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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 vs 라이브’ 언더 클럽 지존 경쟁

홍대 앞 댄스클럽 월 1회 연합행사로 인기 선점 … 라이브 클럽도 연대 결성·축제 통해 대반격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댄스 vs 라이브’ 언더 클럽 지존 경쟁

‘댄스 vs 라이브’ 언더   클럽 지존 경쟁

라이브클럽 ‘슬러거’(왼쪽). 댄스클럽 ‘마트마타’

금요일 저녁 어스름하게 해가 질 무렵, 서울 홍익대 앞 놀이터 주변은 기지개를 켠다. 음악, 춤, 사람이 있는 ‘사운드 스트리트’의 진면목을 보여줄 시간이다. 자칭 ‘클러버’들이 하나 둘 모습을 나타내는가 싶더니 록, 힙합, 테크노 등 자신의 음악적 취향에 따라 속속 ‘지하세계’로 사라진다. 클러버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라이브클럽의 클러버는 댄스음악 위주의 대중음악을 거부하는 10~20대 청소년층이 주류고, 댄스클럽에는 광고 패션디자인 등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와 대학생, 외국인들이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찾아 모여든다.

저녁 7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이 일대 라이브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춤과 음악이 어우러지는 댄스클럽은 자정을 정점으로 다음 날 새벽까지 북적거린다.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열리는 ‘라이브클럽 페스트’(6개 라이브클럽이 공동으로 마련한 공연축제)와 넷째주 금요일의 ‘클럽데이’(한 장의 티켓으로 11개 클럽에 입장할 수 있는 클럽 연대 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잔뜩 호기심에 찬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는 초보 클러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나이트 라이프’가 가장 잘 살아 숨쉬는 곳, 청년 하위문화의 생산기지, 홍대 앞에서는 지금 클럽문화의 선두자리를 놓고 라이브클럽과 댄스클럽이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90년대 초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 주차장거리에 이르는 도로변에 화랑과 미술학원, 고급카페들이 들어서면서 ‘피카소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90년대 중반 홍대 앞 놀이터를 중심으로 라이브클럽과 댄스클럽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럽게 ‘사운드 스트리트’가 형성됐다. 과거 라이브카페가 술과 안주 중심이고 공연이 일종의 서비스였다면, 클럽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공연장 성격이 강하다.

클럽데이엔 6000여명 인파 ‘인기 실감’

서울 홍대지역 클럽문화 연구로 박사학위(장소마케팅 전략에 관한 문화정치론적 연구)를 받은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97년을 정점으로 매스컴이 앞다퉈 홍대 앞 클럽과 밴드, 뮤지션을 집중 소개하면서 라이브클럽의 존재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클럽문화가 전파됐다기보다 몇몇 클럽과 밴드가 전부인 양 알려지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지적한다. 당시 클럽,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인디 레이블 등 클럽문화의 주체들을 결속시킨 힘은 ‘라이브클럽 합법화 투쟁’이었다.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돼 ‘식품위생법’을 적용받는 라이브클럽에서는 2인 이상의 연주가 금지돼 있었다. 라이브클럽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인 공연이 불법으로 묶여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클럽은 ‘록’의 저항정신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인식됐다.



