선택 등에 의해 서로 친분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완의 내러티브’에 모인 세 작가, 염성순 유현미 강미선은 어떤 공통점으로든 묶일 기회가 없었다.

염성순(43)은 순천에서 태어나 조선대와 베르사이유 미대에서 서양화를 공부한 반면, 유현미(40)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했다. 그의 남편은 최근 화려하게 각광받는 작가인 김범이다. 강미선(43)은 홍익대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했고, 남편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는 동양화 작가다.



강렬한 욕망·발랄한 아이디어

3女3色의 비극적 색조

염성순의 ‘무너지는 봄’(왼쪽).유현미의 ‘일기’.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는 점뿐이다. 즉 한국 미술계에서 여성이라는 실존적 조건을 자각한 첫 세대로서 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겪어왔다는 점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들을 한 전시에 모이게 한 이유가 됐다.

이처럼 비교도, 대조도 불가능해 보이는 세 작가들이건만 전시장은 긴장감으로 터져나갈 듯하다. 마치 세 개의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1층 전시실에 있는 강미선의 작품들은 한지를 한 장 한 장 겹겹이 붙이고, 붓으로 먹을 덧칠한 회화들이다. 가느다란 선으로 단순화한 나무, 집 등의 형태를 들여다보노라면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답답함, 혹은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짓는 한숨이 들려올 듯한 그림들이다.

2층 전시실 한쪽은 유현미의 퍼즐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강미선이 여러 장의 종이를 붙이고 또 붙이는 데 비해 유현미는 퍼즐 조각을 잇고 또 이어간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싶은 강렬한 욕망이라는 주제도 그렇고, 발랄한 아이디어와 세련된 언어도 그렇고 유현미가 세계 모더니즘 미술의 흐름 어디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런 이유로 유현미는 최근의 대규모 기획전에 가장 자주 초대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 반대편에, 이번 전시에서 가장 놀라운 발견이 될 염성순의 작품들이 있다. 그의 그림은 스스로를 자신의 지옥 안에 가둬둔 대가로 얻은 것이다. 빛이 차단된 정릉 반지하방에서 시력을 잃어가며 붓으로 집요하게 채워낸 그림은 분열된 정신을 구원하려는 노력의 산물로 보인다.

그러면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스타일의 완성도, 작업의 밀도에서 세 작가는 성과 상관없이 현재 비슷한 나이의 어떤 작가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아니, 작가들에게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동안 이들이 가려져 있었던 것은 한국 미술계에서 여성 작가가 처한 현실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다.

즉 여성 작가는 작가적 성실함만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여성이라는 조건이 작가적 재능을 그의 몸 안과 밖에서 규정짓기 때문이다. 성공한 여성 작가들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성 작가로 ‘성공’하려면 꽃을 그리거나 여성 운동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미완의 내러티브’는 여성 작가들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한 기획이다. 그러나 세 여성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를 발견함으로써 세상 속으로 크게 한 발 내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이 전시가 페미니스트들의 마음을 다소 불편하게 할지라도 최근 이처럼 진정을 다해 전시를 준비한 작가들을 만나기 어려웠다는 점에서 관객들로서도 행복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6월22일까지 일민미술관. 문의 02-2020-2055





주간동아 387호 (p80~8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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