댄스클럽의 역사 역시 라이브클럽에 비해 결코 짧지 않다. 댄스클럽은 디제이들이 믹싱한 음악을 들려주는 일명 ‘디제잉’에 따라 관객들이 춤을 추는 공간이다. 초기에는 테크노음악이 주류여서 테크노클럽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무용씨는 “홍대 미대생들의 ‘작업실’이 ‘바’ 형태가 됐다가 다시 ‘클럽’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92년 작업실 인테리어 그대로 문을 연 ‘발전소’가 댄스클럽의 모태가 됐다.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에서 회원 수 900여명의 ‘홍대 클러버 모여라’를 이끌고 있는 김지환씨(29)는 유학 준비생. 94년 홍대 재학 시절 클럽문화를 처음 접하고 입대한 후에도 휴가 때면 곧장 클럽을 찾을 만큼 골수 클러버가 됐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시절 주위 사람들이 클럽문화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선뜻 동참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지난해 ‘홍대 클러버 모여라’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김씨는 “부킹이 목적인지 춤이 목적인지 불분명해진 나이트클럽은 싫고 춤과 음악은 좋은 사람들이 댄스클럽을 찾는다”며 “요즘은 클럽들이 다양해져서 힙합, 트랜스, 록 등 취향에 따라 클럽을 고를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라이브클럽이 오랫동안 ‘불법영업’ 딱지와 싸워야 했던 것처럼 댄스클럽도 일반음식점에서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수시로 단속과 영업정지를 당하며 부침을 겪었다. 95년부터 클럽 ‘흐지부지’를 운영하고 있는 채희준 사장은 “단속하던 공무원이 차라리 술집을 하는 게 어떠냐고 충고할 만큼 힘든 상황이 많았다”며 “클럽은 술을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버텼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댄스클럽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된 계기는 2001년 시작된 ‘클럽데이’였다. 클럽데이는 이 지역 댄스클럽주들의 모임인 클럽연대와 지역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공간문화센터가 함께 탄생시켰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 1만원짜리 티켓 한 장만 있으면 저녁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클럽들을 돌며 마음껏 놀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히트를 하면서 매달 클럽데이에는 6000여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든다. 특히 월드컵을 앞두고 문화전략지역을 탐색하던 서울시가 홍대 클럽문화에 주목하고 이 지역을 야간관광명소로 지정하면서 ‘클럽데이’는 날개를 달았다.

댄스클럽이 주최하는 ‘클럽데이’가 대표적인 지역문화축제로 부각되자 이번에는 라이브클럽들의 위기감이 커졌다. 사실 라이브클럽들은 99년 합법화 이후 오히려 고객이 줄어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나는 위기상황이었다. 라이브클럽 ‘빵’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등 사장은 “한때 서울에서 20여개에 달하던 클럽이 10개로 줄었고 전국적으로 30여개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슬러거’의 윤현식 사장도 “공연장 개념이어서 영업시간이 저녁 7시에서 밤 11시까지로 제한돼 있는 데다 평일에는 관객이 20~30명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서울시까지 앞장서서 ‘클럽데이’를 홍보해주는 마당에 상대적으로 라이브클럽이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라이브클럽 살리기 토론회도 열려

이처럼 라이브클럽이 댄스클럽에 밀리는 상황이 계속되자 지난해 2월 ‘슬러거’를 중심으로 라이브클럽연대가 결성됐다. 대중음악평론가 박준흠씨는 5월6일 문화연대가 주최한 ‘라이브클럽 살리기’ 토론회에서 대중문화의 인프라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라이브클럽의 역할을 강조했다. “라이브클럽은 전국적으로 2000여개 팀에 달하는 아마추어밴드들이 관객과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10대 아이돌스타 위주의 편향된 한국 음반 시장의 지형도를 바꾸려면 인디 레이블과 라이브클럽을 살려야 한다.” 박씨는 또 라이브클럽이 ‘창작음악’의 산실인 점을 들어 댄스클럽이나 라이브카페와 구분했다.

‘클럽데이’를 통해 대중화에 성공한 댄스클럽들도 마냥 즐거워할 상황은 아니다. 클러버 김지환씨는 “댄스클럽들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오히려 클럽문화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옷차림이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평범하게 입고 가면 오히려 쳐다볼 정도다. 클럽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요란하게 차려입고 우르르 몰려와서 춤을 추는 곳이 되어버렸다.”

댄스클럽연대 문희준 회장(마트마타 대표)은 “댄스클럽의 상품은 디제이다. 음악을 틀어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편곡과 믹싱을 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디제잉이라고 할 수 있다. 클럽마다 4~5명의 디제이가 있지만 직접 음악을 생산해낼 능력을 갖춘 사람은 극소수”라며 “앞으로 클럽들이 디제이학교를 세워 전문가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라이브클럽이나 댄스클럽 모두 변신을 요구받고 있다. 98년 홍대 앞에서 ‘피드백’이라는 라이브클럽을 운영했던 성우진씨(대중음악평론가)는 “라이브든 댄스든 음악만 앞세웠지 관객에 대한 서비스정신이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양측이 경쟁관계가 아니라 함께 클럽문화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라이브클럽의 실험정신이 퇴색한다면 댄스클럽의 활력도 사라질 것이다. 라이브공연도 보고, 디제이의 연주도 듣고, 춤도 출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서의 클럽은 불가능한가.



주간동아 387호 (p60~61)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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